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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Sep 28. 2021

나는 첫 번째 게임에서 죽고 말겠지만.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리뷰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나는 계급에 대한 이야길 좋아한다. 특히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속해있던 계급, 가난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했던 서민층 이하의 계급 이야기를. 처음 TV에서 보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티저에서는 이정재의 사정이 따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이 드라마를 오락적 요소가 다분한 머니게임 드라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드라마의 1-2화는, 게임에 참가하기까지 이정재(극 중 이름:기훈)의 동기와 사정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빌드업하며 진행된다. 엄마에게 용돈을 타 쓰는 철부지 캥거루족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태생적으로 착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10년이 넘게 자동차 회사에서 일했으나 회사는 하루아침에 그를 쫓아내고, 그는 노조활동을 벌이다 동료 한 명을 잃는 사고까지 당한다. 아내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그를 떠나 새살림을 차렸고, 열 살 된 딸아이는 비교적 넉넉한 새아빠 밑에서 지내며 이정재를 측은히 여긴다. 



설상가상으로 이정재의 홀어머니는 아프다. 당장 수술과 입원을 하려면 300만 원이 필요한데 그 돈마저 없어 그는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한다. 그러나 이미 경제적 신용을 잃은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게임에서 이기면 456억을 주겠다는 매우 사기스러운 세력을 만나게 되고, 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그 게임에 참가한다. 어차피 더 무너질 것도 없는 상황,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그 게임이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돈이 차고 넘치는 어떤 부자들이, 너무나 심심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다가 '상금을 줄 테니 목숨을 걸라'고 만들어진 황당한 취지의 게임.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정재와 마찬가지로 저마다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다. 여러 이유로 터무니없는 빚을 진 사람, 탈북자,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까지 사연과 동기는 다양하다.


더 이상 물러날 현실이 없는 그들은, 상금을 얻기 위해 부자들의 놀음에 기꺼이 목숨을 던지기로 한다. 참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게임)밖이 더 지옥이야"라고. 반면 위스키를 홀짝이며 이 게임을 관전하는 부자들은 단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돈을 건다. 애잔하거나 애처로움을 넘어서 기괴함이 느껴지는 수준의 빈부격차.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자화상이었다. 




내 20대 시절이 생각났다. 스물다섯 살엔가, 어떤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나에게 제시한 월급이 120만 원이었다. 거기서 세금을 떼면 통장에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이 들어왔다. 그 돈으로 매달 저축도 해야 하고, 사이버대학에 편입했던 터라 간간히 등록금도 내야 했으며, 교통비와 핸드폰 요금도 물론 내야 했다. 하물며 남자 친구에게 매일 얻어먹을 순 없으니 눈치껏 밥값도 계산할 줄 아는 여자 친구여야 했기에, 이런저런 사람 구실을 하고 다니려면 주머니 사정은 늘 여의치 않았다. 자주 적금을 깼고, 어떤 날은 돈이 모자라서 마찬가지로 힘든 엄마에게 손을 벌렸다. 또 어떤 날은 도저히 밥값을 낼 형편이 안돼서 친구들을 안 만난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내게 오징어 게임의 참가 기회가 주어졌다면, 난 참가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너무도 팍팍하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다 보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인생을 바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난 참가했다고 해도, 게임 운도 더럽게 없어서 아마 1차전에서 총을 맞고 죽었을 것이다. 그곳에서조차도 아무런 두각도 나타내지 못하고 엑스트라로 끝나는 삶. 그게 그때의 내 삶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오지랖 넓고 착하고 가난한 이정재를 넋 놓고 응원하게 됐다. 지 목숨도 간당간당하는 판에 여기저기 다 퍼주는 그가 속 터지면서도 말이다.


다행히 이정재는 주연이니까 끝까지 살아남는다. 456억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타서 고작 하고 싶은 게 '빚 갚고, 시장에 어머니 가게를 차려주는 일'이라던 이정재의 말은 오래도록 마음을 짓눌렀다. 그 마음 또한 알 것 같았다. 돈이 너무 없어서 세상을 미워했던 20대 중반의 나도 그랬으니까. 그 때의 나는 456억을 타면 무얼 하고 싶었을까? 베란다에 곰팡이가 서리는 싸구려 빌라에서 벗어나 엄마랑 살 따뜻하고 괜찮은 집 구하기, 글쓰기 수업 받아보기. 다른 좋은 곳 취직할 때까지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생계자금으로 쓰기. 내게도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부자들은 가진 돈이 너무 많아 쓸 데가 없어서 사람들의 생명을 건 게임에 돈을 걸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작 300만 원 병원비가 필요해서 목숨을 건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페라리를 몰거나 강남 몫 좋은 곳에 건물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작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목숨을 던진다는 게. 부자들은 모르겠지만, 경제적 곤궁에 처한 사람들의 삶은 그렇다. 당장의 내일을 도모할 자본이 없어서 삶을 포기하고, 세상을 저주한다.


 <오징어 게임>은 여러 신선한 소재와 화려한 스케일로 둘러싸여 있지만, 결국은 그런 부의 불평등, 돈 있는 계급이 돈 없는 계급을 유린하는 부조리를 꼬집는 드라마였다. 세상에 너무도 많은 이정재가 있음을 말하는 드라마. 화려한 외피 속에 가려진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읽는다면, 이 드라마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올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삼십 대가 된 나는 다행히도 100만 원의 월급으로 힘겨워하던 삶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사회는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고금리의 사채빚을 져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가득하다. 뭐, 어쩌면 한편에는 정말로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 가난한 자들을 체스 말처럼 사용하는 부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적어도, 당장 내일을 살아갈 희망이 없어 목숨을 베팅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사회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돈이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일, 정말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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