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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Oct 31. 2022

특이하고 특별한 소설은 여기
<바게트 소년병>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오한기 <바게트 소년병>



'오한기는 천재'라고 정지돈 작가가 그랬다. 얼마나 소설을 잘 쓰길래 동료 작가로부터 천재라는 찬사를 듣는 걸까 궁금했다. 그의 소설집 <바게트 소년병>을 불과 2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쯤 느꼈다. '천재가...맞구나.'          


오한기 작가의 소설들은 모두 엄청난 몰입을 자랑한다. 더불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싶은 소재들이 너무도 천연덕스럽고 뻔뻔하게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나는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뭐지?‘하는 심오한 생각 같은 건 할 겨를이 없게 만든다. 그게 천재가 아니면 뭘까.           




공상과 경험이 뒤섞인 특별한 세계


그의 소설에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작가 오한기 본인의 실제 서사가 많이 반영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떤 소설에서는 정말로 '오한기'라는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실존 인물들도 스스럼없이 등장한다. 무려 전직 대통령 B, 크리스토퍼 놀런 같은. (물론 이름만 빌려 썼을 뿐 모두 실제 일어난 일들은 아니다.) 더불어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들도 다수의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전세사기를 소재로 한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에서는, 작가가 전세사기를 당하고 실제로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겪었는지 느낄 수 있었고, 낭만적 문학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우왕좌왕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도 역시 문학가로서 작가 본인의 서사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자본주의에 압도당하고 때로는 굴복하고 마는 처량한 서사 속에서도, 이야기는 마냥 울적하게 처지지 않는다. 그러기엔 중간중간 녹아있는 위트와 해학이 너무 웃겨서 깔깔 배꼽을 잡게 할 정도니까.          




그중 압권은, 전직 대통령 B를 소재로 한 소설 <펜팔>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오한기'는, 어느 날 감옥에 수감 중이던 전 대통령 B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편지가 왕래하게 되면서 둘은 둘도 없는 펜팔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발상을...) 작가는 이후 대담을 통해, 행여나 실제 대통령 B가 자신을 고소할까 봐 걱정했더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쓴 이야기들은 너무 기깔나게 웃겨서 대통령도 용서해줄지 모른다.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전직 대통령에게 스며드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     

 

<25>라는 소설도 인상적이다. 유망주에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야구선수가 신분 세탁을 하는 회사에 취직해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고 '25‘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그럼에도 그는 야구선수로서의 삶에 미련을 끊지 못해, 야구선수를 육성하는 게임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게임 속 캐릭터도 자신의 실제 삶과 닮아있다. 유망주에서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자신처럼 매번 고꾸라지고 마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설정에서 느껴지는 대단히 현실적인 슬픔에 마음이 아렸다. 한번 고꾸라지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는 삶. 우리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게트 소년병>에서는, 문학에 소질이 없는데 소설을 쓰겠다는 친구 '수진'을 은근히 속으로 딱하게 여기는 주인공이 나온다. 어느 날 친구 '수진'은 수영장에서 바게트 총을 든 소년병을 보았다고 주인공에게 털어놓는데, 이때도 주인공은 수진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진에 대한 주인공의 비딱한 시선은, 사실 수진을 통해 비치는 자신이 싫어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 거 있잖은가. 나의 싫은 점을 꼭 닮은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혐오하게 되는 묘한 심리. 주인공은 나중에서야 수진이 보았다던 그 바게트 소년병을 실제로 목도하게 되는데, 수진을 따라 주인공도 미친 건지, 바게트 소년병이 실재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껴진다. 주인공과 수진이 미치거나 딱해지는 데에는, 그 누구의 탓도 없다는 것. 탓이 있다면 그건 주인공들의 영혼을 갉는 힘든 세상살이일 뿐이라는 것.          





말하자면 민트 초코집 같은?

매력적인 단편소설을 읽는 것은 언제나 배스킨라빈스의 새로운 맛을 먹는 것처럼 즐겁다. 굳이 비유해보자면 오한기의 소설은, '엄마는 외계인‘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대중적인 맛은 아니지만, '민트 초코칩‘같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한번 그 매력에 빠진 사람은 잊지 못할 맛. 괴상한 치약 맛이 나는데 수긍이 되는 맛, 자꾸 빠져드는 그런 맛 같다. 앞으로 오한기 작가가 소설을 낸다면? 나는 무조건 읽을 것이다. '민초단‘을 만들어내는 ’ 민트 초코칩‘처럼, 오한기 작가의 세계관은 위험하리만치 중독성이 있고, 거기에 출구는 없을 듯하다.               






              



* 완독챌린지 독파(dokpa)로부터 앰베서더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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