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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감자전

포실포실 단호박과 감자의 만남

나는 전을 싫어한다. 잘 못 하기 때문이다. 못 하기 때문에 안 하고, 안 하기 때문에 못 하는 건가? 싶지만 어쨌든 싫다. 싫어하는 이유를 대자면 10가지도 넘게 댈 수 있다.


우선 기름이 많이 튀기 때문이다. 전을 한번 부쳐먹고 나면 가스레인지 온 사방이 기름 투성이다. 그만큼 바삭바삭하고 맛있게 지지려면 기름 사용량도 많아야한다. 재료에는 꼭 밀가루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 밀가루도 싫다.


잡곡이나 견과류처럼 고소한 맛도 나는게 아니고 그냥 무미건조한 맛이다. 채소전이라도 부쳐먹으려면 채소는 무조건 많이, 밀가루는 있는 듯 없는 듯 해야한다. 채소 손질이 9할, 밀가루는 풀로 붙이는 구실만해야한다.


또 채소는 정성껏 채썰어 넣어야 눅눅하지 않고 바삭바삭 맛있다. 그 맛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음식이 바로 감자채전이다. 약간 덜 익히면 아스락아스락 하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아삭아삭하다.


하지만 내가 전을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먹고 나서에 있다. 감자전 한판을 먹고 자면 다음날 그만큼 배가 불러 있다. 포만감이 오래 간다는 뜻이 아니라 복부에 있는 피하지방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넉넉한 기름과 바삭한 탄수화물의 향연. 나의 뱃살은 넉넉해지고 멘탈은 바사삭 부셔진다. 그것들에 대한 내 몸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것 같다. 얼굴에 붙은 피지를 흡수하는 기름종이 마냥 쫙쫙 빨아들인다고 해야할까?


나는 먹는 것에 굉장히 관대한 편인데 전이란 음식은 입으로 느끼는 즐거움보단 후폭풍이 더 큰 것 같다. 특히나 밀가루가 많이 붙을수록, 기름에 튀기 듯이 바삭하게 부쳐낼수록 내 몸은 더 극렬히 반응한다. 거기에 감자를 붙이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이 감자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집에 같이 산다. 감자전 뿐만이 아니라 온갖 기름에 지져낸 것들은 다 좋아한다. 그 분 때문에 난 끝임없이 도전해야한다. 이번에도 새로운 미션을 던져주셨다.


감자전이 먹고 싶다는데 그냥 그 말이 넘어가지 않는다. 흘려들은 것처럼 무시할 수 있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꼭 여운을 남긴다. 어쨌든 감자전은 맛이 있다.


겉바속촉. 겉은 바삭, 안은 쫀득한 맛이 제일이다. 밀가루처럼 밋밋하지도 않고 구수하면서 찰지다. 미각세포에 달라붙어 하나가 되는 맛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후폭풍으로 밀려오는 뱃살 때문에 왠만하면 멀리하고 싶은 것 뿐이다. 기름종이 같은 특이한 체질 때문에.


그래서 하기 싫은, 못하는 요리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본다. 덜 살찌고, 나도 맛있고, 그 사람도 맛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서. 마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 같다. 나쁘게 말하면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이다.


감자하면 동시에 생각나는 건 포실포실한 단호박이다. 입안에 도는 식감이 감자랑 비슷하다, 촉촉하기도 하고, 포슬포슬하기도 하다. 단맛은 더하지만 칼로리는 감자보다 살짝 낮다. 탄수화물 대신 베타카로틴, 비타민 B, C, 칼륨 등 영양성분이 많고 식이섬유도 풍부하다.


비슷한 식감에 단맛도 더 나고 영양성분도 풍부하다면 이걸 반반 섞어보는 게 어떨까? 감자랑 적절히 섞으면 고소한 맛도 나고, 괜찮을 것 같았다.


감자는 냄비에 물을 잔뜩 넣어서 푹 삶아내는 과정으로 전분질을 제거한다. 단호박은 그 위에 찜기를 올려 부드럽게 쪄낸다. 둘을 동시에 하려니 감자는 잘 삶아졌는데 단호박이 물을 너무 많이 머금었다.


삶은 감자를 잘 으깨서 물러진 단호박과 섞는다. 너무 물기가 많은 듯 해서 아몬드가루를 2큰술 넣어주었다. 예전엔 오트밀을 넣었었는데 그것보단 아몬드가루를 적당히 넣으니 고소한 맛이 훨씬 좋았다.


밀가루 대신 아몬드가루를 살짝 넣어 고소함도 살리고 물기도 잡는다는 생각까진 좋았다. 그런데 기름을 두른 팬에 지져내는 게 문제였다. 안 그래도 축축한데 기름을 머금어서 눅눅해지기까지 하니 전이 잘 뒤집어질 리가 있나?


더군다나 나는 성격이 급해서 전을 빨리 뒤집어야 한다. 한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걸 절대 못 한다. 게다가 더운 여름 활활 피어오르는 가스불은 이유없는 증오심마저 타오르게 만든다.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퍼붓는 증오심. 눈 앞에 지나가는 벌레마저도 미워하게 된다. 이건 짜증이다. 전은 다른 요리에 비해 불 앞에 더 오래 서있어야 한다.


짜증이 더해지면 요리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주방에서의 컨디션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결국 이 레시피는 망했다. 미움과 증오심의 결과다. 아! 이 아까운 걸 어쩐다? 약간 촉촉하면서 질척거리지 않는 포슬한 반죽이 애매하게 남았다.


예상하지 못 한 계획 속에서 만들어낸 참담한 결과다. 나는 아직 전을 모른다. 기름에 지지는 건 역시 나의 적성이 아니다. 하지만 해내야만 한다. 여태까지 정성들인 반죽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꾸역꾸역 미완성으로 그 분의 입에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다. 먹기 싫은 이상한 망작을 그 분이 억지로 먹는 걸 생각만해도 괴롭다.


그래서 해내야만한다. 우선 경단처럼 반죽을 동그랗게 말다가 ‘이걸 두 손바닥으로 눌러보면 어떨까?’ 란 생각이 들었다. 호떡처럼 납작둥굴한 모양이 되겠지란 생각에 손에 기름을 발라 경단에 둥굴려 칠한 다음, 두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아주 예쁘게 잘 펴졌다.


‘이 정도면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도 나쁘지 않겠는데?’ 란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아주 얇은 반죽에서 겉바속촉의 식감이 구현됐다. 망작으로 남을뻔한 감자전 레시피가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부활하는 순간이다.

감자의 고소한 맛이 첫번에 치고 나오면서 단호박의 은은한 단맛이 뒤를 잇는다. 혀를 착 감싸는 전분질의 묵직한 찰짐이 단호박의 포슬함과 잘 어울린다. 호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한 감칠맛은 호박단내라는 향기로 입맛을 자극한다.


나의 단호박감자전 레시피는 이렇게 탄생했다. 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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