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주 차, 입덧 시작하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니, 입덧이 이렇게 무섭다고
미르야 안녕. 네가 생긴 지 6주 차인 지금, 엄마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구나. 왜냐면 입덧 지옥을 걷고 있거든. 세상에 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거니, 입덧이 이렇게 사람 피를 말릴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말야.
엄마가 스무 살이던 시절이 생각나네. 지금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지만 그 시절 대학의 MT 분위기는 상당히 난잡스러웠단다. 커다란 양푼이에 맥주부터 소주, 양주, 음료를 모두 섞은 폭탄주를 신입생들에게 마시게 하는 것이 소위 ‘국룰’이었지. 태어나 술을 마셔본 적도 몇 없는 데다, 내 주량이 도대체 얼마인지도 알 수 없었던 그때. 엄마는 태어나 처음 폭탄주를 그것도 벌컥벌컥 마셨더랜다. 사실 마실 때까지만 그 여파가 얼마나 대단할지는 알 수 없었어. ‘어? 나 생각보다 술 잘 마시나?’ 싶기도 했지.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단다. 채 동이 트기도 전 숙소에서 깨어난 엄마는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말도 안 되는 숙취에 정말 놀라 자빠질 뻔했단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메슥거림과 주체할 수 없는 그 불쾌함. 당최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엄청난 더러운 기분이 하루종일 지속되었지.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어.
누군가 내게 입덧이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면 그때 내가 대학교 MT때 겪은 숙취라고 말해줄 거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그것이었단다. 입덧이 숙취와 너무 비슷한 점은 또 있었어. 숙취를 경험해 본 사람은 모두 알 거야. 해장이랍시고 뜨거운 라면국물, 콩나물국밥을 아무리 퍼부어도 개운함은 그때 잠시라는 거. 오로지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야 할 뿐, 그 어떤 것으로도 약이 없다는 거지. 나이를 먹고 내 주량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렇게 진탕 술을 마시고 취할 일이 없어 사실 까먹고 있었단다. 그놈의 숙취란 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말이야. 그런데 너를 품고 입덧을 시작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게 된 거야. 것도 술도 한 방울 먹지 않고 말이지.
입덧을 견디는 고된 시간
엄마는 당장 병원에 가 입덧 약을 처방받았어. 그리고 지금까지 매일밤 2알씩 먹고 있단다. 그리고 잠시라도 입덧의 기운을 막아줄 매운 음식을 입에 넣으며 살고 있지.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횟수도 부쩍 늘었어. 성질이 나서 밥을 할 기운마저 나지 않았거든.
게다가 남들이 추천하는 입덧에 좋다는 모든 것들은 모두 다 시도해 보았단다. 남편 회사의 여성 동료가 새콤달콤으로 입덧을 버텼다는 말에, 중학교 이후로 먹어본 적 없던 새콤달콤을 레몬맛 딸기맛 포도맛 종류별로 사서 먹어보기도 했고. 언젠가 정관장에서 증정품으로 받아 처박아두었던 홍삼캔디를 하나씩 까먹기도 했어. 지금은 남편이 어디서 입덧에 좋다고 듣고는 주문해 준 이탈리아산 레몬사탕 ‘포지타노’란 걸 먹고 있단다. 이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너에게 불필요한 당이 갈까 싶어 하루 5알 미만으로 먹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말야.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엄마는 사실 입덧을 안 할 줄 알았어. 너의 존재를 알게 된 5주 차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실은 조금 섭섭하기도 했단다. 나도 나름 임신이란 걸 했는데 그래도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입덧은 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었지. 그런데 웬걸. 섭섭함이 억울함으로 바뀔 만큼 엄마는 지금 너무 괴롭다. 하루종일 이 불쾌하게 울렁거리는 기운만 막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 싶어.
그래도 입덧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니 그 말을 위안 삼아 견뎌보려고 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우아하게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욱 욱’ 하는 입덧이 아니라, 하루종일 질척거리는 메스꺼움으로 쌍욕을 유발하는 입덧이지만, 이것도 언젠가 지나가겠지 믿으려고. 보통 12주가 지나면 나아진다고 하는데 나도 그 ‘보통’에 해당되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빌고 있단다. 그렇지 않은 산모도 있느냐고? 엄마도 몰랐는데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산모가 있더라. 어떤 이들은 막달까지도 입덧을 경험한다고 해.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부디 엄마는 그 경우가 아니길 바라야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빠를 볼 때면 괜스레 미운 마음이 든다, 미르야. 입덧과 쏟아지는 잠으로 하루종일이 엉망진창인 나와 달리, 아빠는 매일매일 너무도 가뿐하고 상쾌해 보이는구나. 함께 만드는 자식이어야 하는데, 자연은 왜 이토록 여자만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걸까 원망스럽기도 해. 물론 아빠는 좋은 사람이라, 이런 엄마의 눈치를 엄청 보면서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말이야.
미르야. 얼마나 대단하게 세상에 태어나려고 이렇게 지독한 입덧을 엄마에게 안겨주는 건지 무척 궁금하구나. 이 고된 기간을 견디느라 사실 행복하다는 기분은 느낄 수 없었지만, 입덧이 조금만 가라앉으면 그때는 너를 위해 뭐라도 의욕적이게 해 볼 생각이야. 다시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도 손수 만들어 먹고, 산책도 자주 하고, 좋은 생각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볼게.
일단 그날이 올 때까지는 당분간 매운 음식과 새콤달콤한 음식들로 입덧을 가라앉히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은 영양가 없는 배달음식과 사탕만 먹더라도 이해해 줘. 엄마라고 뭐든 참을 수 있는 위인은 아니거든. 네가 내 뱃속에 처음 온 것처럼, 나도 정말 처음이거든.
임신 6주 차│많은 산모가 입덧을 하게 되는 시기. 산모를 위한 입덧 약을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다. 태아의 크기는 1cm 정도로 강낭콩만한 크기다.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가 대부분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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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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