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an 11. 2023

제가 난임이라구요? 인공수정이요?

지금 임신해도 노산인 건 알았지만...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노산인 건 알았지만 난임센터는 당황스러워



인공수정. 습관성 유산. 시험관 아기. 이런 팻말이 붙어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결국 나도, 이 길인 건가?”          


작년 여름에 아이를 가져봐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반년이 꼬박 흘렀다. 여성의 난자는 한 달에 한번 배란되니, 그간 나에게는 6번이라는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내가 다녔던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내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우습게도 한 큐에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 아니 착각했다. 하지만 반년 동안 단 한 달도 어기지 않고 정직하게 시작되는 생리를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아, 6번... 금방 지나가는구나. 근데 대체 왜 임신이 안 되는 거지?      

    

이론상 되어야 하는데 안되니까 원인을 찾고 싶었다. 시선은 자연스레 남편에게 향했다. 어쩌면 내 남편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정자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해보니 그런 건 자기네 병원에서는 안 하고 큰 병원에 가보라며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곧바로 찾아간 영통의 S병원. 접수를 하려고 하니, 친절한 간호사가 우리 부부를 난임센터로 안내해 주었다. 헉, 난임?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산부인과 검사의 세계는 깊고 다양했으니



흔히 임신을 계획하고 1년가량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들이 난임센터를 찾는다고 한다. 단순히 남편의 정자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찾아온 거였고, 또 우리는 아직 반년밖에 시도해보지 않은 상태였지만, 습관성 유산과 난임 같은 글자들을 보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싸한 느낌 속에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연임신을 방해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으니 아내 쪽도 자세히 검사를 해보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다니던 쪼그만 산부인과에서 해본 검사는 아주 극히 일부였으며, 세상에는 임신과 관련한 검사가 정말 정말 많다는 것을. 고로 나는 ‘제대로’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내 난소의 상태와 나이, 나팔관의 상태, 호르몬은 어떤지 등등에 대해 검사하기 위해 그날 초음파 검진과 더불어 작은 생수통 분량의 피를 뽑았다. 오히려 남편의 검사가 더욱 심플했는데, 나와 비교하면 아주 소량의 채혈과 함께, 아늑한 방에 들어가 야한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자를 채취하는 과정^^)          


양파 하나를 사러 마트에 갔을 뿐인데, 나올 때는 고기와 과일, 각종 공산품들을 잔뜩 사가지고 나오게 되는 마트의 마법을 아는가..., 산부인과도 같았다. 정자검사 하나 받으러 갔다가 온갖 난임검사로 45만 원을 수납하고 나오면서, 그날 우리 부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세계의 아득한 깊이를 느꼈다. 아..., 어쩌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세계가,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나의 나팔관과 격동의 고민



그다음 주 월요일, 나는 추가적으로 받아야 하는 나팔관조영술을 받으러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어 오가는 통로인 ‘나팔관’의 상태를 살펴보는 검사였다. 이 검사의 결과로 어쩌면 그동안의 난임이 나의 문제로 밝혀질 수도 있는 셈이었다. 나는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려보는 사람. 


'만약 내 나팔관이 막혀있어서, 그래서 우리가 임신이 되지 않는 거였고, 앞으로 인공수정과 시험관 같은 험난한 길이 펼쳐져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그 길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정도로 아기를 원하나? 아냐, 아기도 좋지만 내 몸이 힘든 건 절대 싫어, 그냥 화려한 딩크족으로 살겠어.'


굴욕적이지만 간단한 검사가 이루어지는 15분간, 커다란 결정 앞에서 나는 몸보다 마음이 바빴다.     


며칠 뒤, 이 모든 검사들의 결과를 듣기 위해 마치 최종면접을 보러 가는 심정으로 또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요 근래 들어 아이를 가지고 싶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사주에 아이가 없다 한들 삶을 비관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일말의 각오 역시 되어 있었는데..., 검사 결과를 전하는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담담하고도 따뜻한 한마디.    

      

“나팔관도 정상이고 다 정상이네요”    

      

사형까지도 각오했던 죄수가 집행유예로 감형되면 그런 느낌일까. 비록 내 난소의 나이가 젊지는 않았고, 남편의 정자 상태도 ‘최상’은 아니었지만, 자연임신이 충분히 가능한 조건이라는 말에 뜻하지 않은 감격이 밀려왔다. 하지만 감격도 잠시, 아주 근본적인 의문이 머리를 강타한다.      

    

“저... 다 정상인데 왜 임신이 안 되는 건가요?”      

    

선생님은 이론적으로 자연임신이 가능한 상태여도 임신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빠른 임신을 원한다면 인공수정을 시도해보겠느냐는 말을 조심스레 전하셨다. 인공수정을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선생님은 자연 임신이 가능한 부부들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인공수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아아...,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인공수정이 엄청나게 여성의 체력을 갉아 먹고, 아주아주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을 때에나 추천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만큼 그리 무시무시한 시술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더 빨리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따뜻한 신기술에 가까웠다. (여성이 직접 배에다 주사를 하고 무척이나 힘들다는 ‘그것’은 마지막 단계인 ‘시험관 시술’이라고.) 


그러니 나라는 여자는 얼마나 무식하고도 섣부른가. 인공수정과 시험관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감히 딩크족을 고려하다니...,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겁먹을 필요 없는 일 하나 추가요



이로써 다시금 깨닫게 된 진리 하나.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겁먹지 말 것. 오늘부로 나는 거기에 ‘난임 치료’를 추가해볼 생각이다. 자세히 알고 나면 오히려 잔잔해지는 것들이 있다. 모르기에 무섭고, 모르기에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개의 블로그에는 아파서 기절할뻔했다고 쓰여있던 나팔관 조영술은 직접 해보니 내 경우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난임’이라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팻말의 병원도 내 생각보다 평온했다. 모든 것엔 개인차가 있는 법이고, 경험에 따라 주관적 온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왜 나는 남의 말만 듣고 그렇게 겁을 먹었을까.    

 

“우선 아직은 문제 없으니까, 한번 더 시도해 보자구요”     


선생님이 점지해준 날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처럼 마음이 가벼웠다. 부러 겁먹지 말고, 더 노력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 CONTACT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따로 보내는 어느 별난 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