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첫소개팅에서 인사를 하자마자 들은 말이 '급식사' 다. '영양사'도 아니고 '급식사'라니! "급식업계로 취업하실 건가봐요." 와 같은 인삿말도 아니었고 그저 "급식사!" 라는 외마디 말 뿐이었다.
'식품영양학과'라는 소개를 받으면 아무래도 '급식'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외에도 다른 학과 학생들은 "요리 잘 하시겠네요." 와 같은 틀에 박힌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학교에는 조리학과도 있었는데 '식품영양학'과 '조리학'을 구분 못 하는 똥멍청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웃고 지나갔다.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식품영양학은 식품과 인체 내영양소 대사에 관한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과학적인 학문이다. 나는 요즘 이런 관점을 '어떻게하면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란 과제에 응용하고 있다.
조미료, 설탕, 소금을 쓰지 않고 어떻게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지에 대한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고민을 주방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관한 글은 길어 질 것 같아서 나중에 더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숨막히는 진로상담 시간
우리학교는 2학년 때부터 담당 교수님과의 진로상담시간이 주어졌다. 4명 정도가 학번순으로 조를 짜서 담당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가는데 거의 정적으로 시작해 정적으로 끝나는 숨막히는 시간이었다.
"각자 진로에 대해 생각해본 게 있을까?" 교수님께서 물으시는 주제는 우리들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과도 같았다. 이때는 거의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는 학생들이 많아서 '영양교사'에 대한 수요도 굉장히 많았을 때였다.
나도 그런 학생들 중 한명이었다. 부모님이 바라시는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에 아무생각 없이 떠밀려 가듯 동조하던 때였다.
영양교사는 쉽겠니?
맹목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바라는 대부분의 학생을 보면서 교수님은 안타까워하셨다. 마치 학령인구 감소로 '교사'의 수요가 줄어들 것을 예측이라도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하셨다.
'교직이수'를 받으려면 엄청난 성적과 그만한 시간투자, 그리고 TO가 날지 안 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살아야 하고, 교사로 임용된다 하더라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실습 나갔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주일만에 원형탈모가 생기고, 누구는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가 무슨무슨 말을 들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급식을 피하고 싶어서
'영양교사'가 아니더라도 급식실에서 일하는 '영양사' 선생님들의 처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3D 업종이나 다름 없었다. 메뉴 구성에 식단 짜는 것부터 골치가 아파오는데 한 끼 원가를 1400원 이하에 맞춰야 한다니?
단체급식이라는 과목에서 실습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식판에 나오는 식사 한 끼를 1400원 이하에 맞추라는 엄청난 미션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도 많이 책정된 거라며 누군가 옆에서 수근거리며 지나갔다.
아마 물가 폭등이 심한 지금 상황에서는 원가 맞추기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조리실에서 근무하시는 조리사 선생님들의 일도 거들면서 조리 업무도 함께 해야한다.
단체급식은 3D 업종
덥고, 춥고, 팔이 아프고, 근육통에 온몸으로 고생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받아야한다. (이제서야 겸업이 금지 됐다곤 하는데 몇 백인분의 식사를 시간 내에 준비해야하는 업무 특성상 실효성이 과연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한다.)
조리실도 그나마 괜찮은 환경이면 다행인데 아직도 열악한 환경이 많다. 내가 현직 기자로 취재했던 대기업이나 B2B 구내식당 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열악한 곳은 환기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조리사 선생님들은 물론 같이 일해야하는 영양사 선생님들의 건강마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리사 선생님들의 리스크는 곧 영양사 선생님들의 리스크로 다가온다. 인력, 환경, 위생, 고객만족 등 무한한 책임감을 지고 가는 것이 단체급식 영양사분들의 고충이다.
문화세계의 창조
"단체급식보다는 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게 어떠니? 너희가 나아갈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단다." 급식은 왠만하면 피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왜 그런지 알만했다.
AI에게 이야기 빚는 영양사를 그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려줬다.
'창조'라는 말은 참 거대하면서 웅장한 말 같다. 교수님은 '영양사는 곧 급식' 이라는 틀에 박힌 사회적통념을 깨라고 화두를 던지신 것 같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심어주셨다. AI가 판을 치는 지금, 교수님께선 마치 10여 년 전 미래를 내다보고 계신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배로서도 세계적인 안목과 수준 높은 역량을 몸소 보여주시면서 우리 스스로 실력을 쌓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셨다. 난 복 받은 사람이다.
나를 찾아가는 길
나중에 알았지만 교수님의 시동생 분께선 '누들로드'라는 다큐를 제작하신 KBS 이욱정 PD님이셨다. 그렇기에 제자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말씀과 역량은 더 폭넓고 깊이가 있으셨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과 탐험. 낯선 곳에 길을 내는 개척자 정신은 교수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배우기 어려웠을 거다. 그럼에도 항상 자신 스스로를 '교수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낮춰 부르셨다.
지난 5년 동안 연락을 못 드리다가 올해 스승의 날에 메일을 드렸다. 퇴사 후에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해주시고 관심가져주신 스승님께 너무 면목이 없어서 길고 긴 메일을 드렸다. 5년 간 묵은 이야기를 쓰다보니 너무 내 얘기만 도배를 해놔서 답장 받을 면목도 없다. 죄송할 뿐이다.
영양사는 면허입니다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영양사 법'이 개정되면서 국가에서 지정하는 일정교육기관(대학교)에서 지정과목(인체생리학, 식품학, 영양학, 생애주기영양학, 식사요법, 영양교육 및 실습, 공중보건학, 급식관리, 급식경영, 식품위생법규 등)을 꼭 거쳐야만 면허 시험을 볼 자격이 주워졌다.
실습을 꼭 들어야만 영양사 면허를 딸 수 있는 어마무시한 미션을 법개정이 만들어 주셨따.
오늘도 찌끄리고 갑니다. / 왜 제일 못 나온 증명사지을 썼을까...
출입처에서 만난 사람들
그런데 그런 경험들이 아니었다면 출입처로 받은 여러 관공서나 연구원, 식품회사의 현실을 공감하고 기사로 써내려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식약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식품연구원, 한식진흥원 등 여러 관공서와 연구원, 식품회사, 외식기업, 보건센터엔 꼭 식품영양학과 출신 선생님들이 계셨고 '식품영양학과' 출신 기자에 반가움을 표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AI시대를 사는 영양사
나의 직업은 결국 '이야기 빚는 영양사'가 되었다. AI시대에 영양사는 무엇을 해야할까?
단체급식에서도 식단구성해주는 AI, 잔반체크, 푸드샷으로 칼로리까지 계산해주는 AI가 도래하고 있다. 나는 그럼에도 영양사 선생님들의 업무는 조금 줄어들 지언정 현장에 관리감독자로서 꼭 계셔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백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요리연구가, 콘텐츠제작자,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었따. 사람들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직업일 수록 AI는 도움을 줄 뿐 결국 인간의 몫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AI를 뛰어넘는 문화세계의 창조가 인간의 몫인 것 같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오늘도 좀 찌끄리다 갑니다.
*출간, 강연, 쿠킹클래스, 레시피 개발, 칼럼 연재 등 여러 협업을 제안 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