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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n 12. 2021

기 센 여자가 어때서!
도서 <따님이 기가 세요>

유쾌한 여자 둘의 유쾌한 비혼 라이프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57호
따님이 기가 세요 (2021)
저자 : 하말넘많(강민지,서솔)
출판 : 포르체 │ 장르 : 한국, 에세이


어느 날 한 출판사로부터 책을 소개해줄 수 있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오, 드디어 내게도 협찬이 들어오는 것인가? 싶어 살짝 으쓱했다가 고민에 빠졌다. <주간우두미>는 100%의 확률로 내돈내산 리뷰를 올리는 곳인데, 뭔가 사주를 받아 책을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내게 소개해준 책의 제목과 내용을 살펴보고는 곧바로 수락했다. 제목은 <따님이 기가 세요>이고, 비혼 라이프를 살아가는 여성 미디어 유튜버 두 명의 이야기였는데, 거기에서 벌써 너무 흥미로워서 읽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평소 나는 불평등에 예민하고 야망 많은 ‘기 센 딸’로 살아와서인지 그 제목에 정서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었다. 결혼한 여성이라서 자세히 들을 수 없었던 비혼 여성의 라이프 또한 무척이나 알고 싶었다.       


우선 이 책을 쓴 저자를 소개해야겠다. 강민지와 서솔. 이 둘은 대학생 때 만나 영상을 전공했고, 여성으로 살아가며 하고 싶은 여러 이야기들을 콘텐츠로 제작해 ‘하말넘많(하고 싶은 말 너무 많아서)’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왔다. 고백건대 나는 처음 들어본 유튜버였지만 무려 구독자가 16.5만이라고 하니 그들이 쌓아온 콘텐츠와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나 비혼에 대한 실용서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삶 속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는지, 어떻게 여성을 위한 미디어를 만들게 됐는지, 그들이 유튜브 콘텐츠로 제작했던 ‘여자로 살면서 하고 싶은 말’들은 무엇인지를, 찬찬히 그리고 재미있게 경험으로 담아낸 글들이었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57호 (사진출처:Youtube하말넘많)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57호 (사진출처:Youtube하말넘많)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이 만들어낸 ‘디폴트립’이라는 개념의 여행이었다. 디폴트립은 영어 ‘default value’와 ‘trip’을 합쳐 만든 말로, 여행하면서 필수품처럼 동반되는 ‘사진 속의 예쁜 내 모습’이라는 강박을 탈피한 여행, 즉 사회가 정한 허구의 여성성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여행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나는 아직 여행에서 인생샷을 건지지 못하면 속상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강박 때문에 남편이 사진을 못 찍어주면 기분이 상해 여행 자체를 망쳐버리는 일이 꽤나 많았더랬다. SNS에 올릴 사진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카메라 안에 예쁘게 치장하고 서있어야 하고, 그래서 여행의 목적이 뭔가 이상해져 버리는 시간들이 피차 나도 피곤하던 참이어서 그랬을까. 강민지와 서솔이 만들어낸 그 신박한 개념의 여행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디폴트립을 꿈꾼 적이 많았다. 인생샷에 목을 매느라 보지 못한 풍경, 예쁜 옷을 입느라 털썩털썩 앉아 맛보거나 즐기지 못한 것들을 온전히 누리는 여행, 대-충 추리닝 걸쳐 입고 현지인처럼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밥을 먹는 그런 여행 말이다. 어쩌면 모두가 그런 여행을 은근히 꿈꾸는데 개념화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여행에 ‘디폴트립’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강민지와 서솔에게 어쩐지 감사함이 밀려온다.           




디폴트립 만큼이나 이 책에서 인상적인 건 또 있다. 바로 비혼인으로서의 생생한 삶과 고충이다. 점점 늘어가는 비혼인들의 삶, 그리고 아직 이를 좇아가지 못하는 사회분위기나 정책 등에 대해서 이 책은 경험을 토대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그놈의 ‘집’이었다. 무주택 신혼가구로서 늘 집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나는, 그간 내가 속한 유형인 ‘신혼부부’의 입장만 생각해보았지 비혼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물론 현시대의 주택 공급 부족 문제는 기혼이건 비혼이건 모두를 힘들게 하는 사회현상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혼들을 위한 정책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건,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야 새삼 깨닫게 됐다.           

신혼부부로서 아이가 없는 점이 이렇게나 집 얻는데 불리하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그런데 아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비혼인들은 과연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살아야 할까, 생각하니 내가 다 막막하고 안타까웠다. 결혼 유무나 자녀수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집은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정형화된 삶을 벗어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세상이, 나라가, 어서 존중하고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청년’으로 분류되는, 결혼하지 않을 여성의 경우 어디까지 순위가 밀리는 것일까. 국가의 주거 정책들을 읽어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자녀 출생 시 임대주택 평형 확대’라는 추가 옵션을 보면 마음이 아득해졌다. 그건 결국 “아이를 낳아 봐. 집을 넓혀줄게.”라는 말이었으니까.     

<따님이 기가 세요> 중에서




또한 강민지와 서솔은 끊임없이 여성의 자립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여성 중에서도 비혼을 택한 여성이라면 자립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필수적인 문제다. 남편 없이 혼자만의 능력과 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그리 녹록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혼 여성의 삶을 녹록지 않게 하는 데에는 압도적으로 ‘기혼자’들에게 유리한 주거정책도 한몫하지만, 비혼 여성의 자립은 주거 문제를 뛰어넘어 훨씬 더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였다. 여성이 택하기에 한정적인 직업군과 저임금 문제도 뒤따르고, 얼마 전 내가 톡톡히 체감했던 ‘안전’ 문제도 그렇다. 여자 혼자 살면 최소 남자 속옷을 베란다에 걸어두거나 택배를 시킬 때도 ‘박두팔’같은 험악한 이름으로 시켜야 안심이 되는 세상이니까. 거기에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주변 어르신들의 시선과, 축의금을 뿌렸으나 걷지는 못하는 비혼 자녀의 부모님들 문제까지..., 내 생각보다 비혼 여성의 라이프는 고된 것이었다.       

   

내가 커오는 동안 당연히 ‘우리 딸이 결혼할 때’를 그리며 착실히 냈을 엄마 아빠의 축의금을 어쩌면 좋을까.

여성에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뭘까 고민했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적은 임금을 벌어 비싼 월세를 내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적당한 남자를 찾아 결혼하고 출산해 육아하다보니 어느 순간 경력이 단절되어 버린 삶.     


나는 항상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꿈꿨고, 그 동반자와 백년해로하기로 한 기혼 여성이었기에, 비혼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만큼 상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거의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알지 못한 게 미안했고,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너무도 팍팍한 얼굴로 대응하는 현실이 야속했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57호 (사진출처:Youtube하말넘많)


그런 의미에서 강민지와 서솔의 행보가 무척이나 단단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위해, 조금 더 친절하고 폭넓은 선택지를 위해, 그들은 유튜브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비혼 여성으로서의 문화를 늘려가고 있는 것일 테다.           


그들의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은 탄탄한 인기를 얻으며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 그들의 소망이 유튜브 채널의 ‘소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나는 가장 큰 감동을 느꼈다. 유튜버로 살아가면서 수입원인 유튜브 채널이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들이 자신들이 만든 여성 미디어 채널의 소멸을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더 이상 여자로,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씩씩 거리며 하고픈 말이 없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라는 것. 나도 이 책을 덮고 나자, 씩씩하고 유쾌한 이들의 채널이, 아쉽지만 언젠가는 꼭 소멸되기를 바라게 됐다.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57호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이들은 이제 유튜브뿐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그들의 소명을 넓혀가는 중이다. 그 매개체가 무엇이든, 그들이 꿈꾸는 건 근본적으로 이것일 것이다.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아도,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숏컷이든 긴 머리든, 화장을 하든 안 하든. 어느 한쪽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에 힘을 싣고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이 그다음은 어디로 뻗어나갈지 궁금해진다. 강민지와 서솔, 이 둘의 행보에 독자로서, 구독자로서, 미미하지만 응원을 한 스푼 보태고 싶다. 모든 여성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파이팅.         


나는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기 센 여자’로 자란 내가 좋다. 그리고 바라건대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기 센 여자로, 잘 먹고 잘살았으면 한다. 기질이 센 여자아이의 존재가 그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여자가 기 센 게 뭐 어때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여 여성이 살 만한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롭고 편안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여성에게 ‘이런 삶의 선택지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따님이 기가 세요> 중에서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57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1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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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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