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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07. 2023

염옥례 고등어조림

외할머니는 레시피 속에 살아있다.

부추가 아주 쫀득쫀득했는데.


맨 밑에 무를 깔고, 부추와 고등어를 켜켜이 쌓아 올린 외할머니표 고등어조림. 나는 한번도 맛보지 못 한 이 고등어조림을 엄마는 요즘들어 더 그리워하신다. 60대 초반을 지나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든 친정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예전에 뵜던 외할머니의 모습과 점점 더 닮아져간다. 그리고 어느새 거울 속에는 새댁시절 엄마를 닮아 가는 내가 있다.

 

외할머니 보고 싶어?


엄마는 음식보다 추억을 먹고 싶은 게 아닐까? 이제 곧 결혼식 치를 딸을 생각하면서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딸을 시집보내던 외할머니의 마음. 엄마도 엄마가 그리워서 외할머니의 음식이 먹고 싶어진건지도 모른다. 음식은 추억을 부르고, 기억과 그리움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추억을 먹는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외할머니는 손주들 중에서 유달리 나를 예뻐하셨던 것 같다. 10년 전 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보고싶으니까 한번만 와달라는 생전의 간절한 바램도 못 들어드리고 나는 할머니께서 눈을 감으신 뒤에야 찾아뵜다.


너무 후회했다.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이 땅 어디엘 가도, 아무리 보고 싶어도, 간절히 기도를 해도 볼 수 없다는 걸. 그리움과 상실의 바다가 밀려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꿈 속에서 먹는 그리움


그래서 가끔 외할머니 꿈을 꾼다. 어릴 적 아빠가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날은 외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셔서 주무시고 갔다. 그럴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먹었는데 그 장면이 꿈에서 생생하다. 이것저것 딸에게 레시피를 가르쳐주시는 외할머니의 모습, 엄마는 새댁시절 그렇게 음식을 배웠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함지박에 호두를 까놓으면 내가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다가 할머니가 집어 주는 호두를 받아 먹었다. 외할머니, 엄마, 나 이렇게 셋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 때문에 자주 볼 수 없었던 아빠보다 외할머니가 더 든든했다.




당신이 다시 태어나길


커서는 방학 때 외갓집에 놀러가면 항상 할머니를 꼭 끌어 안고 잤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외할머니 쮸쮸를 만지며 잤는데 할머니는 항상 네 이모들, 외삼촌들이 다 빨아먹어서 가슴이 다 말라붙었노라고 하셨다. 난 그래도 외할머니 쮸쮸가 좋았다.


기억하는 한 나는 엄마의 가슴을 만져본 적이 없다. 아주 어릴 땐 만져봤겠지만 의식 중에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은 없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엄격했던 엄마보다는 외할머니의 따스함이 좋았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엄마이자 아빠였다.

 

얼마전에도 꿈에서 외할머니를 뵜다. 할머니는 약간 나이가 드셨지만 건강해보이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내 쮸쮸를 많이 드릴테니 나의 자식이나 손주로 다시 태어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꿈인데도 할머니가 죽지 않고 영원히 내곁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엉엉울었다. 외할머니 죽지말라고. 난 그날 울면서 깼다.

 



외할머니는 레시피 속에 살아있다.


이 세상에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나도 그렇고 엄마도, 남편도 외할머니처럼 죽음을 맞이할거다. 내 가족들이 그럴거라면 마음이 아프지만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건 피해갈 수 없는 이치다. 다만 위로가 되는 건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피가, DNA가, 모계로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가 내 몸 속에 전해졌다는 거다.


외할머니는 내 몸 속에 살아 있다. 결국 나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게 돌아가신 그 분의 인생을 값지게 만드는 거다. 할머니의 레시피는 엄마의 입맛을 따라 나에게 내려왔고,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레시피엔 외할머니의 손맛이 들어 있다. 외할머니는 레시피 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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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고기보다 생선과 채소를 더 좋아하셨다. 명절에 외갓집에 가면 갈비에 고깃국, 진수성찬도 그런 진수성찬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소박한 상을 따로 차리셨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는 잘 드시질 조기나 고등어, 청국장, 된장, 콩류를 많이 드셨다.


지금으로 따지면 페스코 채식이라고 해야할까?

엄마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레시피는 뒷마당에서 갓베어낸 부추를 고등어보다 더 많이, 푸짐하게 넣어 조려내는 것이었다.

 

無설탕 양념장 - 고춧가루 2큰술, 다진마늘 2큰술, 국간장 1큰술, 양조간장 1큰술, 소주 1큰술, 후추 1/2작은술, 생강가루 1/4작은술, 물 100ml


무 200g, 당근 100g 을 1cm 두께로 썰어 밑바닥에 깔고 여기에 양념장을 2/3정도 부은 다음 부추 100g을 올린다. 10분 정도 중불에서 조린다음 무김치 200g, 냉동고등어 250g을 얹고 여기에 남은 양념장을 뿌린다. 10분 정도 중불에서 조리다가 마지막에 부추 100g를 넣고 10분 정도 약불에서 은근히 조려주면 외할머니표 고등어조림 완성.



부추가 고등어를 만났을 때. 고등어의 비린내를 싹 다 잡아낸 부추는 향긋함만 남겼다. 부추의 쫀득쫀득한 식감은 친정어머니 말대로다. 보통의 고등어조림이 비린내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이건 '백설기 고등어조림'이라고 해야할까?


고등어 비린내가 1도 없으면서 육질은 쫀쫀, 촉촉하다. 소주, 후추, 생강가루가 비린맛을 날려주지만 역시 부추를 푸짐하게 넣은 염옥례 여사님의 레시피는 따라잡을 수 없다.


당뇨약을 드시던 외할머니를 위해 양념장은 나의 레시피대로 無설탕으로 만들어봤다. (1큰술 넣은 소주도 무설탕 제로소주다.) 당근을 많이 넣어서 단맛은 충분하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잡숫고 싶은 거 다 해드리고 싶은데. 그래도 평소엔 별거 없이 드시다가 별미로 드시던 고등어조림을 올려본다.


생전 요양원에 계실 때 찾아뵙지 못한 죄송스러움을 고등어조림 한 그릇에 담아본다. 나에겐 그리움이 채워지는 음식, 엄마에겐 추억이 되는 음식, 외할머니에겐 영혼이 배부른 음식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빚어낸 어머니가 있었고, 또 우리 어머니를 빚어낸 외할머니가 있었다.

 

이 한 그릇은 결국 외할머니, 염옥례 여사가 빚어낸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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