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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는 법

[정사각형] 02(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사실, 나는 고양이를 십 년 이상 키워왔지만 그렇게 체계적이고 섬세한 집사는 아니었다. 동물을 매우 아낌없이 사랑하긴 하지만, 연령대와 특성에 맞게 장비를 구입하고 매일매일 관찰하는 류의 집사는 아니었던 것. 냉정한 사실을 보태자면 나는 고양이가 그저 예뻐 데려온 철부지 집사에 불과했고 그 모든 뒤처리를 담당하는 것은 늘 친정엄마의 몫이었다. 보통의 집안처럼 딸은 늘 저지르고, 엄마는 늘 수습하는 그런 형태였달까. 하지만 그런 엄마 또한 보통의 집사였기에, 한가득 사료를 쌓아놓고 잘 먹으면 예뻐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 식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율적이고, 조금 안 좋게 말하면 방목하는 스타일.


나는 모든 집사가 엄마와 나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아기 고양이를 입양해 신혼집에 데려오면서, 내가 굉장히 러프한 스타일이라는 걸 남편을 보고 깨달았다. 내 남편은 매뉴얼과 체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ISTJ이십니다) 그의 그런 성격은 고양이 양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우선 그는,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한 날부터 나랑 자세가 달랐다. 그는 유튜브를 켜 검색어를 입력했다. '고양이 입양 첫날'. 아니 그냥 가서 데려오면 되는 거지 뭘 검색을? 생각했으나 유튜브에는 이미 고양이 입양 첫날에 집사가 유의해야 할 점들이 수두룩빽빽하게 올라와있었다. 안아서 받아올 생각을 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반드시 이동장에 넣어서 데려와야 하며, 데려온 후에도 만지지 말고 충분히 집안을 탐색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집에 데려오면 바로 씻기고 뽀뽀하고 놀 생각부터 했다) 나름 오래된 고양이 집사로서 뭔가 자존심은 상했지만, 유튜브 속의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그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남편의 무한 검색은 과연 고양이 입양 첫날에 그치지 않았다. 아기 고양이에게 사료를 얼만큼 줘야 하는지(아니 그냥 쌓아놓고 맘껏 먹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응, 아니란다), 손을 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알고 보니 손으로 놀아주면 평생 손을 공격한단다. 그래서 내가 키운 고양이들이 그 모양이었구나... 깊은 한숨), 장난감은 어떤 걸 써야 하고 얼마나 놀아줘야 하는지(나는 평생 시간을 계산해 놀아줘 본 적이 없었다...) 등등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검색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덕분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심한 집사였는지 깨닫게 됐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그런데. 남편과 전혀 다른 방식 탓에 사실 처음엔 피곤했지만(뭐만 하면 유튜브 검색부터 하고 내가 틀렸다고 하니), 지내다 보니 은근히 이거 장점 같다. 내가 그런 쪽에 둔감하니 못 미더운 남편이 다 알아서 하는 게 아닌가. 밤낮으로 밥을 계산해서 주고, 자기 전에 꼭 10분 동안 열심히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알아서 캣타워를 사서 설치하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키우니 이거 이거... 너무 편하잖아?


결국 나는 집사로서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남편이 하라는 대로 낮시간에 한번 고양이 똥을 치워줄 뿐이다. 그리고 놀아주는 것도 남편이 저녁에 퇴근해서 해주니, 나는 그저 고양이가 이쁠 때마다 가서 뽀뽀하고 만지기만 하면 되는 것. 깐깐한 사람과 살면, 결국 깐깐한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게 되니 함께하는 사람은 노고가 줄어드는 구조다. 뭐, 의도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난 편하니까 이 어찌 좋지 않을 수가.


그러면서 자연스레 훗날 아이가 태어나면 이것저것 더 열심히 공부하고 케어하는 쪽이 남편일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막 키우는 엄마가 되지야 않겠지만(정말?) 나보다 더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 옆에 있으니 뭔가 마음이 든든한 느낌이랄까. 내 미래의 아이야, 너의 성장과정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케어하는 아빠가 있을 거야...., 엄마는 그저 아빠가 너를 혼내면 방에 들어가 너를 다독여주는 너그러운 엄마가 될 것 같구나.




남편은 그렇게 열심히 고양이에 대한 공부를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우리 친정집에 있는 뚱냥이(뚱뚱한 고양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때와 체중에 맞춰 계산해서 사료를 주지 않고 그냥 수북이 밥그릇에 사료를 쌓아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정집 고양이는 거의 삵으로 보일 정도로 뚱뚱하고 거대하다. 옆에서 하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남편이 쫑알대서, 어느 날은 친정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사료를 계산해서 줘야 된대. 그렇게 가득 쌓아놓고 먹이면 엄청 뚱뚱해진대"


그러니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11년을 이렇게 풍족하게 먹고살았는데 갑자기 사료를 줄이라고? 그럼 얼마나 스트레스받겠어. 그리고 이미 뚱뚱해. 어차피 살날도 얼마 안 남은 거 그냥 뚱뚱해도 행복하게 살게 하지 뭐"


그렇지. 이게 우리 엄마 스타일이다. 내 엄마니까! 각자의 양육 스타일이 있는 것으로 여기며 더는 엄마의 방식에 반기를 들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히 내가 친정집에 보내주는 사료는 실내생활을 하는 고양이를 위해 저칼로리로 나오는 사료이니, 그것으로나마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보는 수밖에.


오늘도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저울에 달아가며 밥을 계산해서 주고 갔다. 정말 나와는 다른 치밀한 유전자다. 덕분에 우리 집 아기 고양이는 늘 표준체중을 기록하며 클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내가 틈틈이 남편 몰래 간식을 주고는 있지만 말이다.)


서로가 모자란 면을 테트리스처럼 채워가며 사는 게 부부라면, 나와 남편은 이만하면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여보, 난 당신의 꼼꼼함이 너무 좋아. 그니까 당신은 쭉 나무를 봐. 자잘한 것보단 방향성과 큰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나는 숲을 보도록 할게. 이거 천생연분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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