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채식은 싫다며 '비건'의 '비'자도 꺼내지 말라던 남편에게 말했다. 평소 1일 1채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남편의 휴일엔 남편에게 외식선택권이 주어진다. 그날은 당연히 나의 1일 1채식이 지켜질리 없다. 평소 고기없는 집밥에 복수라도 하듯 자신이 좋아하는 육식으로 하루를 채우는 남편. 하지만 나는 남편의 휴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나는 동물만도 못 한 건가?
세상에 동물권만 있고 자신의 자유권은 없는거냐며 투덜거리는 육식지향 남편. 페스코 채식으로 차려지는 집밥에서 벗어나 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는 단 하루.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비건은 싫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육식지향 VS 채식지향
육식지향 남편과 채식지향 아내가 함께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나의 최종목표는 남편을 채식지향인으로 만드는 것. 고집쎈 남편이 순순히 들어 줄리 없었고 우리는 그때마다 사소한 먹거리를 가지고 투닥거리기 일수였다.
햄, 치즈, 육가공품을 좋아하는 남편의 최애 메뉴는 부대찌개와 페페로니 피자다. 물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다. 느끼하면서 특유의 비린내가 남는 치즈와 육고기, 유제품들은 입에도 대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건 댕댕이였다.
길가에 지나가는 귀여운 댕댕이만 봐도 그냥 못 지나치는 남편. 헌데 남편은 동물권이나 채식에는 영 관심이 없다. 나도 동물권 때문이라기 보다는 채식지향적인 입맛 때문에 채식을 하는 경우지만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헌데 남편은 댕댕이만 좋아한다. 그래서 그와 채식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뭐 한 가지라도 마음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부부 사이에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내가 그의 앞에서 '비건'의 '비'자도 안 꺼내는 이유다.
파블로프의 강아지
남편을 조르고 졸라 채식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 안국역에서 내려 중간중간 맛집들을 지나칠 때마다 나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테이크 9900원', '생맥주 3900원' 나는 한 고깃집 앞에서 5분 이상을 두리번 거리며 아쉬운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그런데 현관문에 비친 나의 얼굴표정이 가관이었다. 거의 울상을 하고선 입맛을 짭짭 다시는가하면 손가락으로 고깃집 가격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으악! 이게 뭔 일이지?' 나의 적은 남편이 아닌 나였던가? 남편의 휴일마다 고기 냄새를 맡아 온 나로서도 입안에 맴도는 기름진 맛이 자꾸 떠올랐다.
1일 1채식을 방해하는 건 남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못 이기는 척 남편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그때마다 한점씩 집어먹던 고기의 맛은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종소리가 나면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강아지처럼 남편의 휴일만 되면 극렬한 반대 없이 스리슬적 고기를 찾았던 댕댕이는 내가 아니었던가?
남편은 스테이크를 9900원에 판다는 한 레스토랑 앞에서 침 흘리고 있는 댕댕이를 잡아 비건 레스토랑으로 인도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채식과 소신, 신념 등을 운운했던 채식지향인은 정말 댕댕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매실 버섯탕수, 비건 떡볶이
표고버섯이 쫀득쫀득 씹히는 버섯탕수는 새콤한 매실소스를 입었지만 바삭바삭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남편은 별 감흥이 없었는지 한 입 먹자마자 젓가락을 내려놓았지만 나는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버섯의 향과 꼬들한 식감을 어떻게 살린걸까? 말린 표고를 얼마나 불려야 이런 식감이 나오는 거지?'
아까 전까지 고깃집 앞에서 두리번 거리던 채식지향인은 버섯의 풍미에 감탄하고 있었다. 비건 떡볶이도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맛을 냈는지 매콤한 끝맛이 계속 입맛 당기게 만들었다. 당연히 떡볶이에 들어간 어묵은 곤약과 콩으로 만들어진 비건 어묵이었다. 비린맛 하나 없이 깔끔한 식감은 내 입맛을 사로 잡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외국인들 뿐. 우리나라에 여행와서까지 비건식단을 고집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건가? 나라면 여행갔을 때도 비건식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여행이라는 핑계로 금단의 경계를 넘어서 마구마구 육식을 하지 않았을까?
고상하고 우아하게 채식짜장면과 비건만두를 먹고 있는 외국인들에게서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비건인의 포스가 느껴졌다. 초탈한 수도승 같은 포스들. 나는 진짜 고기 없이 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자기중심적인 정의로움의 기준
"꼬르륵~"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의 배는 절규를 외쳤다. 채식이 입에 안 맞았는지 떡볶이도 몇 점 먹지 못 한 남편은 심술난 표정으로 입을 한껏 내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먹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쓰고 나만 배부르게 먹고 왔던 것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체 채식을 강요당한 남편. 내가 남편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남편의 꼬르륵 소리가 더욱 처절하게 뱃 속 자유를 외치는 듯 했다. 입안과 뱃 속을 내가 원하는 음식으로 채울 권리.
나는 남편의 권리를 무시하고 채식을 강요하고 있었다. 가끔은 비건인, 어쩔 땐 채식지향이라는 선택에 따라 외식 메뉴부터 배려가 없다며 남편에게 나의 권리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떠들어댔다. 카페에서 비건인들을 위한 두유, 오트밀크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기분나빠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선택과 취향을 존중받기 원하면서 왜 남편에겐 나의 취향을 강요해왔던 걸까? 뭐가 정의롭고 뭐가 자유로운 걸까? 내 기준에 의해서 판단한 '정의로움=채식'이란 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건 과연 정의로운 걸까? 이것조차도 또 다른 강압과 폭력이 아닐까?
나는 왜 채식을 지향하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의 끝에 다다랐다. 우리 모두 이해받고 존중받길 원한다. 지구도, 동물들도, 이 세상 모든 건 소중해서 존중받아야한다. 당신의 의견도 그렇다. 나만이 소중하고 나만 정의로운 게 아니란 것. 강요된 채식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나 스스로도 못 지킬 채식을 남편에게 강요하며 그 안에 담긴 중요한 의미들을 퇴색시켰다.
1일 1채식의 적은 결국 나였다.
남편이 제안한 7일의 채식
"그래도 채식은 늘려가고 싶어. 극단적인 게 싫은 거지 나도 채소는 좋아해." 40이 넘은 남편은 요즘들어 더욱 건강에 신경쓴다. 본인이 좋아하는 육식은 줄이고 채식을 늘려가면서 유연성 있는 채식을 해보겠다고 했다.
일주일이 7일인 이유는 뭘까? 아마 7가지 채식을 골고루 해보라는 뜻이 아닐까? 남편의 의견이지만 하루하루플렉시플부터 비건까지 다양한 채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물론 나는 1일 1채식을 비건으로 유지하되 남편과의 식사는 유연한 채식으로 먹기로 했다. 하지만 아마유제품과 계란은 먹지 않을 것 같다.
남편이 쉬는 날은 플렉시테리언으로 원하는 걸 모두 먹게 해주기, 그 다음날은 폴로, 그 다음날은 페스코, 락토오보 등 규칙적이면서도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거에 남편도 찬성했다. 다만 내가 남편에게 채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도 치즈나 햄, 고기류를 나에게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페스코의 날에도 '회'는 먹지 않기로 했고, 동물성 식품의 비율은 식사 총량의 30%, 나머지는 두부나 콩류, 풍성한 채식과 과일로 채우기로 했다. 건강을 위해서 싫어하는 식재료가 있더라도 조금씩은 골고루 먹기로했다.
내가 뭐라고 나만의 기준과 잣대로 정의로움을 논했을까? 또 그걸 왜 남편에게 강요했던 것인가? 나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은 또다시 나를 짓누르는 폭력이 되었다. 채식에 담긴 의미를 조용히 생각해본다.
후원은 저희 남편이 비건 어묵을 사먹는데 큰 힘이 됩니다 ♥
남편은 어묵탕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집에선 한번도 해준 적이 없다. 내가 어묵을 좋아하지 않는 탓이다. 비릿한 내음과 기름진 느끼함, 전분의 찐득한 식감은 내가 모두 싫어하는 맛들이다. 뭐든 함께 싫어하고 좋아하면 아무 문제 없을텐데.
비건 레스토랑에서도 남편은 떡볶이 속 어묵이 몇 점 없었다며 돌아오는 내내 아쉬워했다. 그리고 남편이 든든히 먹지 못 한게 나도 속이 상했다. 그래서 비건 어묵탕을 해주기로 했다. 곤약과 콩으로 만든 비건 어묵은 비린내도 없을 뿐더러 탱글한 식감에 칼로리도 낮아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인터넷으로 비건 어묵을 주문한 다음 육수는 내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멸치나 동물성 재료 없이 다시마와 베트남고추를 프라이팬에 한번 구워낸 뒤 무, 표고버섯, 대파를 넣고 채수를 푹 우려냈다. 국물이 잘 우러나면 다시마와 고추를 건져내고 비건 어묵을 넣으면 끝.
생각보다 쉽고 간단한 비건 어묵탕은 남편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비건이라고 얘기 안 하면 모르겠어. 나도 이 식감이 맘에 들어." 남편은 후르륵 국물을 떠먹다가 탱글탱글한 어묵을 맛있게 씹어 먹었다. 이렇게 어묵탕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그동안 한번도 안 해줬을까?
채식을 강요할 때도 이렇게 비건 어묵탕을 맛있게 끓여준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 속에 좋아하는 음식 한 번 넣어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어묵탕이 싫어'했'던 어묵탕으로 변해버렸다. 나도 이제 어묵탕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