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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Sep 25. 2024

내가 제왕절개를 선택한 이유

생각보다 괜찮았던(?) 제왕절개 과정, 통증, 회복기간까지 찐 후기


임신 30주를 막 지났을 때였을까. 초음파 검진을 하던 중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길 들었다.      


“어머, 아기가 탯줄을 목에 두 바퀴 감고 있네요”      


얕고 넓게 쌓은 지식을 통해 태아의 목에 종종 탯줄에 감긴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치만 그게 내 뱃속의 내 아이라고 생각하니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로 들려왔다. 게다가 한 바퀴도 아닌 두 바퀴라니!   

       

“네? 어떡해야 돼요 선생님? 위험한 거 아니에요?(호들갑)”      


그러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원래 뱃속 태아는 움직이다 보면 탯줄이 목에 감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저절로 풀리기도 하는데, 보통은 멀쩡하게 출산을 한다고. 하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말이 영 찜찜했다.     


“만에 하나 37주쯤 되어서도 목에 감고 있으면 그때는 아기 머리가 골반으로 내려오는 시기라서 조금 위험할 수는 있어요. 우선은 지켜보자구요”          


만에 하나. 세상에서 제일 불안한 말이 바로 ‘만에 하나’가 아니던가. 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날 하루종일 탯줄사고에 대한 온갖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섭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pexels



안되겠다 제왕절개 해야겠어!


그렇게 정보의 바다를 헤엄친 후에야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100% 안전하지는 않다. 분명히 탯줄사고로 죽는 태아가 있으며, 통증도 없이 사산될 수 있어 더욱 무섭다는 것.   


그런 부정적인 뉴스를 찾아보다 보니 알고리즘에 의해 언젠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한 유명 연예인 부부의 태아 사산 소식까지 접하게 되었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출산 2주를 앞두고 뱃속에서 죽은 아이를 꺼내야 했던 그 부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때는 그 뉴스가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배부른 임산부가 되니 남다른 공포와 슬픔으로 다가왔다.           

임신기간이라도 편했으면 모르겠다. 내 임신기간은 알러지 그 자체였다. 소양증(가려움증)과 비염 때문에 9개월 내내 알러지약을 먹으며 버텼으며, 매일밤 가려운 발을 얼음물에 담그고 진정제를 맞으러 다녀야 했다. 그렇게 키워낸 아기기에 ‘만에 하나’라는 아주 사소한 가능성마저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제왕절개를 결심하게 되었다.                




사진ⓒpexels



제왕절개, 은근 장점 부자네?


제왕절개로 마음을 굳히고 나니, 그전까진 생각해 본 적 없던 제왕절개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제일 큰 장점은 당연히 37주(분만이 가능한 주수)가 되자마자 아이를 꺼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내가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남은 임신기간 동안 탯줄에 감겨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그다음 장점은, 내가 언제 아이를 낳을지 알 수 있다는 것. 날을 잡아 수술대에 눕는 것이니 계획형 인간에게는 그렇게 안심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전까지 내 걱정은, 외출을 했다가 양수가 터지면 어떡하나, 낮에 남편도 없이 병원에 가서 혼자 애를 낳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 모든 걱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계획형인 남편도 정해진 날 출산휴가를 쓸 수 있어서 무척 좋아했다.     

     

장점은 그것 말고도 많았다. 그 무서운 진통과 회음부 절개를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 주변엔 수월하게 자연분만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10시간 이상의 무시무시한 진통 끝에 아이를 낳은 친구도 있었고, 절개한 회음부가 아물지 않아 두 달 가까이 고생한 친구도 있었다. 심지어는 자연분만 하러 갔다가 진통이란 진통은 다 겪고 결국 제왕절개하는 극악의 케이스도 있다.      


내가 고생할 산모일지 아닐지 포춘쿠키처럼 까봐야 아는 것이 자연분만이라면, 제왕절개는 모든 산모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예측 가능한 아픔이 아닌가. 겁쟁이 쫄보인 나는 복불복 따위 없는 깔끔한 시나리오를 원했다. 그래, 일단 낳고 후불로 아프자!          


그 외에도 사소한 장점이라 하면, 제왕절개로 낳는 경우엔 아이의 머리가 압박을 받지 않아 예쁘다는 것, 산후 요실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예정된 출산이기에 길일을 미리 받아서 아이의 사주를 정할 수 있다는 것 등등이 있겠다. 나는 사주팔자와 명리학 따위에 무지 연연하는 여자기에, 철학관을 통해 다정하고 명석한 아기가 나온다는 날을 점지받았다.      




사진ⓒpexels



제왕절개 D-day


그렇게 다가온 길일인 6월 28일.    

  

나와 신랑은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미리 담아놓은 출산가방, 일주일 전 미리 받아놓은 브라질리언 왁싱, 수술을 위해 8시간 금식한 몸, 분명한 길일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쾌청한 날씨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제 몇 시간 뒷면 이 뚱뚱한 뱃속에서 아기가 나온다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 수술복으로 환복을 한 뒤, 맨 처음 한 일은 항생제 테스트였다. 수술 후 투여될 다량의 항생제를 위해 미리 민감도 테스트를 해보는 것인데, 많은 산모들이 압도적인 고통으로 꼽는 과정 중 하나다.   

   

미리 찾아본 후기로는 ‘팔이 불에 타는 줄 알았다’, ‘제왕절개보다 더 아팠다’ 등등의 인상적인 것들이 있었지만, 이런 후기 때문에 미리 겁을 먹어서였을까. 실제론 별로 아프지 않게 느껴졌다. 살을 살포시 떠서 주사액이 찌르르 들어올 때 조금 화끈거린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고통이었달까.     

  

그다음 순서는 링거액과 무통주사, 페인버스터를 주렁주렁 매달기 위해 손목에 대바늘을 꽂는 일이었다. 평소에 보던 주삿바늘이 말벌이라면 이 대바늘은 장수말벌에 가까웠다.           


무식하리만치 커다랗고 굵은 대바늘이 손목에 들어와 꽂혔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항생제 주사보다 이 대바늘로 인한 뻐근한 혈관통이 더 불편했더랬다. 역시 사람마다 고통의 역치는 다 다르구나 싶었다.      

    

그다음 순서는 굴욕의 순서인 소변줄 끼우기. 간호사 선생님이 긴 줄을 가져와서 요도에 끼워주시는데, 아프지는 않았으나 상당히 아니꼬운 느낌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미리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온 덕분에, 그다음 굴욕과정인 ‘제모’는 하지 않아도 되어서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미리 준비한 자, 이렇게 굴욕을 면하나니.         


그렇게 수술 전 처치가 모두 끝나고 나서는 입원실이 배치되고, 여러 동의서를 작성한 뒤, 대망의 수술을 하러 수술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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