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뿐이더라
- 멈추지 않고 쉬어간다는 게

by 든해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문지방이 닳도록 환자 병실에 드나들었다.

좀더 병원스러운 말로 하자면,

문지방이 닳도록 환자들 상태를 확인하는 라운딩을 다녔다.

아침해가 뜰 무렵, 점심먹고, 저녁무렵, 잠들기 전..

하루에 네 번씩 라운딩을 갔다.

내 엉덩이가 그렇게나 가벼울 수 있었던

나의 사고는 딱 하나였다.

"나한테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게 아닌데 우리 환자들은 그게 그렇게 좋다잖아"

그래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하루에 한번 남짓 라운딩을 간다.

나를 쭉 지켜봐온 병원 분들은 아마도 내가 레지던트가 되어서 변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변했다고 하기에는 요즘의 나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근데 그 불편한 마음을 품고도 몸이 안 움직인다.

왜냐면

나의 사고 딱 하나에서 바뀐 게 있다.

"나한테 그게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었는데 요즘은 쉽지가 않아. 아니 좀 어려워..

근데 우리 환자들은 그게 그렇게 좋았겠지."


그간 갈아졌던 내 몸과 마음, 지칠 구석이 아직은 마저 남아있나보다..


문득 교수님께서 내가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에

지나가듯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김선생, 지금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가다가도 너무 힘들고 지칠 때는 포기하지말고
그냥 편하게 쉬어가도 된단다. 하지만 멈추지만 마렴"


글쎄 그냥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조용히 그 말씀에 따라 살고 있다.


온 몸이 천근만근이라 일으키기 힘들고, 움직이기 힘들어도

나의 일과는 짜여진 틀에 맞게 굴러가고, 나는 그 일과를 해내다 보면 또 오늘의 해는 저문다.


힘들다고

안 일어나지도, 안 움직이지도 않는다.

좀 덜 일어나고, 덜 움직인다.

그리고

좀 굼뜨게 일어나고, 굼뜨게 움직인다.


"그 뿐이더라.

멈추지는 않고 쉬어가도 된다는게. "




당직인 어제 밤, 의국에 앉아있다가 문득 "홍길동 환자분 잘 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쩍 내려가본 병동이다.

가볍게 들어가본 504호 병실.

나오는 길에 "흠, 병동 온 김에 김철수 환자분에게도 인사하고 갈까?" 하며 들어가 본 503호 병실..

504호, 503호, 508호, 304호,...

그렇게 하나하나 모여

병동 환자를 모두 둘러보는 라운딩이 됐다.


"돌아오는 길도 그 뿐인 것 같다."


내가 쉬어가던 나를 다그치지 않았는데도

쉬어가던 내가 알아서 시동걸고 있었다는 걸 마주했다.


정말 그냥, 그 뿐이다.


여러분도 그 뿐인 쉬어감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 뿐이잖아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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