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없다고 스스로 너무 자책하지마세요, 사람인 걸요
나는 공시생은 아니지만, 공시생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주변에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독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공부를 했다던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모두 뺀 순수 공부시간이 10시간이었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다.
그들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의 정신력을 가진 듯하다. 원하는 성과를 내려면 그들의 자세를 가히 본받아야 할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1할도 되지 않는 의지의 소유자임을 인정해야겠다.
오늘, 오전 10시에 도서관에 도착해 공부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으나 눈을 뜨니 10시 반이었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지각을 하면 눈칫밥을 면치 못하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니, 생체리듬이 매우 주관적이고 이기적이게 설정되어있는 나로서는 스스로 기상시간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다.
헐레벌떡 짐을 챙겨 도서관으로 가는 길,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하필이면 우산도 챙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부터 매우 찝찝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공휴일인 현충일인지라 친구와 늘 공부하던 제일 좋은 열람실이 닫혀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걸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사람 많고 환기 안 되기로 검증된 다른 열람실을 이용해야 했는데 어찌나 기분이 내키지 않던지. 어제 새벽 늦게 잠든 지라 몸까지 피로한 상태였다. 모든 장애물을 넘어 공부의지를 뿜어내도 모자랄 판에, 나는 아주 사소한 장애물 때문에 공부 의욕을 완전히 잃고 마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 10시까지 공부하려던 내 친구를 꼬드겨 5시에 짐을 싸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핑계를 대자면, 어차피 우린 저녁밥을 먹으려면 밖으로 나와야 했는데, 하필 또 비가 많이 내려 쪼리를 신은 발이 흠뻑 젖어버리고 만 것이다. 비 오는 날 냄새나는 열람실에서 젖은 발로 10시까지 공부할 용기가, 내게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공부할 수 없는 까탈스러운 나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차라리 눅눅해진 정신건강을 달랠 군것질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충동적으로 평소답지 않게 꽤 비싼 저녁밥을 먹고, 조각케익까지 흡입하는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비록 공부는 못했으나 기분은 좋은 선택이었음은 확실했다.
공부란 참 지루하고 우울한 반복의 길이다. 게다가 매일매일 로봇처럼 정해진 양의 공부를 달성해야 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부여하는 강제성이기 때문에 언제든 무너지기 쉬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고시 합격자들은 모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독하게 공부했으며, 심지어 공휴일 마저도 일상처럼 공부한 덕에 합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겠지.
그래도 오늘 같은 나의 의지박약을 스스로 질책하고 싶지는 않다. 덕분에 맛있는 밥에 달달한 조각케익을 먹고 기분은 충전됐으니까. 예상보다 터무니없는 시간을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딱히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다. 컨디션 난조에 퀴퀴한 열람실. 어차피 민감한 내게는 너무 힘든 장애물이었는 걸 뭐.
나를 질책하면 뭐 하랴. 자기비난이 낳는 것은 결국 자존감 상실뿐인 것을.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달리는 것으로, 오늘의 의지박약에 대한 실망을 메꾸면 될 일이다.
내일은 원래 공부하던 쾌적한 열람실이 문을 열 것이고, 비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일찍 집에 와서 쉬었으니 내일은 컨디션도 더 좋아지겠지. 내일 더 열심히 해서 오늘을 상쇄하면 된다. 내가 독종이 아니라는 건 인정한다만, 그렇다고 포기를 밥 먹듯 일삼는 무개념 종자도 아니다. 잠시 잠깐 게으름과 타협했을 뿐이다.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달려보자, 아자아자!
2017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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