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주 차, 임신 테스트기 확인과 산부인과 방문 그리고 태명 짓기
미르야 안녕.
엊그제였을까. 저녁에 갑자기 몸이 으스스하더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한에 살짝 당황스러웠어. 성인이 된 이후로 만성 비염에는 시달려도 감기에는 잘 걸리지 않는 나였는데 말이지. 요즘 유행한다는 독감에 걸린 건지, 아님 단순 감기에 걸린 건지 아리송해 초록창을 켜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지. 아무래도 단순 감기인 것 같았어. 무의식적으로 약이 든 서랍을 열어 타이레놀을 한 알 꺼내 삼키려고 했지. 그러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약을 도로 집어넣었단다. 내가 임신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임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스치자마자, 감기 증상으로 인한 귀찮음이 바로 옅은 희망으로 변하는 거 있지? 나는야 결혼 4년 차 유부녀잖니. 내 나이 서른에 결혼을 하고, 약 3년간은 열심히 피임을 하며 자유로운 신혼 라이프를 추구해 왔지만, 최근 1년 들어서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생각만큼 임신이 쉽지 않아 긴 좌절을 경험해야 했었어.
설레는 마음 반, '혹시나 아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반으로 남편에게 쿠팡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주문해 달라고 했어. 그리곤 다음날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임신 테스트기를 뜯어 화장실로 갔지. 언제나 그랬듯 또 한 줄이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럼 내 마음이 얼마나 또 속상하고 심란해질까 별별 생각을 하며 테스트기에 소변을 흘려보냈단다. 그런데 왠 걸. 두 줄 중 한 줄이 처음에는 안 보일 정도로 옅었다가 서서히 진한색으로 바뀌는 거야!
빨간색 두 줄! 임신이다!
빨간색 두 줄! 임신이다!
그 순간 내 희열이 얼마나 짧고 강렬했는지 넌 짐작도 하지 못할 거야. 나는 그 길로 바로 산부인과로 달려갔어. “아직 너무 작아서 산부인과에선 안 보일 수도 있어”라는 친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지.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리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 진료대 위에 올랐단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받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로 이리저리 내 자궁을 살펴보더니 뭔가를 하나 발견하셨어. 세상에, 그건 정말 집중해서 보아야만 볼 수 있는 아주 아주 작은 점이었어. 그게 바로 너였어 미르야.
너는 이제 막 내 뱃속에 생겨난 지 5주 차가 된 사과씨만 한 존재였단다. 아직 눈코입이나 팔다리가 있기는커녕 태아도 아닌 ‘배아’ 상태였지. 그러거나 말거나 난 너무 신기했어. 그 사과씨만 한 존재를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실망하고, 포기했는지 아니? 사과씨가 아니라 좁쌀만 하대도 나는 정말 기뻐했을 거야. 산부인과를 나오면서 나는 친정엄마에게, 남편에게, 시댁에 차례차례 너의 존재를 알렸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널 기다렸던 탓일까, 다들 너의 존재를 진심으로 기뻐해주셨어. 그건 정말 대단한 축복이란다 미르야.
근데 너의 이름이 대관절 왜 미르가 되었냐구? 사실 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태명’이란 게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임신 정보를 좀 얻고자 어플을 하나 다운로드했는데, 거기에서 내 임신 주수와 함께 ‘태명’을 입력하라는 거 있지? 이제 막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을 받은 내가 그걸 생각해 봤을 리가 있겠니? 급한 대로 또 초록창에 '태명'이라고 검색해 보았어. 그런데 친절한 사람들이 훌륭한 태명 후보군을 이미 많이 올려놓았더라.
많은 태명들 중 하나가 눈에 띄었어.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용띠이기 때문에 용의 순우리말인 ‘미르’라고 짓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더라. 딱히 나도 미르라는 말이 거슬리지 않았고, 예쁜 순우리말이기도 해서 단숨에 너의 태명을 미르라고 지어버렸지. 좀 무성의하게 느껴지니? 하지만 어쩌겠니, 내가 성격이 급한 걸. 그래도 그게 네 진짜 이름은 아니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네가 세상에 나오는 날엔 더할 나위 없이 신중하게 지은 이름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정말 오랜만에 행복감을 느꼈어
무튼 너의 존재를 알게 된 그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행복감을 느꼈어 미르야. 내가 아이에 관심이 없던 시절, 임신한 친구들이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흑백 초음파 사진을 보며 감동하는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정말 웃기지? 그게 내 일이 되니까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한 네 존재가 어찌나 신기한지 몰라.
뿐만인 줄 아니? 혹여나 내 부주의로 네가 불편할까 싶어 모든 걸 조심하게 되었어. 나는 원래 커피를 하루에 세 잔씩은 마셔야 하는 카페인 중독자였는데 갑자기 커피도 한잔 이상 못 마시겠더라. 음식도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뇌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고기를 잔뜩 사 왔어. 평소 비싸서 잘 먹지도 않던 소고기를 말이야. 네가 뱃속에 생긴 줄도 모르고 전날까지 전속력으로 러닝머신을 뛰고 커피를 넉 잔씩 먹었던 나였는데, 하루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치?
미르야. 네 이름을 짓긴 지었는데 사실 나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 아직 ‘엄마’라는 표현은 잘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을 테니 너무 작위적으로 굴지는 않을게. 그동안 너도 내 뱃속에 잘 안착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렴. 네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나도 열심히 노력할게. 너에게 좋다는 많은 음식들을 섭취하고, 운동하고, 스트레칭하고, 잠도 푹 잘게.
그리고 기다리던 나에게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 줘서 너무 고마워. 덕분에 10개월 동안 나에게 긍정적인 많은 변화가 생길 것만 같아. 우리 잘해보자.
임신 5주 차│많은 산모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시기. 감기 증상처럼 미열이 나거나 오한을 느낄 수 있다. 배아의 크기는 0.12cm로 사과씨만 한 상태.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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