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5000원입니다.
밥을 적게 먹기 위해 당뇨환자용 춘식이 밥공기를 쓰고 있어요. 70g 표시선이 있고 120g정도 담아 먹을 수 있어서 다이어트에 도움되요. 급식판은 아가들이 어린이집에 갈 때 쓰는 어린이용 급식판이에요. 남편의 다이어트를 위해 샀는데...이젠 반찬통으로 쓰고 있습니다.
남편의 발가락이 뿌러진 이후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먹이고 있다. 집에서도 반깁스를 하고 목발로 엉거주춤 걸어가는데 보고만 있어도 불안불안해서 소파에 앉아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소파와 한몸이 된 남편을 위해 세 끼 식사부터, 물, 간식, 커피 심부름까지. 난 그저 병수발러. 노예도 이런 노예가 없다.
아침은 시댁에서 가져온 사골국, 점심은 남편이 먹고 싶다는 걸 만들어 먹이고, 저녁은 다시 밥을 챙겨준다. 세 끼 골고루 풍부한 영양소를 챙겨줘야 뼈 회복력이 높아질 것 같은 마음에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남편 밥부터 챙긴다.
근데 정말 신기한건 어머님께서 사골국을 챙겨주신 경위다. 남편이 시댁에 들러 사골국을 챙겨 온 건 발가락이 뿌러지기 며칠전이었다. 헐....소름...
어머님께선 혹시 직감적으로 느끼셨던 걸까? 며칠 후면 아들의 발꼬락 뼈가 뽀각하고 뿌러져버릴 거란걸. 암튼 엄마들의 예감이란 건 소름 돋게 만든다. 우리 엄마도 항상 내가 아플 때만 "아무일 없니?"하며 집중적으로 전화하던데.
어머님이 보약처럼 끓여주신 뽀얀 사골국을 아침마다 남편에게 챙겨준다.
문제는 나다. 난 남편과 따로 밥상을 차린다. 사골국물이 싫어서다. 뭔가 마지막에 남아 있는 비릿한 내음. 입술에 쩍쩍 달라 붙는 것 같은 이상한 비린내가 싫어서 사골국은 먹지 않는다.
따로 된장국을 끓여서 채소 반찬들과 먹는다. 얼마전에는 아가들이 먹는 순한 비건김치를 샀다. 시댁 김치는 매운 고춧가루를 써서 끝맛이 엄청 맵다. 맵찔이인 나는 얼마전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결국 순한 김치를 사먹기로 했다.
위염을 달고 살다가 40이 넘으니 위경련도 찾아 온다. 5월 중순쯤에 남편과 공원산책을 하다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위경련이 심하게 왔다. 그 뒤로는 자극적인 음식은 왠만하면 피하는 중이다.
두부된장찌개, 버섯된장찌개. 여러 찌개와 국들을 번갈아 가며 끓이는 것도 일이다. 남편과 같이 사골국물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국물도 별로고 특히 환자식인 정성스런 사골국물을 온전히 남편에게 양보하고 싶다.
어머님이 손으로 직접 찢어주신 고기가 엄청 많이 들어있었다. 남편이 이 사랑 가득한 고깃국물을 먹고 얼른 기운차렸으면 좋겠다.
남편 먹을 우유도 사고, 그 대신 내가 먹을 콩물도 샀다. 우유와 콩물 모두 뼈에 좋다. 특히 중년 여성의 뼈건강에는 콩물이 최고다.bb
요즘엔 날이 더워지면서 점심은 국수로 떼울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남편과 비건식을 한다. 잘게 채썬 오이, 참외, 깻잎, 토마토를 놓고 비건 김치도 넣는다.
맛있는 양파절임도 곁들이면 너무 맛있다. 소스는 모두 식물성으로된 것만. 이번에 알았는데 오뚜기 두반장소스는 식물성재료만 들어갔다. 스리라차소스, 칠리소스, 참기름, 통깨. 모두 비건이다.
이러면 비빔장과 고명은 자기 입맛대로 올려먹는다. 셀프비빔국수 시스템. 남편은 맞춤형 레시피를 좋아한다.
어머님이 주신 사골국물을 다 먹고 나서. '이젠 끝난건가?' 냉동실 한칸을 잔뜩 메우고 있었던 음메음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하얀 국물들이 없어지자....
친정엄마께서 또 사골곰탕을 보내오셨다.
또 냉장고 한켠을 잔뜩 메우고 있는 사골곰탕. 모두 남편의 몫이다. 당신의 뼈가 빨리 붙길 바라면서...난 이제 미역국 끓여먹어야쥐~ 오이미역냉국 끓여먹어야쥐~ 남편은 하나도 안 줘야쥐~
오늘 점심엔 남편이랑 콩국수 끓여먹음. 이것도 셀프 시스템. ㅋㅋㅋ
한번은 나도 얼마전 위경련이 일어나 응급실에 갔던 환자인데. 그래서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는데. 바로 그 다음주에 발가락뼈가 뿌러져서 온 것 뭐냐며 화를 낸 적이 있다.
며칠전에도 밤에 배가 아퍼서 잠을 잘 못 잤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건 정말 힘든일이다.
남편에게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차려내는 것도 힘들고, 당신 병수발 드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했다. 쇼파에서 리모콘만 만적거리면서 꼼짝도 않는 남편. 전에는 발가락이라도 꼼지락 거렸었는데. 지금은 발가락 꼼지락도 못 한다. 불쌍하면서 꼴 보기가 싫다.
텀블러에 물도 떠다줘야하는데. 텀블러도 하루에 한개씩 번갈아가면서 깨끗한 걸로 바꿔줘야한다. 거기다 나에게 믹스커피...아이스로 타오라는 심부름도 시킨다.
모든 집안일은 나의 몫, 이 집에서 날 도와주는 건 식세기 뿐이 없다.
난 힘들어서 남편에게 하루에 7만원씩 간병비를 내라고 했다. 병원에 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하루에 7만원을 주고 간병인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이 난 고급인력이라며 오천원을 더해 7만 5000원해 해주기로 했다. 발꼬락이 나으면 열심히 벌어서 가져다준다나.
여보, 여태까지 열흘이다. 나 다 계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