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an 19. 2024

[임신일기] 입덧이 가니 가려움증이 왔네

임신 14주 차, 소양증으로 고생하는 임산부 후기


              

미르야 안녕? 


8주까지는 열심히 기록했는데 9주부터 지금(14주)까지 기록이 전무했구나. 왜였냐고 묻는다면 입덧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라고 답해야겠다. 특히 10주 차에는 무조건 밤에 토하는 게 일상이라 저녁을 먹는 것 자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 임신하면 신기하고 행복한 마음에 매일매일 뭐라도 기록할 줄 알았는데, 기분이 안 좋으니 기록도 쉽지는 않았어.        

  


그런데 끝날 것 같지 않던 입덧의 터널도 끝은 있더구나. 정확히 12주 차가 될 무렵, 갑자기 입덧이 절반으로 줄어든 거 있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나마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니 정말 살 것 같았어. 14주 차인 지금도 사실 경미한 입덧 증세가 있기는 해. 미묘하게 울렁거리고 향이 강한 음식을 먹으면 괜히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그래도 이 정도는 정말이지 천국이야 천국.      

    





산 넘어 산, 입덧 끝나니 가려워 죽네


그런데 그놈의 임신 참 야속하더라? 입덧이 좀 괜찮아지니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어. 온몸에 빨갛게 발진이 생기고 미친 듯이 가려운 거야. 알고 보니 ‘소양증’이라는구나. 세상에 소양증은 또 뭐라니. 찾아보니 임산부들이 임신 중기부터 흔히 겪는다는 소양증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엄마는 이번에도 심한 케이스구나. 어느 날은 팔에, 어느 날은 다리에, 어느 날은 배와 허벅지에 현란하게 발진이 일어나고 대책 없이 매우 가려워. 어찌나 가려운지 자다가 나도 모르게 심하게 긁어서 피딱지가 생기기도 한단다. 왜 엄만 뭐든지 다 심하게 겪는 거니? 난 내가 무던한 산모일 줄 알았는데 예민해도 이렇게 예민할 수가 없다. 정말 진상이야.    




실제 나의 소양증 증상

      


이런 소양증은 딱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 유력한 원인으로는 태반 호르몬의 영향으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나오기 때문으로 본다고 하네. 역시 호르몬은 무서운 존재구나. 입덧도 황체 호르몬이 나오면서 발생하는 거라잖니. 이런 걸 보면 인간은 자기 의지로 자신의 몸을 굴려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 호르몬에 강력하게 지배당하는 호르몬의 노예인 것 같아 그치?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물었더니 바르는 약을 처방해 주셨어. 근데 거기엔 스테로이드가 들어있어서 2주 넘게 꾸준히 발라서는 안된다는구나. 겨우 2주라니. 가려운지는 벌써 2주가 넘어가고 도저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제는 약을 바르는 것조차 포기했어. 약이 효과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구. 덕분에 엄마는 아침에도 벅벅, 점심에도 벅벅, 저녁에도 벅벅 긁어대며 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이것 또한 견디는 수밖에는 없겠지. 이런 엄마를 보며 아빠는 “듬지 불쌍해”하며 머리를 토닥이는데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아. 그저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빠가 부러울 뿐이야.           







그럼에도 네가 자라는 게 신기한 엄마 마음


그나저나 네가 생긴 지 벌써 14주라니.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모르겠어. 임신 극초기 때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가지 않더니 지금은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가는구나. 너의 성장을 알려주는 어플이 차오르는 너의 주수를 알려줄 때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야. 이제 너는 거의 완전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 눈코입은 물론 손가락 발가락도 있고, 손가락을 빨거나 기지개를 켜기도 한단다. 피부도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는구나. 혼자서 열심히 스스로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가는 너를 보며 경이로운 기분이 든다. 정말 고마워 미르야.  



알아서 잘 자라고 있는 너

        


마무리로 웃긴 이야기 하나 해줄게.           


저번 검진 때 아빠와 함께 산부인과를 갔을 때 일이야. 이제 제법 네가 커져 복부로 초음파를 할 수 있게 된 거야. 그전까지는 다리를 벌리고 누워 질에 기구를 넣어서 확인하는 ‘질 초음파’를 해야 했거든. 이제 더 이상 불편하게 질에 기구를 삽입하지 않고, 복부에 젤을 뿌려 편안하게 초음파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쁜 마음에, 아빠한테 “와 이제 배로 초음파 본다!”했더니 아빠가 뭐라는 줄 아니? “응? 계속 배로 한 거 아니었어?”라고 하더라. 지금까지 아빠와 산부인과를 갈 때마다 분명 엄마는 다리를 벌리고 드러누워 있었는데 아빠는 그게 다 ‘복부 초음파’라고 생각했던 거야. 



엄마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럼 내가 지금까지 왜 다리 벌리고 있었게?”하고 물으니 돌아오는 답변이 더 가관이야. “그냥 그렇게 하면 애기가 더 잘 보이는 줄 알았지” 남자들이 이렇게 둔감하단다. 귀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이 대화를 하며 어찌나 깔깔 웃었는지 몰라.       



여튼 미르야. 

이제 입덧이 가라앉았으니 더 자주 기록해 볼게. 

오늘도 엄마는 이만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안녕.               



임신 14주│태반이 거의 완성되어 자궁에 뿌리를 내리는 시기. 태아는 피부가 두꺼워지고 불투명해지면서 내장을 보호하게 되며, 생식기가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태아의 크기는 8.7cm 내외로 복숭아 크기!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 CONTACT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