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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Aug 02. 2023

비건이 어려운 이유

이 죽일 놈의 믹스커피

커피 한 모금 마실래?


난 그 커피를 마시지 말았어야했다. 몇 주 전 남편과 강릉으로 여행갈 일이 생겼다. 양양에 있는 막국수 집에 들러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남편이 계산대 옆에 있던 커피 믹스 하나를 뽑아 물을 붓고 있었다. 집밥은 내맘대로, 남편과의 외식은 그의 말을 따라 주는 것에 동의한 나는 무심코 남편이 내민 믹스커피 한 모금을 마시게 됐다.


식물성이니까 괜찮겠지?


종이컵을 건네 받으면서 믹스커피의 성분들이 얼핏 머리 속을 지나갔다. 커피, 설탕, 식물성경화유. 확실히 생각나는 건 이 3가지 뿐이라 중요성분은 모두 식물성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먹는 건데.'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강렬한 맛이 잊혀지지 않았다. 남편도 믹스 커피가 먹고 싶다는 말에 한 박스를 주문했고 혼자 있을 때, 심심할 때, 글을 쓰고 싶을 때 몇 번이나 타 마셨다. 그런데 우연히 성분을 확인해본 순간...난 타락한 녀자가 됐다.


홀린 듯이 구매한 믹스커피 / 성분 끝부분에 우유함유라고 써있는 걸...나중에서야 보게 됐다.


십년 전 쯤? 믹스커피에 들어간 카제인이 합성 카제인이냐? 우유 카제인이냐?를 가지고 믹스커피 업계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땐 우유 카제인이 아니면 소비자로서 손해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당연 우유 들어간 게 좋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채식을 결심하고 부터는 이 '우유 함유'라는 글자가 너무 미워졌다.



악마의 유혹


광고에서 그랬던가?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원두커피, 더치커피, 내가 사랑했던 카푸치노 등등 다른 커피를 그냥 악마라고 한다면 이 믹스 커피는 정말 악랄하기 그지 없는 사탄 중의 사탄이다. 식을 결심하고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만이라도 꼭 '비건'으로 생활하고 싶었는데 그게 이 믹스커피 하나만으로 무너져버렸다.


중독적인 맛 하나만으로 악마라 불릴만 하지만 성분을 본다면 더 악마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한번에 먹기엔 많은 양의 설탕이 들어있고, 동맥경화를 유발시킬 수 있는 식물성경화유지(식물성이라해도 고체화되는 공정을 거쳐서 동물성지방과 똑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가 함께 들어있다.


이런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 다닐 때도 가끔 먹으려 애썼고, 심지어는 1/2칼로리 프리마와 스테비아를 싸갖고 다니며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했다. 퇴사 후 1일 1채식(비건)을 결심하면서 커피는 왠만하면 블랙으로, 라떼가 먹고 싶으면 오트밀크나 아몬드브리즈를 넣어 마셨다. 달달한 믹스 커피가 당길 때는 바나나맛 두유에 커피를 섞어 마셨다. 나름 바닐라향도 나고 괜찮은 맛이었다.


커피샵에서도 유리빨때를 꼭 싸가지고 가서 블랙 아니면 더치, 라떼를 먹을 땐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두유나 오트밀크로 마셨다. 그런데 이제는 헛짓거리가 됐다. 그럼에도 자꾸 생각나는 중독적인 맛. 악마의 믹스커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것부터 생각난다.




남편이 빌런이오?


내가 끊으려고 노력했던 맛, 회사 다닐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그날 양양에서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맛 본 순간부터 난 타락했다. 집에 와서도 그 맛이 생각났고 잊혀지지 않았다. 오랫만에 맛 본 설탕과 프림의 강렬한 조화, 씁쓸하고 묵직한 인스턴트 커피의 향기는 예전보다 더 강렬하게 돌아왔다.


남편이 열어 준 지옥의 문. 악마의 믹스커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편3끼가 일부러 그랬을까? 항상 나의 채식을 못 마땅하게 여기며 비건을 극혐하던 남편3끼. 사랑하니까 죽을 때도 함께 하자며 그러려면 나이 어린 내가 평균 수명을 줄여야 한다며 마요네즈와 술, 온갖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스리슬쩍 권하던 남편3끼.


우유, 치즈, 유제품을 좋아하는 당신이 나에게 빌런인건가? 채식지향인과 육식지향인이 한 가정 안에서도 이렇게 순탄치 못 한데 사회에서 매순간 고비를 맞는 비건인들은 어떨까? 내 앞길도 막막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우유'라는 두 글자가 싫어졌다.


예전엔 맛없는 흰우유를 억지로 먹어야해서. 또 다 먹고도 입안에 남는 비릿한 맛이 싫어서. 지금은 어렴풋이 동물을 착취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5000만이 먹고도 남아 돌고 있는 우유를 생산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젖소들이 있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젖소들이 정말 5000만 마리는 되는 걸까?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특히나 우유를 생산하려면 암컷이어야 하는데 거기다 우유를 생산하는 기간은 송아지를 낳았을 때만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송아지를 낳은 암컷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 사육 두 수가 많지 않음에도 많은 우유가 생산되는 거라면 정말 호르몬제와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365일 24시간 우유만 짜내게 만드는 걸까?


물론 나의 뇌피셜이지만 의혹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사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살아계실 때까지 목장을 꽤 크게 운영하셨다. 60년대 이야기지만 외삼촌들은 젖소 똥을 치우느냐고 매일 고생을 하셨고 부리는 일꾼들도 많았다는 소리를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었다.


어릴 적 외갓집에 놀러갔을 땐 젖소들에게 항생제를 놓고, 우유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암컷들의 유방이 커지게 하는 호르몬제도 놓고 그랬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60년대 이야기고, 어릴 적에 전해들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그때의 기분탓일까? 우유에서 느껴지는 비릿함은 아직도 기분이 썩 좋진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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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오히려 우유나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불교신자로 열심히 절을 다니신 것도 아마 소에 대한 미안함이 크셔서 그랬던 걸까? 본인 밥상에는 고기도 잘 올리지 않으시고 왠만하면 채식으로, 가끔 생선을 드시는 정도로 식사를 하셨다. 미나리, 당근, 오이, 무, 다양한 채소가 동동 띄워져 있는 외할머니 물김치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두부도 손수 만들어 드시고 감주도 직접 담그셨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다. 외할머니의 건강한 식사는 어머니를 이어 나에게까지 이어져 온 것 같다.




사탄아 물렀거라!

악마의 커피를 이길 할매니얼의 맛, 엔젤위너스(angel winners) 비건 아이스쌍화라떼


요즘엔 약과, 팥빙수 등 할매푸드의 인기가 뜨겁다는데 겨울에 사놓고 먹지 않은 쌍화차가 잔뜩 쌓여 있어 시원하게라도 먹어 볼까? 하다가 만들게 됐다. 쌍화차 1봉과 뜨거운물 2큰술을 넣어 잘 녹인다음 오트밀크 100ml를 넣고 잘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얼음 동동 띄우면 비건 아이스쌍화라떼 끝!


쌍화차의 찐한 맛이 오트에서 올라오는 약간의 잡곡맛(?)을 눌러 준다. 달달함이 믹스커피 못지 않고 이렇게 먹으면 오히려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쌍화차에 들어있는 견과류 맛과 오트밀크의 맛이 정말 잘 어울린다. 커피믹스는 한포에 50kcal, 쌍화차는 60kcal지만 동맥경화 위험이 있는 식물성경화유지 대신 몸에 좋은 견과류로 고소함을 채울 수 있다. 비건으로 만들어진 달달한 아이스쌍화라떼! 이걸로 악마의 맛을 이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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