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담아두고 싶은 말
너는 이제 시작이야
겨울이라는 차가운 계절은 냉장고를 몸소 경험하게 만든다. 실제로 김치냉장고 속 온도는 섭씨 3~4도. 바깥 기온이 그 이하로 떨어지면 정말로 야외에서 냉장고 속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일기예보에서 들려오는 냉장고 날씨는 허튼 말이 아니다.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은 냉장실도 아닌 냉동실을 맞닥뜨린다. 얼마전까지 내 마음도 꽝꽝 얼어붙으면서 바깥에서 경험한 냉장고 날씨가 마음까지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T'의 기분이 이런거였던가? MBTI의 F와 T를 외줄타기처럼 넘나들었던 나는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대문자 T를 만끽한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도 차갑게 식혀간다. 그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보존해야 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라는 말. 끝이 아닌 시작을 마음 속 냉장고에 넣어 놓는건 언제나 시작한다는 마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가능성과 인내심, 변치 않는 초심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연말은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초심을 다잡기 좋은 시간이다. 브런치 2년, 유투브 2년. 유투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년 정도 됐다. 여러 SNS를 연동지어서 함께 운영한 건 6개월 정도? 공을 들이는 만큼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조바심만 쌓여갔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쌓여갈 수록 흰 눈이 쌓여 가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허무함과 공허함, 무력감이 쌓여갔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은 어쩌면 허무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희망고문 같은 흰 눈. 결국엔 녹아서 물이 되고 마는 아름다운 눈. 내가 기대했던 희망은 결국 마음의 고문이 되어 눈물로 사라진다. 난 우울감 속에 머리를 차갑게 식히면서 눈이 펑펑 내리는 마음 속 냉동실에 초심을 넣어 둔다.
"넌 이제 시작이야."
내년이면 서른아홉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성에게 '시작'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꺼낼 사람은 누구인가? 넌 항상 시작이라고 새로운 마음을 다잡게 해주며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 어머니.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이뤘어야 할 나이의 자식에게 진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응원해주는 건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남편도 힘들 땐 쉬엄쉬엄, 차근차근 걸으라한다. 멀리 가야하는 여정 속에서 처음부터 힘을 빼지 말라면서. 눈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나의 두 손과 두 발은 언제나 따뜻하다. 남편은 나에게 털장갑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도 키보드를 타닥거릴 힘이 남아있나? 싶기도 하다.
눈길에서 미끄러져도 역정을 다해 화를 내지 않는 건 내가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주춤해도 실망하지 않는 건 항상 시작이라는 믿음 덕분이다. 진심을 담은 가족들의 응원은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희망이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시작만 할 수 있을까? 부모님들은 나이가 들어 점점 쇠약해지시는데. 시작에서 시작만으로 끝이 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또 조바심이 나지만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나는 항상 어머니 앞에서 영원히 걸음마를 떼는 아가이기 때문에다.
넘어져도, 걷기만 해도, 천천히 쉬었다 걸어도. 나의 걸음마는 가족들에게 항상 응원할꺼리(?)가 된다. 어릴 적 나의 걸음마를 응원해주던 어머니. 지금도 언제나, 나의 걸음마를 응원해주신다. 시작에서 시작만으로 끝이 나도 눈길 위에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작은 발자국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심어 놓은 씨앗일지 모른다. 언제 꽃피울지 모르겠지만, 설사 꽃을 피우지 못 한데도 씨앗으로 남아도 행복하다. 천년동안 씨앗으로 남아 있던 연꽃이 천 년 뒤에 꽃을 피운 것처럼 씨앗은 무덤 속에서도 꽃을 피우니까.
씨앗을 보면 머릿 속엔 항상 물음표가 떠오른다. 작은 알맹이 속에 품고 있는 물음표만으로도 씨앗은 고귀한 존재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 심어진 씨앗일지 모른다.
"너는 이제 시작이야."
시작, 언제나 시작. 누가 뭐래도 나는 시작.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가족들 덕분이다. 그래서 마음 속 냉장고엔 항상 '시작'이라는 말을 넣어 놓는다. 언제나 싱싱하게 간직하고 싶어서. 이런 마음을 채우다 보면 신선함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 가족, 건강, 행복, 엄마.
마음 속 냉장고에서 행복을 꺼내다가 구독자 분들의 마음을 꽉곽 채우고 싶다. 엄마가 있고,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건강과 행복이 있는 음식.
나의 레시피로 구독자 분들의 마음을 잘 먹여 살리고 있는가? 레시피를 봐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잘 채우고 있는가? 항상 의문이다.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부족한 게 많다. 그래도 관심있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 뿐이다.
내년에는 마음 속 큰 가마솥에 더 맛있고 건강한 밥을 지어서 구독자 분들의 밥공기에 꾹꾹 눌러담고 싶다.
2023년의 작은 발자국 (이하는 자화자찬의 내용이 이어지니 보지마세요. 저만 볼거라 흰색으로 처리합니다. 혹시 보이더라도 비밀로 해주세요.)
1. 하남시 보건센터에서 제안을 주셔서 비건 레시피를 제공했다.
2. 덕분에 요리연구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3. 주부라는 애매한 타이틀에 요리연구가라는 경력을 붙여주신게 너무 감사하다.
4. 공공기관에서 맡겨주신 책임감(?)이 주어지니 내 스스로 역량을 쏟아 부으며 한층 업그레이드 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5. 원고와 사진에 최선을 다했고 기존보다 조금 더 나아진 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 (사진촬영의 기술과 경험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었다.)
6. 덕분에 유투브 영상 촬영 기술도 좋아졌다. (구도나 조명, 디테일한 촬영각잡기 등)
7. 썸네일도 함께 좋아졌고, 영상 퀄리티와 내용, 디테일 등에서도 발전한 부분이 있다.
8. 유투브 구독자 수가 500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9. 브런치 푸드분야 크리에이터가 됐다.
10. 구독자 분들이 800명이 넘었다.
11. 브런치에서 내가 쓰고 싶었던 내용으로 전자책을 3권이나 발간했다.
12.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홈이 개설됐다.
13. 구독, 좋아요, 응원의 메세지를 받을 때마다 기운이 난다.
14. 의사, 간호사, 다른 영양사님들이 같은 의료 보건인으로서 마음을 나누며 어려운 고충을 나눌 때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감사한 분들이다.
15. 결혼식을 올렸다. 전통혼례로 가성비있게 잘 치뤘다. 알아보느라 발품팔고, 가심비면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내 스스로가 기특했다.
2014년 할일
1. 일주일에 책 한 권씩 읽기 (독서감상문 작성, 책을 내고 싶으면 그만큼 독서량도 많아야한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2. 외국어 하나는 하기 / 일본어, 토익, 한자검정시험으로 객관적인 점수따기
3.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 따기
4. 브런치에서 기획하고 있는 전자책 열심히 발간하기 (비건레시피, 저염저당, 영양사)
5. 일주일에 3번씩 꼭 운동하기
6. 부모님께 전화 더 자주드리기 (시부모님 포함)
7.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연락하기. 결혼식 와주신 분들 감사인사 전하기
8. 유리빨대, 텀블러 꾸준히 쓰기
9. 문화회관 다니기 - 방송댄스, 민화그리기, 스포츠클라이밍
10. 자산 늘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