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이렇게나 야속합니다
시간에 쫓겨 여유가 없는 사람 또는 그런 현상을 '타임푸어(Time poor:시간이 부족한)'라고 한다. 바빠서 터져버릴 것만 같은 이 현대사회에서 타임푸어가 아닌 사람이 어딨으랴마는, 나도 감히 타임푸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일을 해서 뭔가를 할 시간이 없어 불만이었지만, 일을 관두니 또 그 시간만큼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나서 마찬가지로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운동도 해야 하고, 피부관리도 해야 하고, 틈틈이 책도 읽고 싶고, 이렇게 내 공간에 글도 써야 하지만, 오늘도 도서관에서 계획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공부를 끝내고 돌아오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그냥 자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나와의 약속이기에 글은 꼭 쓰
고 싶어 오늘도 늦게 자는 것을 택하는 나다.
생각보다 시간은 무지하게 빠르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늘 1.5배속으로 흐르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정상 속도로 느껴진 적이 없었다. 밥을 조금만 여유 부리며 먹어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원하는 장소로 향하는 이동시간은 한 시간이 우습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세워놓은 계획은 창대했으나, 몇 문제만 조금 길게 붙잡고 있어도 한두 시간이 바람처럼 증발해버린다. 정말 놀랄 노자다. 누가 옆에서 내 시간을 조작이라도 하는 것 같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을까? 놀기에도 짧고, 공부를 하기에도 짧고, 잠을 충분히 자기에도 짧은 야속한 시간. 어쩌면 시간의 첫 번째 속성은 '빠르다'라는 것일지도.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처리하기에 매번 부족하기만 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현대인들의 마음은 매일 더 조급해지고 쩨쩨해지는 것 같다. 이루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일수록 아마 더 심하겠지.
타임푸어야 이제 현대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이로 인해 생겨나는 다른 슬픈 면도 있다. 세워놓은 계획을 조금이라도 더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조이다 보면 시간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마저 푸어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시간의 효율을 위해 이런저런 자투리 시간까지도 긁어 모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변 상황들을 무심히 지나치게 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하는 것마저도 시간 낭비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루고 싶고 이뤄야만 하는 것들이 많아진 요즘, 나는 주변에 신경을 예전만큼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다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란 건 알지만, 주어진 척박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상대적으로 자제해야만 하는 어떤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효율을 위해 외면하는 그것들이 내게 전혀 무의미한 것들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 열심히 달리면서도 어딘가가 공허한 기분이 들고 마는 것. 이게 타임푸어 양상이 빚어낸 비극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나는 앞으로도 타임푸어의 길을 가야 하는 팔자다. 메마른 환경에, 이루고 싶은 건 많고, 못 이루면 억울해서 곱게는 못 죽을 것 같으니, 열심히 시간을 조이며 사는 수밖에.
시간이 없어 늘 못 만났던 그리운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책상에만 앉아 지내느라 힘없이 처져가는 내 엉덩이를 위해 운동도 하고 싶고, 엄마와 늦은 밤 텔레비전을 보며 생각 없이 웃고도 싶지만.. 또 그것들이 잡아먹을 시간을 생각하면, 아차, 부담감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타임푸어에게 이토록 자비란 없다. 욕심을 줄이던지, 그냥 열심히 야박하게 살던지 양자택일을 해야한다. 나의 유일한 대안은, 가끔씩 그 놈의 부족한 시간 때문에 놓친 것들을 한 번씩 붙잡는 시간을 의무적으로 가지자는 것이다. 횟수를 줄이되 아예 없애지는 말자는 다짐.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에게 전화하기, 한 달에 한 번 나들이하기, 주말에 책 읽기 운동하기 엄마와 데이트하기 등등. 누군가는 이마저도 줄이고 줄여 아예 자신의 시간표에서 제명해 버렸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독하지는 못한 것 같다.
사실 타임푸어가 무서운 것은 아닌데, 그 때문에 마음까지 빈곤해지는 것은 조금 무섭다. 자발적 타임푸어 모드를 해제하고 난 뒤에, 내가 놓친 것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려주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니까. 언젠간, 원하는 궤도에 오르고 나면. 지금보다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풍족해졌으면 좋겠다.
2017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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