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가까이 우리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나만의 꽃순이 할머니가 있다.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소견을
들었다고는 했다.
머지않아 나온 lab결과지(피검사 결과지)는
어마어마해 나를 교수님 진료실로 달려가게 했던
우리 꽃순이 할머니이다.
90세가 넘으셨는데
정신이 너무 또렷하셔서 가끔은 교수님도 나도
흠칫 놀란다.
꼭 의도하지는 않지만,
보통 고령의 환자분들께는 어려운 구조의 말,
복잡한 내용의 말은 굳이 안하게 된다.
혹은 아주아주 풀어서 말씀드리게 된다.
근데 우리 꽃순이 할머니에게는
망설일 것 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다 드려도
척척박사처럼 알아듣고 말씀하신다.
처음엔 앉지도, 혼자 일어나 걷지도 못하셨다.
30일이 지나고, 50일이 지나고,
우리 꽃순이 할머니는
워커를 끌고 혼자 병동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빨리 집에 갈거라고
하루에 병동 복도를 10바퀴, 15바퀴를 걸으신다.
"아이고 아파라"하시면서
침도 개근상 받으며 맞으신다.
어느 날은,
"내가 죽기 직전에도 우리 김선생이
생각 날거 같데.
우리 김선생이 나 걷게 해줬어.
내가 다 알아.
내가 다 기억해"
하셨다.
그 말이 너무도 강력하게 내게 와 닿아, 눈물이 눈 앞을 가렸던 날이다.
이젠 어느 정도 걷기도 하시고
긴 병원생활이 답답도 하시고
병원에서 지내실 수 있는 기간의 마지노선에 다다랐다.
우리 꽃순이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으시다.
그런데 혼자 화장실을 갈 수도,
혼자 밥을 차려 드실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 자식분들 누구도 집에 모실 수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의사의 몫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자식분들은 요양병원으로 모실 고민을
하신다고 한다.
우리 꽃순이 할머니는 요양병원은 죽어도 가기싫어
24시간 간병인과의 동행은 왠만큼 벌어서는
지속불가능한 금액이 필요하다.
자식들의 고민은 깊어져가고
할머니의 퇴원은 속절없이 밀려간다.
주치의인 나는 어쩔수없이 보호자들에게 단호한
퇴원을 요청해야한다.
그렇게 우리 꽃순이 할머니를
힘들고 힘들게 보내드렸다.
나에겐 꽃순이 할머니가 한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많은 꽃순이 할머니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좀 더 생겼으면 한다.
그런 마음에 스쳐가는 나의 생각들을
좀 정리해봤다.
사회적인 틈을 매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는데,
아직 어떻게 해야할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근데 일단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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