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는요, 고요한 운동이 아니구요, 고요해지기 위한 운동이에요.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2018)
장르 : 한국, 에세이 │ 저자 : 이아림 │ 출판 : 북라이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Brunch)를 사람들이 지금처럼 잘 모르던 당시. 나는 그때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사람의 브런치를 자주 들어갔다. 바로, 책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를 쓴 저자 이아림이다. 그녀의 브런치에 수놓아진 글들은 뭐랄까, 정갈했다. 아는 체 하거나 기교를 부리는 글이 아닌, 쉽고 담백한 맛의 글들이었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나는 아마추어 글쟁이었으므로,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내가 한때 그렇게 즐겨 읽었던 그녀의 브런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양날의 감정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어떤 작가가 출간을 했다는 소식에 대한 기쁨. 그리고 같은 브런치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물론 구독자 수는 천지차이였지만) 나는 여기 그대로이고, 그녀는 벌써 출간 작가구나... 하는 부러움.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고, 나는 다시 생업으로 정신없는 삶을 이어갔다.
요즘 나는 요가를 다닌다. 집 앞에 있는 헬스장에 월 5만 원가량을 내면서 GX룸에 있는 요가 수업을 듣는다. 다른 헬스는 하지 않고 오직 그것만. 운동과 담쌓으며 살아온 내겐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요즘만큼 이 에세이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가 와닿는 때는 없다. 물론 겨우 요가 수업 4개월 차 요린이가 요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그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 듯 싶다. 텐션을 한껏 올려야 하는 다른 운동들과 달리 내면에 집중해야 하는 요가가, 왜 나에게 필요하고 맞는지도.
p.76
나는 맨몸으로 싸우는 게 좋다. 남다른 인맥도 능란한 애교도 상대를 압도하는 명석함도 없지만 요행을 바라지 않고 몸으로 배워가는 데는 순수한 기쁨이 있다.
p.203
그러니까 몸은 마음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에둘러 가지 않고 헤매지 않고 자신을 곧장 만나기 위해 호흡하고 몸을 움직인다. 이것이 거창할 것 없는 요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러 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
나는 내면이 많이 심란하고 복잡한 사람이다. 웃고 있지만 머릿속은 늘 전쟁에 가깝다. 못난 과거에 얽매여있고, 현재의 불만족을 못 견디며, 미래의 불확실함에 벌벌 떨며 살아간다. 그런 내게 필요한 건 '생각 멈추기'다. 그동안은 그 방법을 '독서'로만 단정 지으며 살았지만, 살다 보니 다른 방법들도 참 많다는 걸 느낀다. 요가는, 과연 생각 멈추기에 안성맞춤인 운동이다. 그녀의 이 에세이에도, 요가를 통해 마음수련을 이어가는 에피소드들이 잘 묻어나있다. 완벽하지 않은, 오히려 내면이 불안한 사람이 요가를 하면서 호흡을 찾게 되는 그런 이야기다.
p.82
요가를 하면 몸이 가뿐해진다. 어깨의 힘이 빠지고 팔이 더 멀리 나아가고 허리가 유연해지며, 더 성큼성큼 걸어나갈 수 있게 된다. 온몸으로 자유를 실감한다. 그럴수록 여성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더 행복해지고 싶어진다.
요가는 느리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운동은 아니다. 한 시간 가까이 수업을 받고 나면 땀으로 젖어 운동복이 축축해진다. 그런 요가의 특성이 마음에 든다. 묵직하게 근육을 늘리는 그 과정. 중심을 잡고,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마음을 비우고 고요해져야만 한다. 딴 생각을 하면 중심을 잃고 쿵 넘어져 버리고 마니까. 밑빠진 독처럼 근심이 매일매일 차오르는 삶이지만, 그래도 요가를 하는 시간 동안은 근심이 날아가는 것만 같다. 그게 어디랴.
p.87
"요가는 99퍼센트의 수련과 1퍼센트의 이론으로 이뤄져 있다" 아쉬탕가 요가의 대가 파타비 조이스는 말했다. 이 말을 조금 거칠게 바꾸면 '세상에 거저는 없다'쯤 되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철저히 자신의 몸으로 익히고 배워야 한다. 그것을 200퍼센트 실감하는 매일이다.
물론 요가 전문가의 글은 아니다. 한 여성이 요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자신의 삶을 가다듬고 정돈하는 에세이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인문학에 비해 에세이는 읽을 가치가 충분치 않은 영역의 글이지만, 내게는 그 반대다. 나는 단순히 잘 정제된 지식을 얻는 것보다, 어떤 지식을 어떤 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그래서 그의 인생에 어떻게 접목되었는지를 읽는 쪽이 항상 더 얻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요가에 통달한 요가 전문가의 지식전달형 서적보다 이 에세이를 통해 요가의 매력이 더 와닿는 건 그래서일 테다. 글 쓴 주체가 오히려 나처럼 불완전한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하루하루 요가를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p.97
오로지 요가 생각뿐이었다. 얼른 집에 가서 빈 방에 매트를 깔고 싶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되는대로 요가만 하고 싶었다. 맨몸, 홀로, 침묵… 이런 것들이 너무 간절해서 몸이 달았다.
그나저나 제목이 너무 아름답다.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라니.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요가 매트만 한 크기, 단 그만큼만이라도 평온하기를 바랐던 그녀의 마음이 묻어난다. 제목 그대로, 그녀는 요가 매트 위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인다.
작가가 글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치열한 현실을 요가로 버텨내는 그 삶의 자세도 좋다. 감사하게도, 요즘의 나는 조금씩 요가를 배우며 그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전혀 늘어날 것 같지 않던 근육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p.89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쫄지 않는 것이다. 당장의 실패, 성과 없음이 내 노력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나는 해나가고 있고 배워가고 있고 나아지고 있으니까. 노력은 쌓인다. 오리무중에 빠질수록 자신이 쌓아온 그 결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답은 불현듯 찾아올 테니까. 분명. 언젠가.
*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76호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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