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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n 29. 2017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피카소,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1920년대 파리를 여행하는 달콤한 시간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옛 것에 대한 향수. '향수'라는 감정은 비단 실제로 경험해본 시대의 감정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으로든 사진으로든 영화로든 접해 본 적 있는, 그래서 간접적인 경험의 기억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향수라는 감정이 일어나니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 '향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자친구 가족을 따라 우연히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주인공 '길'은 파리와 사랑에 빠진다. 생계형 시나리오작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한 문학도를 꿈꾸는 그의 문학적 우상들─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활동했던 주 무대가 파리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파리 곳곳의 풍경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아름다운데, 길이 동경하는 1920년대의 파리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기에 길에게 더욱 의미가 짙어진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은 항상 더욱 아름답게 왜곡되기 마련인 걸까. 길은 1920년대의 파리를 일컬어 '골든에이지(황금의 시대)'라고 한다.


골든에이지는 언제일까


피츠제럴드(F. Scott, Zelda Fitzgerald)부부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 거트루트 스타인(Gertrude Stein)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길에게 골든에이지는 1920년대 파리이다. 공상과학적인 이 영화는, 달콤하게도, 자정이 되면 1920년대의 '푸조' 구형 자동차가 나타나 길을 데리고 1920년대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1920년대 문학계를 주름잡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젤다 피츠제럴드' 부부, 그들의 정신적 멘토이자 문학가인 '거트루트 스타인 ', 화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1920년대의 파리는 미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몰려든 문학계 예술계 인사들로 최고의 시대를 달리고 있다. 길은 매일 밤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해, 동경하던 문학가 예술가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보다 현시대에서는 비평 받을 용기가 나지 않던 자신의 소설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2000년대에 쓰인 자신의 책을, 헤밍웨이와 거트루트 스타인에게 말이다.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약혼녀 '이네즈'와 낭만적이고 순수한 '길'


길은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현대 시대에서는 살짝 현실감각이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될 만큼 낭만적인 남자다. 돈을 벌기 위해 맘에 들지 않는 할리우드판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그의 물질적 성공은 속물인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좋은 것일 뿐, 길 자신은 문학인으로서 수치를 느낀다. 그는 자신이 처음 시도하는 순수문학을 주변의 세속적인 인물들이 함부로 비평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그는 우스꽝스럽게도 1920년대의 인물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내보인다. 물론 1920년대에도 자본주의는 존재했으며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모두 돈을 잘 버는 작가들이었지만, 길이 느끼기에 현시대의 사람들보다는 매우 진솔하고 낭만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트루트 스타인 집에서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났죠"라고 말하는 길에게서 현재 시대에 대한 불만과 허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나의 골든에이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곳 한국의 지금은 첨예한 자본주의와, 인터넷의 발달, 그로 인해 넘쳐나는 정보와 범죄들,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무한 간섭과 시끄러움 등등이 날마다 펼쳐지는 세상이다. 나 역시 길처럼 이 시대가 가끔 너무 허무하고 속물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저 때 저 시절에는 집집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반찬도 나누어먹고 저렇게 순수하던 시절이 더 살기는 행복했겠다'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으니까. 온갖 기계음과 현란한 비트로 얼버무려진 음악에 열광하다가도, 김현식 김광석과 같은 옛 노래들의 맑은 감성을 우연히 듣고 나면 역시나 음악의 전성기는 저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골든에이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듀스의 김성재를 다시 보고 싶고, 김광석과 김현식의 맑은 음성을 듣고 싶고, 떴다 하면 시청률 50프로를 구가하던 90년대 초의 드라마의 향수에 아직까지 젖어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시절을 향유한 적 없던 90년대 생의 나조차도 그 시절이 그리운데, 그 시절을 직접 보낸 사람들은 오죽할까.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조용필과 심수봉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을 골든에이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1920년대의 매력적인 여성 '아드리아나'에게 빠지는 '길'


길은 문화와 예술이 절정을 이루던 1920년대 파리에서,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라는 여인에게 빠지게 된다. 그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적 인물이지만, 동시에 실제로 있었을법한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적 화가들에게 늘 뮤즈가 존재했듯, 그녀는 모딜리아니의 뮤즈로, 브라크의 뮤즈로, 그리고 피카소의 뮤즈로 살아가는 매력적인 여자다.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으니 그 매력이 어찌 대단했을까. 길은, 현시대의 자신의 약혼녀 '이네즈'에게는 없는 낭만과 사랑스러움을 '아드리아나'에게서 발견한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문학을 칭찬하고, 자신의 순수하고 격없는 태도를 좋아해 주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길은 시끄럽고 허무한 현시대를 버리고 1920년대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곳의 파리에서 예술가들, 문학가들과 어울리며 즐기는 길의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우연히 아드리아나와 함께, 더 시간을 거슬러 1890년대 파리로 이동하게 된다. 이번엔 푸조가 아닌 1890년대의 마차를 타고 말이다. 그 시대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벨 에포크'라는 시대이다.  당시의 파리도 유럽 예술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길은 그 시대까지 동경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1920년대 사람인 아드리아나는 그 시대에 완전히 도취되고 만다. 1920년대의 파리는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다며, 마차가 다니고 물랑루즈와 막심이 꽃을 피우던 벨에포크 시대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여기서 길은, '골든에이지'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자신은 현시대를 피해 1920년대를 꿈꿨고,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의 막심을 동경하며, 벨에포크에서 만난 고갱과 드가는 '르네상스 시대'로 가고 싶다고 한다. 모두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 시대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며 과거가 실제보다 더 좋게 왜곡되기 때문일까. 길은, 아드리아나와 함께 1920년대에 머무르는 꿈을 잠시 꾸었으나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재미없고 지루하고 텅 빈 시절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시대로 말이다.


모든 시대가 골든에이지다


언젠가 지금 이 시대도 시간이 지나면 후손들에 의해 '골든에이지'로 불리게 될 날이 올까. 저스틴 비버와 칸예 웨스트, 아델과 같은 가수들, 알랭 드 보통과 더글러스 케네디 같은 작가를 너무도 그리워하며 이 시대는 너무 지루하다고, 그때 그 시절이 최고였다고 동경하게 되는 날이 올까. 현시대를 조금은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현시대 사람으로서는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분명 그런 날이 오게 되겠지. 시간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고, 역사는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아름답고 아련하게 왜곡되고 마니까.

지금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세상. 현란한 비트에 화려한 의상을 한 가수들, 한 달도 채 가지 않는 음원 순위, CG를 빼고 나면 과연 저게 무얼까 싶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주를 이루는 2017년도지만,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울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그러니, 너무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과거에 대한 향수는 그저 향수로 묻어두는 것. 그것이 아마 우디 앨런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1920년대의 화려한 파리를 여행한 '길'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실제로는 절대 볼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인물들을 시간여행을 통해 가상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피츠제럴드 부부의 말로는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했으며 모두가 그들의 그 당시 전성기를 기억한다. 헤밍웨이는 용감하고 솔직했고 여전히 최고로 꼽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피카소는 수많은 애인을 둔 바람둥이었지만 우리는 피카소의 걸작들을 기억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과거 교과서 한 페이지에서 접했을 때 보다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전성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찬란하게 빛났던 그들 생애의 전성기를. 그들이 현재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질지언정, 나는 그들을 정말 동경한다. 거트루트 스타인의 집에 모여, 피카소가 그림을 선보이고, 헤밍웨이가 조언을 구하고, 피츠제럴드 부부가 서로 끔찍이 사랑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시대에 사는 것 까지는 몰라도 길처럼 시간여행은 꼭 해보고 싶다.

시간의 속성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나가서 아름다운 것인지, 지나가서 슬픈 것인지.  그들도 몰랐겠지. 피츠제럴드 부부도, 피카소도, 고갱도 드가도. 자신들이 그 시대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많은 사람들을 통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그들의 그 '아무렇지 않았던 현재'가 지금은 이렇게 '찬란한 과거'로 기억되고 있음을. 



실제 피츠제럴드(F. Scott, Zelda Fitzgerald)부부. 서로 끔찍히 사랑하는 모습이 영화에서와 다를 바 없다.


내가 구형 푸조를 타고 그 시절로 갈 수 있다면, 나는 특별히 피츠제럴드 부부에게 너무 파티를 즐기며 방탕하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불어 젤다에게는, 세상은 당신이 매우 매력적이었으며 스콧의 무한 사랑을 받았던 여자로 기억하고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정말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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