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게 아니라...굳이? 라는 생각으로 그냥 놔두는 것.
나는 요즘도 남편의 사골국을 계속 끓이고 있다.
지난달 말 발꼬락이 뿌러진 남편은 3주째 계속 깁스를 하고 있다. 뼈 붙으라고 시댁, 친정에서 보내주신 사골을 계속 챙겨주는 중이다.
난 사골국이 싫어서 양배추 물김치를 한껏 담궈놨는데 이것도 이제 끝물이다. 새콤달달, 아삭아삭하니 천연소화제가 따로 없다. 요즘 같이 후덥지근한 날씨엔 시원한 물김치가 딱이다.
진짜 이거 한 통을 나 혼자서 다 먹었다. 김치통으로 한통 담가놨었는데. 들어간 것 간단하다. 양배추 한 통과 소금, 식초, 물. 그거면 된다. 요즘 같은 날씨엔 상온에서 숙성해서 얼른 냉장고에 넣으면 금방 익는다. 속도 편안하고 참 좋다.
어떤 날은 오이가 가득 들어간 콩국수도 먹고.
오이를 잘게 썰어서 콩국으로 먹으면 정말 맛있다. bb 남편은 요때 시원한 콩국을 나와 함께 맛본다.
그러나 남편은 대체로 사골국. 뜨겁게 펄펄 끓여서 가져다 줘도 입에 잘 맞는지 군말이 없다. 맛있나보다.
저번에는 사골국이 지겨울까봐 떡만두국으로 끓여줬더니 정말 잘만 먹더라. 나는 이때 속이 좀 더부룩해서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남편 먹는 모습이 참 맛있어보였ㄸㅏ.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먹고 싶은 것. 참는 게 아니라 있어도 안 먹을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순 없을까? 고기를 선호하는 입맛은 아니지만 때때로 한번씩 위태로운 유혹에 빠지곤 한다.
여태까지는 냉장고에서 고기칸을 비워놓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었다.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대신 생선과 비건 가공식품으로 가득 채우는 방법으로.
외식도 되도록이면 고기를 피하는 쪽으로. 그런 방법들이 남편과의 불화를 키웠다. 하지만 참는 게 아니라 고기가 있어도 그냥 냅두는 그러한 경지에 다다른다면? 그런 건 과연 어떠한 것일까?
아무리 남편의 유혹이 있더라도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있으면 있는대로 그냥 냅두는 그러한 경지. (여기서 남편의 유혹은 남편의 직접적인 유혹이 아니라 남편이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보내는 유혹의 시그널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기의 유혹을, 남편이 보내는 유혹의 시그널처럼 생각해보기로 했다. 굳이...라는 마음으로.
요즘 남편은 나의 모습에 감동 받았나보다. 사골을 같이 먹지도 않고, 따로 물김치를 담아 먹고. 고기를 피하려는 나의 모습이 이제 점점 자연스러워보이는지. 남편이 생선초밥을 양보하기 시작했다.
생선초밥. 우리 부부가 맘편히 먹을 수 있는 최대의 외식조합. 하지만 모둠초밥에 나온 계란초밥과 소고기초밥은 언제나 남편 차지였는데. 남편이 얼마전부터 그 갯수만큼 생선초밥을 나에게 양보하기 시작했다.
"내가 먹은 갯수만큼 너는 생선초밥을 더 먹어."
그동안 남편은 나와 생선초밥 갯수도 똑같이 먹고 덤으로 내가 먹지 않는 계란초밥과 소고기초밥도 더 먹고 있었다.
이젠 자신의 유혹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일까? 아니면 진짜 존중을 해주려는 것일까? 동등은 평등이 아니라는 말을 초등학교 때 배웠는데 그게 무엇인지 이제서야 좀 알 것 같다. 뭐든지 똑같이 하려는 '동등'에는 어쩌면 평등과 공평이 아닌 '차별'이 스며든 것일 수 있다는 걸.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남편은 지금 카비바라 처벌을 받는 중이다. 나의 일식조리사 합격을 바라면서 요즘 듀오링고로 일본어를 공부 중이다. 그런데 일본어로 '밥'을 뜻하는 '고항'을 이상한 발음으로...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언급하긴 싫다.) 저질 카피바라. 발꼬락이나 빨리 붙여와라. 나 요리학원 다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