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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Oct 31. 2022

이것은 설계된 운명이었다,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

우리가 밟고 선 이 세상이, 설계된 거라면?

자크 페레티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



우연일까, 설계된 운명일까


세상의 모든 역사는,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을 보며 든 생각은, 우연이 곧 운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꾼’이라고 표현해도 격하지 않을 역사 속의 거래(deal)를 다룬다.  

         

이 책의 저자 ‘자크 페레티’는 BBC의 다큐멘터리 제작가 겸 탐사 보도 전문 기자다. 그는 그간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대기업들의 민낯을 밝혀 온 바 있었다. 그가 써낸 이 책 역시, 역사 속 ‘거래’들이 세상에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와 지금의 불평등과 사회불안을 야기시켰는지 깨닫게 한다. 그저 각각의 개별적인 것처럼 보이던 사건들은, 현재와 깊숙이 맞닿아 우리가 딛고 선 삶의 토대가 되어있었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래를 10가지로 추려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나도 적어내 본다.      

    


1. 설계된 불만족    

샌프란시스코의 ‘리버모어’라는 마을에는 인기 관광명소가 있다고 한다. 117년 동안 빛을 내는 전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구는 적정 시간이 지나면 빛을 잃는다. 그러면 당연히 전구를 새로 사야 한다. 이 점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상한 점’도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과거 전구 제조업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구의 수명을 제한하기로 합의한’ 결과라고 한다면 어떨까. 깊은 배신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래 봐야 값싼 전구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전구뿐이 아니라면? 둘러보면, 짧은 주기로 수명이 끝나 신제품으로 바꿔주어야 하는 것은 전구뿐이 아니다. 휴대폰, 자동차, 냉장고, TV...., 우리 삶에는 좀처럼 ‘평생’ 쓸 수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 기업들이 제조과정 자체에서 수명을 제한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신제품을 갈망하도록 설계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설계된 불만족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이폰 13을 산지 얼마 안 되어 아이폰 14가 나오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2. 비만의 역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지방’과 ‘저지방’ 제품에 익숙할 것이다. 마트를 가면 어딜 가나 무지방 우유와 저지방 요거트가 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할 때면 누구나 BMI지수를 계산해본다. 몸무게와 키를 넣으면 BMI지수를 통해 ‘과체중’인지 ‘정상체중’인지를 판별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과거 미국의 우량 식품기업들은 옥수수를 대량생산하게 되었고, 그 폐기물로 저렴한 가격에 액상과당을 만들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모든 식품에는 액상과당이 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은 뚱뚱해졌고, 식품산업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비만을 해결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로써 비만의 주범으로 ‘지방’이 지목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는 BMI지수에는 ‘근밀도’라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 BMI지수로만 따진다면 근육으로 인해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도 비만으로 분류된다. 이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비만’으로 분류해야 돈을 벌 수 있었던 생명보험 회사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고. 비만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지방이 아니라 ‘설탕’이며, BMI지수는 체지방과 근밀도를 혼동하는 부정확한 계산법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아직도 BMI지수를 따지며, 설탕보다 지방을 무서워한다. 이것은 과연 비만의 역설이다.       

   


3. 약물의 노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약을 많이 먹는다. 그리고 약을 먹어야 하는 질병들이 갈수록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없던 병명이 생겨나고, 단지 병을 치료할 목적을 넘어서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약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약국에만 가도 알 수 있다. 눈이 침침하면 이 약을, 기관지가 칼칼하면 저 약을, 여성 자궁을 위해서는 이 약을, 잇몸이 시큰거리면 저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불필요한 약들을 먹게끔 불안을 유도하는 이 세태가, 제약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떨까. 당연하겠지만 제약회사는 약을 처방받는 환자가 많아야 돈을 버는 구조를 띤다. 때문에 제약업계는 온갖 새로운 질병과 증후군을 찾아냈고, 사람들이 ‘껌을 씹듯’ 약을 복용하게 만들었다. 가벼운 생리통에도 약 G을, 머리가 조금만 지끈거려도 약 T를, 비염 알레르기엔 물론 약 G를... 먹는다. 물론 이렇게 확실한 증상이나 질환이 아니어도 약을 먹을 명분은 많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 혈행 개선을 위해, 간독성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끝도 없이 약과 영양제와 보조제를 먹어댄다. 약물의 노예가 된 우리는 정말로 아픈 게 맞을까?      

   




그 외에도 7가지나 더 있는, 치명적 거래들

가장 인상적이고 쉽게 다가왔던 것들은 위의 3가지 딜이었지만, 책에는 이 외에도 7가지나 더 치명적인 ‘딜’들이 등장한다. 온라인 거래의 활성화로 돈을 벌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이 디지털 화폐를 만들고 실물화폐를 없애기로 한 딜, 직원들의 근로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생산성을 쥐어짜 내는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만든 딜, 유가를 대폭 인상하기 위해 제4차 중동전쟁을 정치적인 지렛대로 활용한 OPEC 산유국들의 딜,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돕기 위한 섬 ‘케이맨 제도’를 합법적인 이미지로 세탁해낸 딜, 불평등을 비즈니스로 삼아 전 세계의 빈부격차를 적극 이용하게 된 딜,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중국이 각국들을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에 1조 달러를 투자하도록 한 딜,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인간을 대체해 생산속도를 높이기로 한 딜까지..., 10가지에 해당하는 각각의 딜이 아주 구체적이고도 꼼꼼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현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니, 읽다 보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듯, 역사는 결코 단순하거나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이 책 덕분에 깨달았다. 서부개척이 원주민을 내쫓고 노예제도를 만들어 지금에 이르는 인종차별로까지 이어온 것처럼... 식품산업의 계획이, 전구 회사의 계획이, 생명보험회사의 계획이, 제약회사의 계획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었고, 그 미래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재가 되었다.           




나는 오늘도 체중계에 오르고, BMI 지수를 측정한다. 조금만 아파도 약을 먹고, 고지방보다는 저지방이 어쩐지 나를 안심시키는 것 같다. 전구는 몇 년도 채 못쓰고 갈아줘야 하고, 1년 전에 산 아이폰은 할부금이 20개월이나 더 남았지만 벌써 구닥다리가 되었다. 자동차는 3년만 타도 중고시장에서 똥값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 모든 건 결코 우연이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현상이며 계획된 운명들이었다. 이미 틀어진 현실을 바로잡기엔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음을 반추할 수 있다면..., 그래도 앞으로의 미래만큼은 우리가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일개 소시민인 내가 아니라, 세계를 이끄는 거대기업과 정부들이 적용해주어야 하는 문제겠지만 말이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하나 있다. 투표를 잘하고, 역시나 투표를 잘하는 일!            




              



* 완독챌린지 독파(dokpa)로부터 앰베서더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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