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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Mar 19. 2017

영화 <미녀와 야수>

진정한 사랑을 위한, 디즈니의 헌사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시절. 나는 엄마께서 사오신 디즈니 만화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게 취미였다. 디즈니에서 해마다 명작 만화영화를 만들던 시절. 내 유년기를 함께해 준 인어공주와 라이온킹, 포카혼타스, 타잔과 같은 명작들 속에 미녀와 야수도 있었다. 아직도 선명하다. 벨과 야수가 손을 잡고 아름답게 춤추던 장면이.

이 영화가 실사판으로 개봉된다는 사실에,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디즈니가 원작의 아름다움을 단 하나도 훼손하지않고 그대로 만들어준 덕에, 오히려 더 무한한 감동이 밀려왔다.


진정한 사랑, 그리고 강인한 여성

디즈니 만화영화들은 대부분 다 사랑받았고 주인공인 여성캐릭터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포카혼타스, 뮬란, 미녀와 야수의 벨이 제일 좋았다. 그녀들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변화시키는 진취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여주인공 은 공주도 아니고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성도 아니다. 프랑스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아버지와 살아가는 여성이다. 책을 읽으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벨은 당시의 보편적인 여성들과는 달리,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개스톤이라는 마을의 가장 인기많은 사나이가 벨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지만 벨은 콧방귀도 뀌지않는다. 그 모습에서부터 벨의 매력은 여실히 드러난다. 모두가 안기고 싶어하는 남자의 구애를 마다하는 건, 자신이 선택 '받는' 것이 아닌 선택을 '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눈에 개스톤이라는 상대가 성에 안차기 때문!

만화영화에서 만큼이나 똑같이 재수없는 개스톤은 자신이 그토록 쫓아다니는 벨이, 책을 좋아하며 마을의 문맹아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등의 모습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마을에서 '제일 예쁜'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자만심으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이의 깊은 내면이나 감성의 교감 없이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벨에겐 그게 사랑이 아니었을 것.


벨은 위험에 처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가 야수가 사는 성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곳에는 한 때 모든 것을 가진 왕자였으나, 그 오만함으로 인해 마법에 걸려버린 야수가 있다.

야수는 폐허가 되어버린 성에서, 자신과 함께 마법에 걸려 사물로 변해버린 시종들과 마법이 풀리기만을 바라며 지내왔다.

그 마법은 진정한 사랑을 찾게되면 풀리게되지만, 마법을 건 요정이 건넨 장미의 잎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찾아야만 한다. 진정한 사랑. 참으로 흔히들 쓰는 말이지만 얼마나 값지고 어려운 것인가. 아마도 야수는 그 가능성에 희망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성에서 저주 걸린 나날을 보내던 야수에게 벨은 처음엔 분노의 존재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리고 철없던 왕자는 겉모습이 흉측해져서도 그 성질을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성격파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도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린시절 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왕자의 곁에는 엄한 아버지, 그를 좋은 길로 인도하지 못한 시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벨은 그런 괴팍한 야수의 겉모습 속에 여린 내면이 있다는 걸 발견한다. 다친 야수를 돌보고, 그의 괴팍한 성질을 변화시키고, 그의 서재를 발견하고 그를 경외하고… 야수에게 따뜻한 누군가가 되어준다.

야수의, 아니 왕자였던 그의 삶에, 그가 가진 많은 화려한 것들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고 따뜻하게 웃어주던 이가 있었을까.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이 있다. 벨과 야수가 같이 식사를 하던 중, 야수가 접시에 얼굴을 갖다대고 게걸스레 먹은 후 곧 자신의 행동에 무안해하자, 벨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따스이 웃으며 야수에게 접시를 들어 얌전히 먹는 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야수는 곧 벨을 따라한다. 만화영화에도 같은 장면이 있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영화로 그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은 '따뜻함'이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반드시, 따뜻함을 수반한다.


벨과 함께하는 동안, 벨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야수는 행복해하지만 벨이 자신을 사랑하지않을까 두려워한다. 그 모습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심지어 벨이 성 밖을 나가야하는 순간이 오자,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며 마법을 풀어줄 존재란 걸 알면서도 보내주고 만다. 시종들은 마법을 풀 수 있는데 어째서 그녀를 보내주었냐고 묻는다. 야수는 대답한다.

그녀를 사랑하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벨을 위해 보내줄줄도 알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야수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는 벨이 혹시나 돌아올거란 희망을 가지고 남은 생을 다시 성 안에서 보내야하는 운명이다. 어쩌면 벨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하면서도 보내주었는지도.

야수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야수가 보내온 저주의 시간들 속에서 야수는 진정한 사랑을 꿈꿔본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가 자신의 서재를 보고 기뻐하고, 그 책을 나눠 읽고, 자신의 아픈 과거를 어루만져주며, 흉측한 외모에도 달아다기는 커녕 가슴 속 깊은 곳을 쳐다보는 그런 사랑을 느껴본 적 있었을까. 자신이 괴물같아서 벨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거라고 자책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벨이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여린 마음의 야수는, 그 쯤, 더 이상 위협적이고 무서운 괴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길 원하는 보통의 남성이며 인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이 아름다운 동화는, 벨이 다시 돌아와 야수의 마법을 풀어주며 끝난다. 벨은 자신 때문에 쓰러져 죽어가는 야수의 몸에 몸을 파묻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벨의 사랑은 결국 그렇게 야수를 마법에서 풀어준다. 야수는 원래의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시종들도 모두 마법에서 풀린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잘생겨져서 반가운 것이 아니라, 단지 야수가 살아돌아와서 행복하고 기쁜 벨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이로군요!"라며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털이 무성한 야수를 쓰다듬을 때와 다르지않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보았다. 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해석되고 공감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영화 미녀의 야수를 보면서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린시절 어여쁜 장면들로 구성된 미녀와 야수를 보며 많은 시간 웃었지만 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재밌기보다는 많이 뭉클했다. 야수가 기다렸던  진정한 사랑과 벨이 꿈꾸던 내면의 사랑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도 뻔한 결말의 동화를 통해서 말이다.


요즘 세상에는 그 뻔하고 구태의연한 진정한 사랑시 많이 퇴색되었다. 한 사람을 향한 기나긴 기다림과 애타는 사랑의 노래가사가 없어지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가끔 오래된 것에서 잃어버린 옛것의 소중한 의미를 찾게될 때가 있다. 오랜만에 꺼내 본 명작 속에는 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한 때는 촌스럽게 여겼지만 값지고 굳건한 진리.


벨은, 마법에 걸린 왕자를 변화시키고 사랑한, 디즈니 역사상 가장 강하고 용기있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캐릭터다. 그녀가 보여준, 진정한 사랑.

그 구태의연하고, 원론적인 사랑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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