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갔다가 만난 추억 속의 오빠
세월을 가장 크게 실감하는 때 중 하나는 바로 지인의 결혼식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이종사촌동생의 결혼식에 갔다가 어린 시절 함께 어울렸던 먼 친척 오빠를 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 축구선수였고 얼굴도 잘생겨서 인기가 엄청 많았던 오빠.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고등학생이던 오빠 집에 놀러 갈 때면 나는 박스채 쌓여있는 여학생들의 팬레터를 훔쳐 읽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오빠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수많은 마음들이 절절하고 빼곡히 적혀있던 그 상자는, 안 그래도 잘생긴 오빠를 더 빛나게 만들었었다. 여자친구라는 사람은 연예인처럼 날씬하고 예뻤던 기억도 난다.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또 있을까', '오빠는 나이 들어도 잘생겼을 거야' 하고 생각했는데..., 20여 년이 흐른 뒤 결혼식장에서 만난 오빠는 그야말로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살도 좀 붙었고, 뽀얗던 피부도 칙칙해진 것 같고, 자신의 잘생김을 잘 알고 한껏 꾸미던 옷차림도 이제는 제법 편안하게 바뀌어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아저씨들 중 단연 훈훈한 쪽에 속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복잡 미묘한 건 왜였을까..., 나의 우상도 늙는구나, 세월이란 건 참 어쩔 수가 없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그쪽에서도 몰라보도록 커버린 나를 보며 "어머 요만할 때 봤는데 언제 그 꼬마가 커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어?"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말은 못 해도 세월의 야속함을 느꼈겠지. 오빠 눈에 비친 나는 어땠을까? 별 볼 일 없게 늙어버린 아줌마는 아니었을까? 내심 내 모습이 나빠 보이진 않았길 기대하며 결혼식장을 빠져나왔다.
나이가 드니 이제 옛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가 결혼식이 되어간다. "지금은 결혼식이지? 더 있으면 이제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거야" 그런 말을 이제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을 만큼, 나의 나이는 무르익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런 자리가 가끔은 숨 돌릴 틈 없는 삶을 한 번씩 돌아보게 만들어 좋은 것 같다. 나의 지금 모습이 어디쯤인지, 다른 사람의 눈에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어서. 젊음에 집착하는 아줌마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내면 못지않게 외양도 부끄럽지 않게 늙고 싶다는 바람이다. 모름지기 좋은 포장지 안에 좋은 내용물까지 담긴 게 베스트니까.
/ 작가 우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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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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