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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Oct 25. 2021

고양이를 들였습니다, 이름은 먼지고요.

돌고 돌아 가정분양으로 들인 아기 고양이


스카이캐슬의 염정아는 혜나를 집으로 들였고, 나는 고영희*씨를 집으로 들였다. 두 달 전 즈음 여름이 막 끝나갈 무렵, 우리 부부는 당장에 아이는 못 낳는 대신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였다. 중학생 때부터 두 마리의 고양이를 각각 십 년이 넘게 키워낸 전력(나의 친정어머니가 키우셨다고 봐야 하겠지만)이 있는 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별 두려움이 없었다. 대학시절 퐁퐁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운 적 있었던 (비록 성묘가 되기 전 가출을 했다고 하지만) 남편 역시 강아지보단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선호하는 쪽이었다.


*고영희 : 고양이를 사람처럼 부르는 속칭.


그간 동물을 대하는 세상의 방식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부끄럽지만 내가 전에 키우던 고양이들은 대전시의 시내 뒷골목에 커다랗게 형성되어있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5만 원에 주고 산 코리안숏헤어(이하 줄여서 '코숏'), 즉 한국 잡종 고양이었다. 그때는 곳곳마다 고급 품종이 아닌 코숏 고양이들을 그렇게 헐값에 팔아넘기는 가게가 퍽 많았더랬다. 가진 돈도 없었거니와 품종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늘 그곳에서 내 눈에 너무도 이쁜 고양이들을 현금 5만 원에 집으로 데리고 오곤 했었다.


이제는 그런 헐값에 고양이를 사고팔 수 있는 가게도 없어졌고, 동물윤리 대한 인식이 높아져 무리한 공장식 분양도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는 추세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 요즘 시대에 걸맞는 건강한 분양을 위해 여러 샵들을 돌아다닌 결과, 예쁜 품종에 대한 인기와 그렇지 못한 품종에 대한 냉대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꼈는데..., 분양가가 10만 원대라고 해서 찾아가 보면 거의 거동이 불가능한 아픈 고양이이거나 완전히 커버린 채 버림받은 성묘였으며, 그 샵에서 그나마도 책임감을 가지고 기를 수 있을만한 건강한 고양이들은 모두 때깔이 화려한 품종묘였다. 


그런 식으로 남편과 여러 분양 샵들을 돌았으나, 모두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낮은 분양가를 올려놓고 유인한 다음, 막상 찾아가 보면 화려한 품종묘를 권유하는 방식. 무엇보다 먼치킨, 스코티쉬폴드, 아비시니안 등등의 어여쁜 품종들 속에서 비인기 품종에 속하는 '코숏'은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애매한 동정심으로 아픈 동물을 떠안자니, 행여라도 후회하거나 파양하는 일이 벌어져 다시 동물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품종묘들은 또 어찌나 하나같이 가격이 비싼지. '책임분양비'라는 명목으로 붙여놓은 분양가는 그나마 조금 아기 티를 벗어서 인기가 떨어진 고양이가 80만 원이었고, 아기 티가 팍팍 나는 귀여운 고양이들은 모두 100만 원을 기본으로 넘었다. 이게 과연 생명에 대한 책임비인지 품종에 대한 책임비인지는 참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코숏은 없나요?"라고 물으니 모두가 시큰둥하게 '분양 샵까지 와서 무슨 코숏을 찾냐'는 눈빛을 보낸다. 결국 빈정이 상해버린 나는 이런 식의 샵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분양은 이뤄질 수 없을 깨닫고 곧장 다른 길을 모색하기에 이르는데.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그리하여 남편과 나는 정말 순수한 원형 그대로의 분양, 일반 가정집에서 자연적으로 태어난 고양이들을 받아오는 '가정 분양'을 알아보게 됐다. 그 세계는 또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인터넷 카페를 타고 타고 들어가 알게 된 곳에서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원하는 분양 방식의 고양이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누구도 품종에 연연하지 않으며, 길에서 발견했든 코숏이든 믹스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중 두어 군데의 후보가 있었으나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곳이 천안의 모 가정집이었다. 우리는 속전속결로 그 집에서 태어난 아기 고양이를 받기로 하여 초가을의 토요일 어느 날, 아기 고양이를 받으러 천안으로 향했다.


안내받은 주소에 다다라 차를 대고 기다리는 그 몇 분은 참 설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 아주머니가 나오실 것으로 예상했으나, 앳된 청년이 아기 고양이를 가슴팍에 붙이고 나왔다. 생애 처음 바깥에 나왔는지 벌벌 떠는 아기 고양이를 전해주며 이내 아쉬운 듯 청년은 이것저것을 함께 챙겨주었다. 사랑이 충만한 환경이었구나. 건강한 출처를 확인하고 나니 몹시도 안심이 됐다. 우리는 미리 당근 마켓으로 마련한 이동장에 아기 고양이를 잘 넣어 뒷자리에 조심히 놓았다. 비록 아기는 넣어둔 그대로 얼어붙어 연신 나를 노려보았지만.


"미안, 이제 내가 네 엄마야~ 금방 우리와 사랑에 빠지게 될 거야 아가"


그렇게 작고 몽글몽글하고 따스운 생명체가 우리 부부의 공간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름은 '먼지'라 지어주었다. 러시안블루 엄마와 턱시도 코숏 아빠를 만나 탄생된 아기 고양이의 빛깔이 어딘지 모르게 회색빛, 즉 먼지 색깔이 돌았기 때문이다. 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러운 먼지야, 네 품종이 뭐건 간에 우리는 너를 매우 매우 사랑해....,



우리집 아기고양이 '먼지'.


손바닥만 한 먼지가 우리 집에 들어와 나름의 가족 구성원 역할을 하게 된 지 어언 두 달이 되어가는 요즘, 세상의 모든 부모들과 집사들이 그렇겠지만 "이 아이가 없었더라면"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너무 신기한 일이다. 이제는 이 조그만 생명체를 일 순위로 집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반려동물의 위엄은 얼마나 대단한가.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사서 막아놓는가 하면, 조금 멀리 외출을 하는 날에는 무슨 일이라도 날까 싶어 캠을 설치해두고 어플로 확인하기도 하고, 온 사방이 아기 고양이를 한껏 의식한 풍경들이다. 그렇게나 모던하고 이쁘던 신혼집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깔로 변해버렸음에도 행복해하는 아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렇게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세상 모든 아기는 정말 너무너무 이쁘다. 동물 아기도 그렇다. 잔뜩 침을 발라놔 꼬순내가 나는 온몸의 털도 이쁘고, 턱시도 아빠를 닮아 장갑을 낀 흰색 발도 이쁘고, 초롱초롱한 눈도 이쁘고, 가끔 아가리 똥내가 나긴 하지만 분홍빛 혓바닥도 이쁘고. 매일매일 예뻐서 입이 닳도록 뽀뽀를 하게 되니, 객관성은 나날이 떨어져 가고 애정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러니 내 배로 낳은 애는 대체 얼마나 이쁠까.



동물과 사람의 연도 인연이라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연은 또 어찌나 신기한가. 그 많고 많은 가정 분양 고양이들 중에 하필 네가 우리 고양이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특수한 우연이고도 적은 확률일까. 오래오래 아프지 않게 잘 키우고 싶다. 건강히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 또 하나 늘었다. 아프지 말고 열심히 돈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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