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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Dec 05. 2022

머리카락 관점에서 보는 우리의 삶
<모락모락>

차홍 디자이너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

차홍 <모락모락>



머리카락의 입장에서 쓰여진 특이한 이야기



모락모락. 毛락毛락. <모락모락>의 화자가 머리카락이라는 건 책을 몇 페이지나 넘겨본 후에야 뒤늦게 알았다. 화자인 머리카락은 자신의 주인인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얇고 보드라운 머리칼의 신생아에서부터, 이마에 난 여드름을 가리려는 사춘기 소녀의 앞머리, 결혼식을 하며 머리핀을 잔뜩 꽂은 신부의 머리, 새치가 나기 시작하는 서른 중후반의 머리, 할머니가 되어 꼬불꼬불 펌을 하고 하얗게 샌 머리까지. 머리카락은 주인과 함께 삶의 희로애락, 생애 주기를 함께하며 묵묵하면서도 다정한 이야기를 꾸며나간다.





<마리텔>에 나왔던 '차홍' 디자이너



저자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 헤어 디자이너?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라니. 그것도 머리카락이 주인공이며 화자인 이야기라니. 이런 귀여운 발상을 한 작가는 누구일까 궁금하다면, 그는 헤어디자이너로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차홍'이다. 


이런 걸 보면 스스로의 직업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고찰을 하는 인물에게는, 늘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긴다는 생각이 든다. 헤어디자인 '차홍'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의 두상을 만지고, 얼마나 많은 머리칼을 다듬어왔을까. 얼마나 다양한 모질을 경험하고, 얼마나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을 맞이했을까. 


여러 해, 헤어디자이너로 살아오면서 다져진 이런저런 경험과 통찰은 시간이 지나 이렇게 간질간질 아름다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머리카락에도 생애 주기가 있어요


우리의 삶에도 탄생으로 시작하여 나이 듦으로 저무는 생애 주기가 있다면, 머리카락에도 일정한 생애 주기가 있을 터다. 동물의 털처럼 보드라운 아기의 머리털에서 시작해, 젊은 시절 윤이 나고 탐스러운 전성기의 머리카락도 존재하겠지. 그러다 삶의 절정을 지나 보내면 듬성듬성 빠지거나 얇아지는 쇠퇴기를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얗게 쇠고, 또 힘없이 간신히 붙어있는 노년기를 경험하지 않을까.


머리카락의 입장에서 삶을 조망하고 세상을 둘러보는 이 책은, 신선하면서도 보드라웠다. 이런 이야기가 쓰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와 같은 아름다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헤어디자이너 차홍의 관록이리라.\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안녕, 내 머리칼 잘 있니?



문득, 나와 함께 탄생해 30대를 함께 지나 보내고 있는 내 머리칼을 매만져보게 된다. 


그는 그동안 젊고 생기 있는 시절이라, 다양한 염색과 펌으로 참으로 많은 시간 혹사당해왔고, 때로는 멋의 상징이자 젊음의 표식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런 전성기도 지나, 머리숱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로 곧 넘어갈 터. 내 몸의 일부로서 나와 함께해 준 머리카락에게 문득 고마움을 느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언제나 내 몸의 일부로서 나를 지탱하고 유지해 준 머리카락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낀다.


오늘도 머리를 감고, 헤어 에센스를 바르고, 머리를 곱게 빗어주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늘 함께하기에 존재의 고마움에 무뎌지는 내 몸의 일부, 머리카락. 우리의 남은 우정을 잘 지나 보내고 싶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모락모락>에 나왔던,

너무 귀여운 머리카락의 관점들을

키득거리며 옮겨봅니다.

(숫자는 나이순입니다)




2
어른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어. 너는 크게 울고 나는 쭈뼛해졌지. 머리를 가위로 자를지 바리캉으로 밀어버릴지 고민 중이래. 엄마는 머리를 밀면 더 잘 자란다고 말하는 중이야. 맙소사, 그런 얘기는 누가 전해준 걸까?


17 
엄마는 너의 이마 여드름이 귀엽다고 했어. 너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만지고 누르고 짜고.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부엌에서 가위를 가져와 나를 붙잡았어.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 후드득, 앞머리가 잘려나갔지. 맙 소 사.


21
너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부쩍 들떠 있지. 머릿결도 너의 몸처럼 살랑살랑 기분 좋게 흔들려. 너는 정말 예쁘고, 세상이 온통 너를 향해 있는 것 같아. 너, 사랑에 빠졌구나.


29
사람들이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머리 모양을 하려 하지 않네. 이제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찾는구나. 머리 스타일은 단지 누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일이자 소중한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거야.


39
최근 머리가 가렵더니 새치가 몇 가닥 보이네. 너는 시무룩했지. 오히려 늦게 난 편이니까 너무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얀색이라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뿐이야.


49
엄마다운 헤어, 그리고 아내 다운 헤어가 뭔지 고민하고 있어. 그런 게 있기는 한 건지. 언제부터인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 같아.


57
너는 엄마를 모시고 미용실에 들렀어. 그게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세상에서 제일 예쁜 머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엄마는 너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네. 잠시 엄마의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거지.


74
네가 좋아하는 갈색 자개 핀이 요즘 자꾸 머리 위에서 미끄러지네. 나는 너를 더 많이 잡아 꽂고 혹시 몰라 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을 시켰어. 내가 너무 가늘어져서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 내가 미안해.


92
거울을 보니 이젠 머리카락보다 두상이 더 많이 보이네. 생각해 보니 언제부터인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지 않았던 것 같아. 너는 하얀 봄 아지랑이같이 작은 움직임에도 하늘거려.


99
오늘 신기한 일이 생겼어. 세상에, 네가 드디어 내게 말을 건 거야!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한 건 너뿐이네" 너는 가느다란 손으로 아기 때처럼 변한 나를 찬찬히 쓰다듬어 줬지.






                                  



* 완독챌린지 독파(dokpa)로부터 앰베서더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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