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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Dec 05. 2022

일진들은 왜 그리
세 보여여야 했을까 <최선의 삶>

최선을 다해 세보여야 했던 그들의 삶은 치열한 생존이었다.

임솔아 <최선의 삶>



학창시절의 그 예민한 세계 제대로 소환



사람의 일생에서 자아의 존재가 가장 크면서도 취약한 시기를 꼽으라면, 아마도 학창 시절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를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그 짧고도 영원한 시간.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은 그런 비릿하고도 뜨거운 질풍노도의 시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최선의 삶>



안타깝게도 대전 출신인지라, 소설의 배경이 된 대전의 전민동과 읍내동에 대해 더욱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서 나는 가난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전의 여러 동네들을 전전하며 살아온 터라, 읍내동에 살다가 부유한 동네 전민동으로 전학 간 주인공의 ‘강이’의 심정을 알았다. 같은 동네 친구들로만 이루어져 있던 중학교 때는 모르다가, 고등학교를 가서야 나도 세상엔 부잣집 아이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집에서 실내화를 신고 다니고, 방이 4개나 있는 집을 가보고는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교수였고, 미국에 살다 온 경험이 있는 친구를 부러워했던 기억도 난다.


자아가 폭풍처럼 성장하는 시기에, 친구와의 빈부 격차를 실감하는 일은 실로 자존감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영화 <최선의 삶>



우정이 곧 생존이었던 그때 그 시절



소설 속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 ‘소영’이, 주인공 ‘강이’와 멀어진 순간 “읍내동 사는 주제에”라는 공격을 한 것 역시, 가장 자존감이 예민한 시기의 그들에게 그만큼 빈부격차가 큰 상처로 작용했기 때문일 터다. 나 역시 급식비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을 형편이 좋은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때였으니.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LH에 사는 아이들은 따돌림을 당다고 한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때 그 학창 시절은 그렇게 예민하면서도 동시에 잘 살고 못 살고와 상관없이 뜨겁게 우정을 나눌 수 있던 순수한 때였다. 성인이 된 지금은 도통 경제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기가 얼마나 힘들던가. 그러니까 그런 격차쯤이야 우정에 아무런 흠집을 내지 못했던 그 시절을 다들 그리워하는 것이고, 옛 친구만큼 편한 사이가 없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최선의 삶>에서도 모두 형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강이와 친구들인 소영, 아람이 피를 나누는 사이처럼 어울리는 것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뜨겁고 순수했던 내가 떠올랐다. 





영화 <최선의 삶>

 


나 괴롭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니




주인공 강이와 소영, 아람은 일명 불량한 친구들이다. 가출을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길거리에서 만난 오빠나 아저씨와 어울리고 성폭행도 당한다. 내가 그간 읽어온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그 반대에 있는 바른 청소년들이 성장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소위 말해 노는 아이들, 선생이 포기하고 학교가 포기하는 아이들이다.


나의 학창 시절, 어른들은 언제나 내게 말했다. 저런 질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라고. 성인이 된 나는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절대 같이 놀아서는 안되었던, 그 질 나쁘고 싸움 잘하고 술 담배 하던 친구들. 강이나 소영, 아람과 같은 친구들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은 그때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해 ‘세 보여야만’ 했던 걸까. 왜 가출을 일삼아야 했고, 다른 아이들을 때려야 했고, 미래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굴었을까. 학창 시절 내내 찐따로 살았기에 이해해 본 적 없었으나, 소설을 읽다 보니 소설 속의 한 문장이 그 대답을 대신해 주는 것만 같다.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 건 화가 나서가 아니고, 겁이 나서 그런 것'이라는 말. 





영화 <최선의 삶>



이제야 이해가 되는, 노는 애들



그 말을 읽고 나니, 이제야 마음 깊이 이해가 되었다. 겁이 많았던 친구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싸우고 어떻게든 ‘질 나쁜’ 학생이 되어야만 했던 친구들의 마음을. 달리 말하면 그들이 강함을 무기로 생존을 해야 할 만큼 그 시절은 정글과도 같았고, 어떤 부분들이 그들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소설을 장식한 세 주인공, 강이와 소영 아람을 비롯한 '노는 애들'이 결국은 나와 같은 미성숙하고 여린 자아였음을, 이제야 이해한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때면 가끔씩 '그때 막 나가던 일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스갯소리로 떠들곤 했었다. 무서웠던 그 애들의 안위를 바라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괜스레 이런 바람이 든다. 강해 보여야만 했으며, 그게 유일한 생존의 무기였던 그 친구들이 부디, 그때를 지나 지금은 잘 살고 있기를. 털을 세우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기를 말이다.  





              



* 완독챌린지 독파(dokpa)로부터 앰베서더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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