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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Nov 14. 2024

[출산 후기] 출산보다 아픈 그 이름, 젖몸살

출산의 고통은 끝이 없다! 가슴이 불타는 고통. 젖몸살 후기

나는 20대 중반에복강경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검진 차 산부인과에 갔다가 난소에 작은 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점점 더 커질 경우 난소를 제거해야 될 수도 있다는 소견을 들은 것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새파란 나이에 난소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은 너무도 청천벽력이었기에, 지체 없이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배꼽에 작은 구멍을 내 최소한의 흉터로 난소의 혹을 제거하는 복강경 방식이었다. 


“흉터도 안 남는대. 배꼽으로 하니까 남들이 보면 수술한지도 모른다 그러더라”      


최소한의 절개로 수술을 한다고 해서 고통도 작을 거라 생각한 건 과연 얼마나 큰 오산이었던가. 복강경 수술의 통증은 전혀 가볍지 않았고, 나는 퇴원을 하고도 한 달 동안 허리를 곧바로 펴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병실생활을 하면서 느낀 한 가지 교훈이 있었다. 수술 후 최대한 빨리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걸어 다니는 사람이 승자라는 것이었다. 


보통 몸을 절개해 여는 수술을 하게 되면 장기들이 서로 얽히는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걸을 것을 권유하곤 한다. 그러나 당시의 젊고 패기가 넘쳤던 나는 내 체력을 과신했고, 그다지 부지런히 걷지 않았더랬다. 누굴 탓할까. 조기보행이 회복 속도에 얼마나 큰 연료가 되는지 몰랐던 내 탓이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흐른 30대 중반. 이미 노산이라면 노산인 나이에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고 나자 나는 회복에 대한 집념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기필코 부지런히 걸어서 이번엔 누구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말 거야!’     


수술 다음날. 나는 소변줄을 빼마자마 목줄이 풀린 강아지처럼 빠르게 걷기를 시도했다. 오전에는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혼자 소변보기를 했으며, 정오부터는 부리나케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녔고, 저녁에는 혼자 신생아를 데려와 모자동실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움직일 때마다 수술부위는 터질 듯 아팠지만, 이미 한번 경험해 본 통증이라 어느 정도 역치가 쌓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걷고 또 걸었고, 입원 4일 차쯤 되자 남편은 내게 말했다.      


“자기가 제왕절개한 산모 중 제일 잘 걷는 것 같아” 


아 역시 나는 짱이구나. 경험을 반추해 활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스스로에게 감복해 있던 4일 차 저녁.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젖몸살’이었다.  





사진ⓒpexels


제왕절개 가니 젖몸살이 오네


젖몸살. ‘통증’도 아니고 겨우 ‘몸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운 분위기 때문일까. 젖몸살에 대해서는 사실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4일 차 아침까지도 모유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으며 가슴도 말랑말랑했었더랬다. 나는 젖몸살이 안 오려는 건가?                     


그러나 4일 차 점심 무렵부터 서서히 가슴 부근이 후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저녁 즈음에 갑자기 불타는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온도와 촉감도 충격이었지만, 거울을 통해 본 나의 가슴은 정말 상상초월로 커다랬다. 흡사 멜론 두 덩어리 같았다. 모유를 만드는 유선에 염증이 생겨 열이 오르고 단단해지면서 부풀기까지 한 것이다. 밤에는 가슴이 뜨겁고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고, 급기야 두통까지 찾아왔다. 


다음날 나는 회복속도 갑 제왕절개 산모에서 다시 시름시름 앓는 환자로 전락해, 1회에 9만 9천 원이나 하는 가슴 마사지 전문가 선생님을 병실로 모시게 되었다. 용암처럼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두고 도저히 이성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누운 내 옆에 앉아 돌보다도 딱딱한 내 가슴을 주무르고, 또 주무르고, 주무르셨다.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내 가슴을 지점토처럼 주물러도 창피함 하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젖몸살은 괴로웠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손길을 거치면 거칠수록 가슴이 점차 말랑말랑해지고,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나오지 못하고 가득 차 있던 젖을 비워내니 뭔가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역시나 오롯이 직접 경험해 봐야만 진짜로 알 수 있는 걸까. 막상 겪어보니 죽을 정도의 고통이라 들었던 제왕절개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으며, 견딜만한 고통이라 예상했던 젖몸살은 예상치 못한 극강의 고통이었으니. 결국엔 출산도 산모마다 케이스가 다 다르며, 그렇기에 지레 겁먹을 필요도 자만할 필요도 없음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사진ⓒpexels


출산한 자의 대화는 다르네


입원해 있는 동안 출산의 경험이 있는 친구들과 카톡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엄마의 길에 들어서니 친구와의 대화도 제법 결이 달라졌다.      


“와, 제왕절개는 정작 별로 안 아팠는데 젖몸살이 미쳤네”

나는 자연분만 회복 빠르대서 자연분만했는데 진짜 회복 너무 느리고 아파서 배신감 느꼈잖아”

“진짜 다르다. 나는 젖몸살은 그저 그랬는데 수술 통증이 진짜 대박이었어. 화장실 가는데 1시간 걸렸잖아”  


침상에 누워 친구들의 출산 스토리를 들으며 키득키득. 병원에서의 5박 6일은 그렇게 웃다가 울다가, 또 웃다가 다이나믹하게 흘러갔다.   


벌써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나는 현실육아 체험 중에 있다. 또 다른 고통과 힘듦이 나를 혼돈과 우울, 그리고 잠시 찾아오는 기쁨 속으로 밀어 넣는 중이다. 그러나 이 길고 긴 터널 역시, 지레 겁먹을 필요도, 그렇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음을 이제는 조금 알겠다. 어차피 아무리 친구들이 말해줘도, 맘스홀릭 후기를 뒤져봐도, 내가 겪어봐야만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이려니. 초보 엄마인 나에게 그저 담담하게, 건투를 빌 뿐이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PDF 인간관계 비법서 『오늘보다 내일 나은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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