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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Sep 01. 2021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 소설<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와 그 세상을 구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2021)
장르 : 한국, 소설
저자 : 설재인 │출판 : 밝은세상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     


정말로 있을까, 평행세계라는 게. 얼마 전 읽게 된 장편소설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은 ‘평행세계’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다. 엄마와 함께 산자락 아래서 막걸리를 마시던 중,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주인공 ‘엄주영’의 세계가 바뀌어있었다. 방금 전까지 주인공과 이야기하고 있던 엄마는 웬 낯선 남자애와 이야길 나누고 있고, 머지않아 주인공 엄주영(여)은, 그게 평행세계의 또 다른 자신, ‘남자 엄주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골자는 이렇다. 여자 엄주영이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남자 엄주영을 만나고, 그 애는 자신과 다르게 개차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필이면 그 개차반과 결혼할 위기에 놓여있는 한 어린 친구의 존재까지 알게 되고는, 그녀를 남자 엄주영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낯설었으나 흥미로웠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졌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게 읽혔다.

          



평행세계라는 설정은 그저 외피일 뿐     


다소 공상 과학스러운 소재가 이 책의 정체성처럼 느끼지만 실은 관계의 따뜻함에 대해 말하는 책에 가깝다. 각각 다른 세계에 있지만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 커 온 여자 엄주영과 남자 엄주영은 같은 상처를 품고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크면서 자연스레 남성을 배척하는 성향으로 큰 쪽이 여자 주영이라면, 아버지의 폭력을 답습해 타인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진 쪽이 남자 주영이다. 가정폭력이 두 세계의 자식들에게 다른 식으로 뻗쳐나갔지만, 결국 같은 상처를 남긴 셈이다. 아무리 다른 환경에서 크더라도 외면할 수 없는 공통분모를 가진 쌍둥이처럼. 평행세계의 다른 둘은 어쩌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같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에, 여자 주영이 그토록 남자 주영의 세계에 머물며 그와 그의 세계를 ‘고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을지. 


p.246
"그 화를 다 어떻게 참아냈어? 너보다 약한 사람만 골라 괴롭혔겠지. 그건 복수도 정의도 아니고. 그냥 네 인생 쓰레기 만드는 방법일  뿐이잖아. 네가 그렇게 엇나간다고 해서 누가 피해를 봐? 네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봐? 전혀 아니야. 누가 제일 힘들어했냐고. … 너랑 배중숙 씨겠지. 네 엄마, 내 엄마." 

      



상처 입은 여자들의 연대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여성들의 연대’였다. ‘은빈’과의 우정, 남자 주영의 애인인 ‘연재’와 그녀의 친구 ‘다정’까지. 각각 아버지와 애인이라는 폭력적인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는 이 여자들은, 서로 똘똘 뭉쳐 그들을 물리치려는 과정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강한 면모를 드러낸다. 여성들의 주도적이고 강인한 모습을 많이 묘사해 준 이 멋진 서사는, 그저 공상 과학스러운 소재에 묻히기엔 너무나 뜨겁고 단단한 용암수처럼 느껴졌다.   

  

엄마를 향한 주영의 애정도 인상적이었다. 두 세계에서 모두 폭력적인 아빠로부터 순종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주영의 엄마 ‘배중숙’씨. 주영은 다른 평행세계의 개차반 같은 현실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 한가운데에 ‘엄마’를 놓았다. 억울해도, 고통스러워도 부부는 다 그런 거라며 참고 살던 그 시대 엄마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상처 입은 여자들을 위한 헌사라고 해도 적절할 것 같다.      




전완근 보다 멘탈이 더 멋진 여자, 주영


이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나에게도 평행세계란 게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는 어떤 모습일까. 또 다른 세상의 나와 주변인들이 행여나 슬프고 상처 받고 있다면, 나는 과연 엄주영처럼 그 세계의 평화를 위해 그토록 헌신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세계의 자신 그리고 그와 관계하는 모든 이들이 불행하지 않도록 애썼던 주영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멋진 건 그녀의 전완근뿐만이 아니었다.     

p. 251-252
작은 용기라고 할 수 없어요. 이런 말을 하는데도 몇 번을 망설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용기는 셀 수도 없고,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고, 무게를 잴 수도 없어요. 각자 다른 저울을 쓰니까. 그러니까 그냥, 똑같은 용기를 낸 거죠. 그 모든 사람들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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