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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Sep 16. 2021

말하기도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었네

정말이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없다, 말하기 또한.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요새는 말을 못 하면 안 되는 시대다. 교수도 방송에 나와 말을 해야 하고, 전문직 종사자들도 더 얼굴을 알리기 위해 강연을 다니거나 인터뷰를 한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고전 문학가들 중에는 히키코모리처럼 알려지기를 거부하고 부지런히 글만 쓰는 작가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21세기엔 그런 작가가 통 보이질 않는 걸 보니 세상이 변한 것 같기는 하다. 보여지지 않으면 도태되는 요즘 시대에서는 그래서 작가도 말을 잘해야 된다. 내 책을 홍보하려면 언제나 흔쾌히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다녀야, 내 책이 잘 팔릴 수 있기 때문에.


저번 주 나는 난생처음 북토크란 것을 해봤다. 처음으로 출판사를 끼고 출간한 나의 어엿한 책에 대해 주어진 소중한 기회였다. 북토크권을 구매해주신 감사한 분들 앞이었기에 나는 뭐든 말해야 했는데 저런. 불특정 다수 앞에서 청산유수로 떠들어볼 일이 없었던 나는 그만 제대로 버벅대고 말았다. 머리는 하얘지고 식은땀은 흐르고, 시선처리는 불안정했으며,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럼에도 '사고'를 내면 안 된다는 일념 하에 닥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나갔다. 글을 쓸 땐 그렇게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수없이 고민하고 갈고닦던 나는, '말해야'하는 자리에서는 횡설수설 두서도 없이 말하는 사람이 되고야 만 것이다.


예전엔 그런 기회가 생길 즈음의 능력자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말솜씨도 갖춰지는 줄로 알았다. 내가 무수히 보아왔던 방송에서, 강연에서, 인터뷰에서는 도무지 버벅거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그동안 내가 왕창 착각한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하기까지, 그들은 분명 많은 흑역사를 기록했을 테고, 그럼에도 미디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말솜씨를 갈고닦았을 텐데..., 최종적으로 반듯하게 다듬어진 말솜씨만을 듣게 된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게다.


이건 마치 데자뷔 같았다. 작가 지망생이던 과거의 내가, 언젠가 서점에 놓인 수려한 책들을 들춰보며 했던 안일한 생각. '와, 이 작가는 글을 어쩜 그렇게 쉽게 쓰지?'와 같은 생각. 피가 나도록 다듬고 다듬어서 나온 책들이 내 눈에 쉽게 읽힌다고 쓰기도 쉬웠을 거란 생각은, 내가 글을 제대로 써본 적 없었기에 했던 얕은 생각이었는데.


글쓰기도 말하기도, 지난한 노력을 동반한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정말이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없다. 술술 읽히는 글이 되기 위해 작가들이 몇 번이고 퇴고를 거치듯,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도 숱한 실패와 노력이 있었다는 걸, 엉망진창 북토크를 해본 끝에야 알게 됐다. 술술 말하기 위해서는, 술술 읽히는 글을 쓰는 것처럼 지난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연습 따위를 해보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뭐든 술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1시간 30분이라는 긴 북토크를, 탄탄한 짜임은커녕 두서도 없이 난리법석으로 마무리하고 나서 나는 그야말로 기진맥진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쓰러져 이를 바라보는 남편과 출판사 대표님에게 신음했다.


"정말... 정말 유튜버들 대단해.. 방송인들 대단해!"


그러고 돌아와 평소처럼 유튜브 채널을 이리저리 보는데,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하고 싶은 말을 요목조목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전과 달리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세상에 쉽게 사는 사람은 정말 없구나 싶었다. 유튜브 피드 가득 안정적이고 차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몇십 분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늘도 나는 내 눈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무엇들이 얼마나 크고 작은 연습들을 거쳐 탄생된 자연스러움일지를 가늠해보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재능 없는 말하기 실력을 키울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중에 어느 쪽이냐고? 그래도 노력해보자는 데에 힘을 실어보는 바다. 이 미디어 시대에, 말하기를 거부하고 히키코모리 작가가 되어도 내 책을 누군가 읽어줄 만큼 내 글 실력이 탁월하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으므로. 나를 드러내 내 책을 소개하고 카메라 앞에서 빵긋빵긋 웃으며 잘도 말하는, 그런 친근한 작가가 되고 싶으므로.


그러려면 스피킹 학원을 등록해야 할까? 잠시 생각해보며 이 밤이 지나간다.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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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woodumi  

블로그 blog.naver.com/deum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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