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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렸을 때만 해주세요, 오지랖.

[정사각형] 01(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우리 아랫집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부동산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아랫집 벽 쪽으로 물이 새어 벽지가 다 젖었다는 게 아닌가. 정황인즉슨 우리 집 쪽의 수도 어딘가가 문제여서 그렇다는 거였다. 그러니 우리 집 바닥을 뜯어 공사해야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을 들은 지가 한 2주쯤 되었을까. 나는 이 일로 실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많이 예민해하는 성격인데, 벌써 2주째 그렇다 할 확실한 공사도 없이 부동산 아주머니와 인부들이 번갈아가며 찾아오셔서는 '이게 문제인가? 저게 문제인가?' 애매한 추측만을 하고는 돌아가시는 거였다. 그때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그분들을 맞이해야 했고, 점검을 한답시고 헤집어진 자리를 매번 다시 치우고 닦아야 했는데...,


오늘은 거의 다섯 번의 방문 끝에 드디어 공사가 진행되는 날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남편과 일정을 만들어 집을 비웠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공사를 잘 해주실 것으로 믿고서. 고양이는 안방에 집어넣어 놓았고, 현관 비밀번호도 바꾸어놓고, 공사가 벌어질 자리 주변을 싹 정리해놓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것저것 볼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 부동산 아주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택배 소파 위에 놓았어요^^」


이 문장에서 아무런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축복받은 성격이리라. 나는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택배가 어떤 물건인가. 택배시설과 택배차와 현관문 앞 온갖 군데를 구르고 굴러 먼지를 묻힌 물건이다. 그래서 물건이 훼손되지 않고 때 타지 않게 하려고 포장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온갖 데를 굴러다닌 택배를, 포장 그대로 우리 집 소파 위에 놓으셨다는 거였다. 사람의 청결한 살이 닿고 때때로 제2의 침대가 되어주기도 하는 그런 공간에! 아니 왜? 부탁도 안 했는데?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허겁지겁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거실에 즐비한 공사장비는 둘째치고 나의 깨끗한 소파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택배가 눈에 띄고 말았다. 아아, 정말 웬만하면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소리는 하고 싶지가 않은데... 그 이해되지 않는 선의에 그만 입 밖으로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온다.


"아니 그냥 밖에 두시지... 이 더러운 걸 여기다 두시면 어떡해요..."


그러나 해맑은 부동산 아주머니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다는 지 모르겠다는 듯 내게 반문한다.


"왜요 왜요, 쓸 거 아니야? 반품할 거야?"


그러니까 부동산 아주머니의 생각은 그거였다. '택배가 와있네 - 쓸 물건이겠구나 - 집안에 들여야지 -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자 - 아 나 정말 잘했지? 짝짝짝!'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주머니 입장의 선의일 뿐이다. 사실 이것까진 너무 변태스러워서 공개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택배를 신발장 안으로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다. 모든 택배는 다 문 밖에서 뜯는다. 택배 상자에 바퀴벌레가 알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도 있었고, 과거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청결함과는 거리가 먼 현장을 진즉이 본 적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겐 택배가 뜯지 않은 채 집에 들어오는 것이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더러움이었으니.


그래 여기까진 내 까탈스런 결벽이 맞으니 그렇다 쳐도, 부탁하지도 않는 일을 구태여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하시는 그 저의는 정말 이해해드릴 수가 없었는데..., 내가 까칠하게 나오자, 부동산 아주머니는 자신은 선의를 베풀었는데 왜 그러냐는 식의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가 더 얄미워 보는 자리에서 물티슈를 꺼내 소파를 벅벅 닦아냈다. 그러니 그제야 내가 무엇에 꽂혀 그러는지 알아채시는 듯하다. 왜 부탁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거예요 왜. 그것도 하필 왜 아주머니 방식으로요.


이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가 우리나라에 있다. '오지랖'.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도 자신만의 기준으로 참견을 하는 그 마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오지랖을 떠는 사람의 마음은 대개가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자기 생각에는 그게 맞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가볍게 적용할 뿐이다. 그것도 나름대로는 약간의 애정을 겸비해서. 하지만 그 오지랖을 당한 쪽은 기분이 늘 좋지 않다. 바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결국 별 도움이 안 될 때가 많기에.




예전에 이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오이를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김밥집에 가서 오이를 빼 달라고 하고 김밥을 샀는데, 집에 와서 먹으려고 보니 오이가 들어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하여 왜 오이를 넣으셨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김밥집 답변 왈. "우리 김밥은 오이를 넣어야 맛이 있어서요..."


나는 이 일화를 듣고 옅은 소름이 오소소 끼쳤었다. 물론 나는 오이를 좋아한다. 내 입엔 청량하고 아삭하니까. 하지만 반대로 세상엔 '오싫모(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게 있을 만큼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는 거대하다. 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오이를 싫어하는 건 더는 편식의 문제가 아닌 지 오래다. 선천적으로 오이의 냄새와 맛을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하고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람들은 오이가 스쳐간 음식에서도 오이의 냄새를 맡을 정도로 그 예민함이 남다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오이는 절대 타협이 불가능한 요소일 수 있는 것. 그런데 거기다 대고, 제 입에 오이가 맛있다고 해서 오이를 빼 달라는 주문을 무시하고 넣는다면, 그건 오싫모들의 입장에선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행동이지 않겠는가!


단적인 예로 오이 일화를 들었지만, 이런 일은 살면서 아주 많이 일어난다.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에게 "마시면 늘어"라며 술을 권하는 꼰대 부장,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사람에게 기어이 추우니까 따뜻한 커피를 사주는 사람, 쓰다 보니 생각났는데 바지 밑단을 살려서 줄여달라고 했더니 "그러면 안 예쁘다"며 밑단을 제 맘대로 안 살리고 줄여놓은 수선집 아저씨도 있었다.


그 마음은 알겠으나, 그 마음이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도 알겠으나, 그들의 눈에는 그게 더 낫고 멋지고 맛있고 그런지도 정말로 알겠으나..., 그러나 그 '선의'를 당하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를까. 아무리 오이까지 들어가야 완벽한 맛이 될 지라도 차라리 오이 없는 김밥이 좋은 사람들이 있고, 술을 안 마시면 평생 승진도 못하고 왕따가 된대도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이 있으며, 25년 경력의 수선집 아저씨 눈에는 별로여도 내 눈에는 괜찮을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의 공간을 침범하는 건, 그래서 때때로 물리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의 첨예한 기호와 취향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뭉개고 들어오는 것 또한 누군가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만으로 섣부른 조언이나 호의를 베푸는 것이 경우에 따라 오지랖이 될 수도 있는 일. 물론 모든 이들이 타인의 보이지 않는 '선'을 알아채는 기민함을 갖출 수야 없겠지만, 때때로 자신의 과도한 선의가 타인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만 인지해도, 오늘처럼 기분이 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나의 택배는, 부동산 아주머니의 불필요한 선의에 의해 푹신한 소파까지 왔다가 다시 현관으로 쫓겨났다. 나에게 택배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애초에 문 바깥이다. 제 아무리 귀하고 값비싼 물건이더라도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공사를 맡아주신 인부 아저씨들은 또 다른 면모로 나에게 충격을 선사하시니. 녹슬고 거무튀튀한 공사장비들을 하필 다른 바닥도 아닌 우리 집 거실의 뽀송한 카펫 위에 턱턱 올려놓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폭신폭신해서 거기다 두신 걸까? 힘들게 일하시는데 그것까지 보는 앞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나, 사람의 섬세함이 이리도 다를 수 있음에 살짝 놀랐다.


심지어 공사를 한다고 들어젖힌 장판들은 늘어나 이음새가 덜렁거리고, 그 밑으로는 부서진 시멘트 먼지가 한가득 흩날리는데도 그저 '공사가 완료되었음'에 벌떡 일어나셔서는, 자리가 흐트러진 그대로 남겨두고 돌아가시는 모습에 우리 부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올 때마다 발 커버를 착용하고 항상 깔끔하게 정돈하고 돌아가는 정수기 AS나 바퀴벌레 업체의 방문 때는 전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기에.


그렇게 잔뜩 어질러진 공간을 청소기, 빗자루, 물티슈까지 총동원해 남편과 열심히 청소를 한 끝에야 한 숨을 돌렸다. 짧은 하루가 참 고단하게 느껴진다. 문득 그동안 나는 누구에게 오지랖을 부려 상대의 마음을 헤쳤을지, 어떤 둔감함으로 타인을 난감하게 했을지 헤아려본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있었겠지. 오늘에서야 그 경솔한 마음에 깊은 사죄를 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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