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봄풍경 뒤로 보인 경복궁의 눈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해설사님과 동행하는 경복궁 투어를 다녀와서 어깨가 너무 아팠다. 목과 어깨 위로 무거운 바윗덩이가 올라간 것처럼, 팔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남편에게 마사지건으로 두드려달라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앜! 너무 아파!' 도 아니고. 평소라면 아프다는 소리가 먼저 나왔을 텐데. '살려주세요!' 라니! 마치 상궁이 윗전에게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것처럼 허리를 계속 구부리며 눈물까지 흘렸다.
너무 아픈 와중에 무의식으로 튀어나온 말인데 남편은 거기에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이랑 경복궁은 정말 뭐가 안 맞나봐. 전생에 명성황후였나?"
"설마?"
"근데 명성황후님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을리는 없을거고, 무수리? 아니면 상궁정도?"
남편은 근거없는 망상을 덧붙여가며 큭큭대고 있었다.
"나는 조선의 국모가 아니라 무수리였다!"
조선왕조 500년을 떠받히기 위해 죽어간 원혼들이 상궁과 나인들 뿐만이겠는가? 그 엄청난 역사 속에서 비명횡사한 아까운 생목숨도 부지기수였지 않았을까?
마지막 국모가 시해된 잔혹한 역사 속에서 경복궁은 또 얼마나 잔인한 역사를 받아내야만 했을까?
억울한 이들의 원혼과 울음소리가 경복궁의 상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같이 빌어주고, 울어주고 싶었나보다.
남편과 농담식으로 주고 받았지만 사실, 지난해 5월, 경복궁에 놀라갔다가 북문 근처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갑자기 혈압이 70이하로 뚝 떨어져서 기절해 119를 불러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원인불명. 이유도 모르는 갑작스런 저혈압에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고, 화장실 앞에서 쓰러져서 블랙아웃처럼 의식을 잃었다. 어떻게 구급차에 올랐는지 중간중간의 기억들은 아직도 없다. 그리고 간신히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음 속으로 빌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쩌면 진짜로? 내가? 전생에 억울하게 죽은 무수리였을까? 그리고 그 자리가 혹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근처?
신무문, 북쪽부터 왕의 시선으로 보는 경복궁
그리고 올해 봄, 그곳으로 기어이 다시 찾아들어가 해설사님과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부터 시작하는 경복궁 투어. 경복궁은 원래 북악산부터 비탈이 져서 남쪽으로 경사면이 나있는데 광화문부터 주작대로로 올라오면 신하들의 시선. 북으로부터 내려가면 왕의 시선으로 궁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신하의 시선으로만 경복궁을 관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왕남면, 왕은 북을 등지고 남면을 바라봐야한다.
한번도 바라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선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남으로부터 들어오면 중간, 근정전 쯤에서 끝나버리는 관람은 항상 은밀한 내전이나 지밀한 곳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래서 북에서 내려가는 시선은 왕의 개인 도서관인 집옥재와 그 옆에 있는 팔우당을 조금 더 면밀히, 가깝게 관람할 수 있었다.
4만 여권의 책은 지금 어디갔을까? (일부 유실되거나 분산되었지만 상당수는 규장각에 이관되어 주요 기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집옥재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고종황제는 이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당시 최첨단 건축기술로 개인도서관을 지어놓고. 귀한 소재였던 유리로 만든 복도각과 창문들. 그리고 둥그런 보름달처럼 나있는 창문, 만월창이 어딘지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예쁘고 아름다운 건축을 넘어선 무언가. 고종의 손길이 닿았던 책들의 원혼이 흑흑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팔우당은 모든 것이 팔각형. 기둥도, 주춧돌도 모든게 팔각형이다. 2층은 개방을 막아 놓았는데 단청이 정말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짙은 단청만큼이나 확고했던 고종의 개혁정책은 희미하게 남은 유물처럼 보였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세조가 단종과 사육신과 생육신을 모두 끌고 나가 충성맹세를 강요한 회맹단도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바깥에 있다. (현재의 청와대 일원)
죽은 사람의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하는 풍습 때문일까?
왕이 돌아가시면 시신을 안치시키고 상을 치른 태원전도 경복궁의 북쪽에 있다. 경복궁의 북쪽은 조선의 죽음과 가까운 곳이었다. 죽음, 생과 사. 역사의 고난과 역경들이 마주하는 곳.
그리고 일제가 남긴 상처와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슬픈 왕궁, 경복궁.
경복궁이 울고 있었다.
봄꽃이 만개한 환한 표정 뒤에
역사의 풍파로 깨어지고 상처 받은
슬픈 왕궁.
예쁜 봄날의 미소만큼
어쩌면 눈물이 많았던 곳
행복한 웃음소리보다
비명소리가 높았을지 모르는 곳
오늘날의 봄이 더 아름다워서
경복궁의 눈물이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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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투어한 경복궁 관람은 양인억 해설사님과 함께한 투어로 내돈내산 25,000원이 절대 아깝지 않은 투어였습니다.
역사와 궁의 깊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메이커스 히스토리안의 궁궐투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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