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여야만 해 슬픈 엔딩이라도

by 자몽맛탄산수

앞에 나서는걸 좋아하진 않는다.

과장하고 꾸미고 척 하는걸 잘 못한다.

그러면서도 나란 사람의 가치가 자연히 알려지길 바랐다.

언젠가는 세상의 주인공이 될거야, 은근히 기대했다.


그 기대가 산산조각나기 시작한건 아마도 본격적으로 취준에 뛰어든 2016년 봄일거다.

까만 옷을 입고 일렬로 앉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말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것인 줄 알았던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나에겐 특별한 것이 누군가에겐 지극히 식상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내가 하는 행동

내 머릿속 생각

내 마음속 감정


혼자 쌓아올린 나만의 세계가 차갑고 낯선 세상의 잣대에 쉬이 맞을리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의미 있지 못 할 수 있다는걸 깨달은 순간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결국 세상에 작은 빛 하나 밝히지도 못한 채 스러질 것만 같았다.



흘러흘러 자리를 잡은 지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

아니야, 안돼, 틀렸어, 생각을 깎아내리는 말들

세상은 절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체념하는 순간들의 반복속에서

나는 더이상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춘향이가 아니라 향단이일지도,

향단이가 아니라 스쳐가는 행인일지도,

스쳐가는 행인이 아니라 춘향이가 타고다던 이름모를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2시간짜리 장편 영화에 겨우 1초 등장하는 단역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기.

이렇게 어른의 조각을 또 하나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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