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맛탄산수 Dec 15. 2019

여행이 끝...났다?

이 여행의 끝을 다시 써보려고 해



"체크 아웃, 플리즈."

    마지막으로 묵은 호스텔 주인에게 빌린 저울을 건네며 말했다. 캐리어는 다행히도 위탁 수화물 최대 무게인 23kg에서 2kg를 밑도는 21kg. 와인 3병과 쨈 9통에 캐리어 한 켠을 내어준 대신 책 5권과 옷 세네벌, 온갖 잡동사니들을 두 개의 쇼핑백에 나눠 담으니 명절에 금의환향하는 취뽀자 마냥 양 손이 묵직하다.


    떠날 짐을 다 싸버리면 여행이 정말 끝나버릴까봐 아침으로 미뤘더니 조식을 먹지 못했다. 우버가 도착했다는 알림에 퍽퍽한 빵 한조각 입에 우겨넣을 새도 없이 계단을 우다다 내려왔다. 조급한 와중에도 마음이 먹먹했다. 그래도 비행기에 오르기전엔 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Your bording time is 12:15"

    에어프랑스 직원이 건조하게 말했다. 비행기 출발이 12시 10분인데 왜 보딩 타임이 12시 15분이지? 이상했지만 당장의 짐이 너무 무거워 한시라도 빨리 출국 수속을 밟고 싶었기에 내 눈앞에 사람보다는 저 멀리의 시간표 전광판을 믿기로 한다. 


    11시 15분에 탑승 게이트를 알려준다던 전광판은 탑승 게이트 대신 비행기 지연 알림을 띄웠다. 전광판은 말이 없다. 지연된 45분만큼 내 좌표는 여전히 리스본이다. 내 시간도 여전히 한국보다 9시간 느리게 흐르고 있다. 한국이라면 1분 늦은 버스에도 무작정 화가 날텐데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You go Haneda?"

    환승 게이트로 가는 길목의 흑인 경찰이 짐짓 도움을 주려는 척 거만하게 물었다. 샤를 드골 공항의 악명은 익히 들었던 터라 환승 게이트 가는 법을 인터넷으로 열 번은 더 확인하고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전광판 정보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움직이던 나다. 


    무시하고 가려는데 하네다,라는 단어가 속을 긁는다. 긁힌 속 사이로 없던 애국심이 피어오른다. 있는 힘껏 비열하게 코웃음을 치며 입으로는 "노! 암 고잉 투 L 게이트", 눈으로는 "인천 몰라 인천?"이라고 쏘아붙였다.


    리스본에서 파리로 넘어오면서 한국과 1시간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파리 땅 위에 있고 4시간의 대기 시간과 10시간의 장거리 비행이 남아있다. 남은 유로를 그러모아 4유로 짜리 베지테리안 요거트나 씹고 있지만, 곳곳에서 아이 어른 할것 없이 한국어가 들려오지만, 나는 아직 이방인이자 여행자다. 내 여행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가씨 거 캐리어 저기에 실어요"

    공항 벤치에 철푸덕 앉아 포르투갈 유심을 한국 유심으로 갈아끼웠다.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마저 한국 패치 완료. 하 젠장 이젠 정말 끝났어. 공항 버스를 확인하니 5분이 남았다. 다음 버스는 30분 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리스본의 어두운 골목에서 길을 잃었을 때보다 더 빠르게 뜀박질을 해 버스를 탔다.  


    시원하게 달리는 공항 버스 차창으로 석양이 진다. 한국에선 해 뜨기 전에 나가서 달이 떠야 돌아가곤 하니까 해외에서 그렇게 일출 일몰에 목을 매게 되는 걸까. 생각보다 예쁜 하늘 색에 감탄하다보니 여행지로 떠나는 버스에 타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 내 여행은 끝나지 않은 걸로 하자. 그렇게 하자.








    비행기 63만원, 숙소 30만원에 78유로 더 냈고, 면세 35만원, 식비 430유로.... 11박 12일 여행 경비 대충 반올림해서 총 270만원. 여행의 끝을 인정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찾아온다. 결산이나 정산 등의 과정에 항상 숫자가 붙어다니는건 숫자 앞에선 어떤 여지도 없이 깔끔한 정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벼운 지갑의 소유자일수록 숫자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이 진지해진다.


    흥청망청 쓴 돈을 노션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나니 쉽사리 끝을 선고하지 못하고 질질 끌던 여행이 드디어 깔끔히 정리된 듯 하다. 구멍난 지갑 사정도 모르고 여행의 감상에 젖어있던 내 모습이 배곯는 자식들을 내버려둔채 밖에서 나만 좋은 예술하는 가난한 예술가 같았다. 


    예술가를 배부르게 하는건 자존심이다. 수많은 부정의 순간을 거쳐 여행의 끝을 인정한 이유가 5자리를 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생활비 잔고를 보고 정신을 번쩍 차렸기 때문이라면, 조금 많이 서글프니까, 나는 나만의 논리로 다시 여행의 연장을 선고한다. 예술가라면 이정도 고집은 다들 있지 않나. 


    너무 빡빡하지도 너무 성기지도 않았던, 포르투갈에서의 11박을 글로 온전히 담아내는 그때까지만 여전히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아보기로 하자. 이 여행의 끝을 다시 쓰는 그 순간 딱 그 순간까지만. 그때쯤이면 텅 빈 잔고도 다시 차오르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