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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n 01. 2017

영화<겟 아웃>

내 몸에 누군가가 침범하려 한다면 ?


나의 몸의 주인은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를 '육체'와 '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면, 어쩌면 진정한 '나'란 내 육체라는 공간을 빌려 살아가는 나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육체에, 내가 아닌 다른 의식의 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 황당한 공격으로부터 나의 육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영화 <겟 아웃>은 신체조건이 우수한 흑인의 몸을 빌려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백인들의 기괴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크리스는 사진작가로 살아가는 미국의 평범한 흑인이다. 인종차별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백인 여자친구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 왠지 모르게 그는 위축이 된다. 그래도 고운 인격의 소유자인 여자친구 로즈를 낳아주신 부모님이라면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보는 크리스다.


로즈의 대저택에는 신경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로 성공한 백인 부모와 함께, 두 명의 흑인 종업원이 있다. 흑인이라는 자격지심 탓이라고 생각해보지만, 크리스는 두 흑인 종업원에게서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낀다. 혼이 나간 것 같은 두 종업원의 눈빛과 어색한 말투 그리고 몸짓. 마치 다른 혼이 빙의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두 종업원의 공통점은, 그 저택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어필한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훈련된 것처럼. 알 수 없는 이 묘한 집안의 분위기에 크리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날 밤, 로즈의 어머니는 잠에서 깬 크리스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내뿜는 강력한 어떤 기운에 이끌려, 털어놓을 생각이 없던 자신의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녀의 최면에 의해 '침전의 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으로 무한히 떨어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경험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기에 크리스는 자신의 기분 탓에 꾼 악몽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이튿날 로즈의 집에서는 이웃 백인들과 함께하는 파티가 열리고, 여기서도 유일한 '흑인'인 크리스의 소외감은 더욱 짙어진다.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백인들의 집단 속에서 의무적으로 인사를 나누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크리스는, 우연히 파티에서 흑인 손님을 발견한다. 그런데 크리스를 반기는 흑인의 모습이, 소름 끼치게도, 로즈의 집의 종업원으로 일하는 혼이 나간 듯한 두 흑인과 동일한 모습이다. 초점이 나간듯한 눈빛, 흑인 같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행동. 흑인 특유의 인사법인 주먹을 그에게 건네보지만, 흑인 손님은 그 인사법을 모른다는 듯 크리스의 주먹을 손으로 쥐어버린다. 거기서 크리스는 직감한다. 무언가 이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 크리스가 이 기이한 상황을 친구에게 전하기 위해 흑인 손님의 사진을 몰래 찍으려는 순간,  흑인은 별안간 이성을 잃고 크리스를 향해 덤벼든다. 그의 입에서는 "겟 아웃(나가)!"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온다. 일순간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고, 정신과 치료사인 로즈의 어머니가 흑인을 진정시키며 분란을 잠재우지만, 이미 이 기괴한 상황을 목도해버린 크리스는 직감한다.


이 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그는 로즈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로즈는 크리스와 같이 집을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그날 밤 짐을 싸고 떠나려는데, 로즈의 방에서 크리스는 믿기 힘든 것을 목격하게 된다. 흑인 남자 친구는 처음이며, 어린 시절 첫 키스도 할 줄 몰라 상대의 혀를 깨물었다던 순수하고 천사 같은 여자친구 로즈의 사진 더미들. 그 사진 속에는 다수의 흑인들이 로즈의 옆에서 웃고 있다. 사진을 넘길 때마다 바뀌는 흑인 남성들은 모두 로즈의 연인처럼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리고 로즈의 집에서 매우 행복하다던 종업원 월터와 조지나도.. 그 사진 속에서 로즈와 함께 웃고 있다. 모든 의심이 사실로 맞춰지는 그 순간.. 하필이면 로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빨리 시동을 걸어야 할, 차키를 찾지 못한다. 이제 이 집에는, 그 사진 속 주인공 중 하나가 될 크리스와, 미스터리한 집안의 백인들만이 남아있다.


크리스의 여자친구인 로즈 아미티지. 그녀의 미끼로 건져진 수많은 '우수한' 신체의 흑인들은, 아미티지 집안의 비밀스러운 거래를 통해 백인들의 욕망을 채워오고 있었다. 흑인의 우수한 육체에 깃들어 제2의 삶을 살기 위한 백인 집단의 기괴한 문화가 은밀히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로즈가 택한 수많은 흑인 남성 중 하나인 크리스는, 한 백인 남성의 타겟이 되어, 사진작가로서의 크리스의 심미안을 탐내는 그에게 육체를 내어주어야 하는 재물이 된 것이다. 크리스는 곧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게 될 백인 남성에게 묻는다. 왜 하필 우리(흑인)냐고. 그에 대한 백인 남성의 대답은 아주 무심하고 간단하다. "글쎄. 너희들이 가진 어떤 신체적 우수함 때문이겠지" 너희들이 그런 육체를 타고났을 뿐, 그걸 택한 우리의 잘못은 아니잖아, 라는 듯한 백인의 무성의한 답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백인 남성에게 크리스는 단지 값을 주면 얻을 수 있는 '물건'일 뿐이었다.


크리스는 그 공포의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많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상상한 것 이상의 방식으로 인종차별을 만들어내는 백인들에 대한 환멸, 믿었던 여자친구에 대한 배신감, 흑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원망, 그리고 체념. 


다행히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는 기지를 발휘해, 미치광이 집안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백인들을 죽이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악마였지만 사랑했던 로즈마저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녀의 목을 조르려던 순간, 공교롭게도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등장한다. 이는 영화 초반부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크리스에게 불필요한 검문을 하던 백인 경찰차와 완벽히 오버랩된다. 이제, 그 경찰차에서 백인 경찰이 내린 뒤, 자신의 육체를 빼앗으려던 백인 집단으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흑인 남성의 이야기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그를 범죄자로 몰아 체포할 일만 남았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도 가엾고 안타까웠다. 발버둥 치고 발버둥 쳐도 결국 백인 집단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하는 한 흑인의 운명을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표현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보안관으로 일하던 크리스의 흑인 친구가 경찰차에서 내려 그를 맞이한다. 그의 육신을 빼앗으려 했던 잔인한 백인들 사이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크리스. 그는 이제, 다시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외로운 두 흑인의 기괴한 이야기를 다른 백인 경찰들이 믿어줄까? 결말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지지만, 나는 크리스가 이 괴물 같은 백인의 욕망을 영원히 타파하는 결말을 내었기를 응원해보았다.


분명 영화는 가상을 바탕으로 했지만, 한편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 씁쓸한 예감이 들었다. 튼튼한 육체의 흑인들. 그들은 한 때 역사 속에서 그 체격과 힘을 바탕으로 백인의 노예로 쓰여왔고, 이후 노예제와 인종차별이 철폐되었지만, 영화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들의 육체를 탐내는 백인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든 백인에 의한 흑인 차별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차별 속에서 크리스와 같은 희생양이 분명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영화 <겟 아웃>은 21세기에 벌어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인종차별을 느끼게 한 영화였다. 이 이야기는, 비단 백인-흑인 간의 프레임을 떠나, 자본주의에서 힘을 가진 자가 어떤 방식으로 그렇지 못한 자를 억압하게 될지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상은 자본이라는 권력을 가진 자가 지배하고 있다. 단지 역사 속에서 먼저 자본을 선점한 인종이 백인이었을 뿐 아닐까. 백인이든 흑인이든 동양인이든, 우리는 모두 지배받기 싫은 '자유의 몸'이다. 경매를 통해 크리스의 육신을 '구매'하려던 시력을 잃은 미술거래상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시력을 잃고 살아온 것은 고통이면서, 육신을 빼앗길 크리스의 고통은 왜 인지하지 못하냐고. 역사적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가져 온 백인 문화의 어쩔 수 없는 폐해일까. 만약 힘 있는 누군가가 돈으로 나의 육신을 가지겠다고 한다면,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나는 크리스처럼 기지를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육신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침전의 방에서 끊임없이 외칠 뿐이겠지. '겟 아웃'이라고. 






2017 매우주관적인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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