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 땐 더운 나라로,
코타키나발루(2)

귀 얇은 관광객 모드: 선데이 마켓, 블루모스크, 웰컴씨푸드, 워터프론트

by 자몽맛탄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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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공짜는 반가운 법


마지막까지 완벽해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설렘은 그 자체로 에너지가 된다. 새벽 서너 시가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고, 그마저도 창밖으로 비치는 공사장 불빛에 내내 뒤척였지만 생각보다 상쾌하게 일어났다. 우리의 다음 숙소는 샹그릴라 탄중아루라는 리조트 호텔이었다. 정식 체크인은 오후였지만 가벼운 관광을 위해 오전에 미리 짐을 맡겨두기로 했다. 운 좋게도 Aeropod은 샹그릴라 탄중아루를 지나가는 무료 셔틀을 운행하고 있어 삼천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다. 고작 둘 뿐인 승객을 친절하게 데려다준 기사 아저씨 덕분에 마지막 인상까지 훈훈했던 Aeropod. 다음에 또 코타키나발루에 오게 된다면 다시 묵을 의향 200%.




옷, 과일, 액세서리, 악기 등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다


일요일에만 열리는 장터, 선데이 마켓

새로운 숙소에 캐리어를 맡겨두고 한결 가벼운 몸이 되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선데이 마켓. 한국의 5일장과 같은 로컬 시장이다. 이번 그랩 기사님은 운전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탑승할 때 Hi와 내릴 때 Bye가 끝. 한국에서야 당연히 과묵한 기사님을 선호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는 하나라도 정보를 더 알려주려는 적극적인 드라이버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어젯밤의 터보를 즐겨 듣던 드라이버처럼 대놓고 영업하는 건 또 좀 그렇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혼자 되묻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선데이 마켓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볼게 많지 않았다. 먹을게 많지도 않고, 살게 많지도 않고, 사람은 많고, 거리 길이에 비해 마켓의 종류가 단조롭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떠들썩한 로컬 시장을 기대하지는 말자. 그저 가볍게 여행의 흥취를 돋우고 워밍업 하긴 괜찮은 장소다.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두 개의 길에 상점이 줄줄이 서있고, 한쪽 길로 쭉 걸어갔다가 마켓이 끝나는 지점에서 코너를 돌아 반대편 길로 돌아오면 마켓 클리어 완료. 하지만 1/3 정도부터 시장 끝까지 계속 같은 상점이 반복되기 때문에 굳이 끝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 우리가 산 건 과일 주스 두 개와 친구의 막연한 두려움을 깨기 위해 산 두리안, 기념 자석 서너 개 정도. 딱히 살게 없다면 방문 자체를 스킵해도 무방하다는, 잡다구리 한 쇼핑을 즐기지 않는 자의 개인적인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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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맛 나는 라임, 따뜻한 오이


독특한 로컬의 맛

선데이 마켓의 끝과 끝을 왕복하니 등 뒤가 땀으로 흥건했다. 마켓 초입에서 먹은 과일 주스가 제 몫을 다 하고 땀으로 날아가버린 게 분명했다. 배가 고팠다.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가게를 찾을 때 "그래서 가까워?" 하고 묻는 경우가 많아진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로컬 식당인 유잇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판에서부터 오랜 역사의 포스가 느껴지는 유잇청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시장통 한복판 같은 가게 안에서 주인아저씨가 테이블을 이리저리 오가며 분주하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유잇청의 주 메뉴는 카야토스트와 비프 국수, 그리고 꼬치구이인데 우리가 갔을 때 (약 12시 반) 카야토스트는 이미 품절이었다. 비프 국수는 오이가 들어가서인지 따뜻한데 시원한 맛(맛있다고는 못하겠다), 꼬치는 비프/치킨/내장(?) 중에 비프가 제일 맛있는데 크기가 정말 한입거리다. 이자카야에서 파는 꼬치보다 더 작다. 한 사람당 최소 5개는 먹어야 간에 기별이 갈 정도. 꼬치를 찍어먹는 땅콩 소스는 꽤 괜찮았다. 기대했던 라임 주스는 신 맛보다는 짠맛이 강해 많이 마시지 못했다. 역시 로컬 푸드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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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주꾸룽과 투둥... 참 더웠다.


진짜 로컬이 되어보자

다음 목적지는 코타키나발루의 대표 사원인 블루 모스크. 구글 맵에는 블루 모스크가 아닌 KK mosque 혹은 코타키나발루 시립 모스크라고 검색해야 주소를 찾을 수 있다. 블루모스크 자체도 아름답지만 이 곳의 가장 큰 재미는 말레이시아 전통 의상인 바주 꾸룽(원피스형 옷)과 투둥(머리에 쓰는 히잡)을 입어볼 수 있다는 것. 전통 의상은 매표소 안에서 이용권을 구매해 빌릴 수 있다. 패턴이 들어간 바주꾸룽은 원색 바주꾸룽보다 살짝 비싸다. 개인적으론 원색 바주꾸룽이 깔끔하고 예뻤다.

거리 곳곳에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바주꾸룽과 히잡을 입고 나니 매우 더웠다. 당연히 시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스스로가 웃겼다. 펄럭이는 바주 꾸룽 안에 가득 찬 더운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지만 여차저차 인생 샷 남기기 미션은 성공. 덧) 투둥을 써보면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얼마나 예쁜 얼굴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막힌 더위를 해소하기 위해 모스크 안에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우연히 코카콜라 바닐라 맛을 발견했다. 가고시마의 피치 콜라에 이은 새로운 콜라! 첫맛은 콜라인데 끝에 살짝 바닐라 향이 맴돈다. 콜라를 마시고 바닐라맛 츄파츕스를 오물거리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 맛은 괜찮은데, 너무 달아서 혼자 한 캔을 다 마시기는 버거웠다. 그래도 말레이시아에 간 기념으로 꼭 한번 마셔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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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의상을 체험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이용권을 끊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올 필요는 없다. 모스크를 둘러싼 울타리가 매우 낮기 때문에 모스크 밖에서도 충분히 감상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기왕 전통의상을 입은 우리는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다. 모스크 내부는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넓은 라운지와,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기도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 공간에서 신학을 공부하거나 합숙도 하는 듯하다.

제일 왼쪽 사진에서 바닥에 질질 끌리는 히잡을 볼 수 있는데, 키가 160 정도인 나에게 히잡은 꽤 길었다. 걷기도 불편하고 덥기도 더워서 치맛자락을 슬쩍 걷어올려 걸어 다니는데, 매의 눈을 가진 경비원 아저씨에게 주의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소 불경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었겠다. 저처럼 키 작은 사람들은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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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Seafood!


놀라운 로컬의 맛

다시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동남아 필수 코스인 마사지를 받았다. 가장 유명하다는 자스민 마사지에서 타이 마사지 90분짜리를 받았는데, 마사지 장소가 다소 추웠던 것 빼고는 무난했다. 고생은 마사지사가 했는데 왜 배는 내가 고픈 것일까. 유잇청에서 못 먹은 카야토스트가 아쉬워 저녁 전 간식으로 카야토스트점을 찾았다. 이름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푹위엔이었던듯. 맛은 쏘쏘. 안 그래도 작은 빵이 한번 구워서 나오니까 더 작고 얇아져서 진짜 이게 한 개인가 살짝 놀랐다. 카야토스트만 먹고 배부르려면 인당 3개는 먹어야 할 듯.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고민 중 하나. 검증된 맛집을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검증된 맛집은 실패야 안하겠지만(때때로 실패하기도 함)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오래 기다려야할 수도 있고 특별한 기분이 덜하다. 새로운 도전은 실패 가능성은 높지만 나만의 유니크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감성을 한층 더할 수 있다. 이미 앞선 로컬 식당에서 실패를 맛 본 우리는 해산물만큼은 성공하고 싶었기에 "코타키나발루 해산물"을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웰컴씨푸드에서 저녁을 먹었다. 심지어 푹위엔에서 거리도 가까웠음.

웰컴씨푸드의 주문 시스템은 다소 특이하다. 대부분의 해산물을 싯가로 처리하기 때문인지 별도의 가격표가 없고, 메뉴 사진만 보고 주문해야 한다. 다 먹고 계산하기전까지 내가 얼마를 내야할 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해산물은 해산물이니 내심 쫄았는데, 막상 가격표를 보니 맥주가 제일 비쌌다(눈물). 인당 만원~만오천원 정도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 걱정말고 맛있게 먹자. 오징어 튀김은 정말 대박적이니 다른건 모르겠고 이건 꼭 먹도록 합시다.




해가 참 크고 동그랬다.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날씨가 더우니 쉽사리 피곤해졌다. 웰컴씨푸드에서 든든히 채운 배를 두드리며 석양 명소인 워터프론트까지 걸었다. 간신히 일몰 시간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은 많았고 해는 지고있었다. 코타키나발루의 9월은 우기다. 여행 내내 비를 맞은 적은 없지만 하늘은 늘 먹구름으로 가득차있었다. 구름에 절반 정도 가린 첫 석양이 그나마 제일 예쁜 석양이었을 정도.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한 코타키나발루라지만, 9월에 이 곳을 방문한다면 맑은 하늘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워터프론트에서 남쪽으로 걸어내려오면 풍경이 다소 달라진다. 좌측으로 쭉 늘어선 술집에 우측엔 각종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끄러운 음악, 화려한 조명 속에서 사람들은 술이 담긴 잔을 하나씩 쥐어들고 석양을 감상하거나, 수다를 떤다. 파티같은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이 곳에서 미리 기다렸다가 석양을 보는게 좋을 듯 하다. 나와 친구는 운좋게 바다 바로 앞 흔들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흔들, 다시 또 흔들. 말없이 하늘을 응시하다 보니 어느새 해는 수평선을 꼴딱 넘어가버렸다.




일단 맥주부터 마셔!

초콜렛, 컵라면, 와인 등 약간의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별도의 라운지에서 술과 간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클럽룸을 예매해 6층에서 체크인을 했다. 앉자마자 Beer or wine? 하며 드링크를 권하는 지배인. 괜히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짐을 기다리며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니 금새 몸이 노곤해졌다. 더운 나라에서의 여행은 역시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은 구아바 한 입을 베어무는 순간 싹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묵은 샹그릴라 탄중아루 클럽룸은 하루에 35만원 정도. 오전에 묵었던 Aeropod의 무려 10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친구나 나나 이런 비싼 숙소는 처음이었다. 고로, 우린 다음 날 하루종일 이 숙소의 뽕을 빼먹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