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일은 기본이요, 품질은 양심이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우연히 '인간극장' 비슷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공장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납기일은 기본이요, 품질은 양심이다."
그 시절의 나에게 이 말이 정말 필요했던 것일까.
그때는 몰랐지만, 이 한 줄은 개발자로 살아가는 내내 나를 붙잡아주는 기준이 되었다.
조금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꽤 자랑스러웠다. 작업을 빨리 끝내놓고 책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줬다. 실제로 일주일에 두꺼운 기술 서적을 한두 권씩 읽어낼 정도로 내게 '납기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발은 나 혼자 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일련의 프로세스 속에서 내가 작업을 마치고 여유를 부리는 동안, 다른 파트에서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기한'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10년 동안 매주, 혹은 2주 단위로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콘텐츠 양으로는 어디와도 비할 수 없는 서비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늘 매끄러웠던 건 아니다. 매일 야근과 주말 출근을 불사하며 업데이트에 매달렸고, 그럴 때마다 주로 서버에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맡은 부분이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을 나는 소홀히 다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팀원 중 누구도 내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 역시 어느샌가 그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아무도 말하지 않으니까, 내가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때 저 문장을 다시 만났다. '품질은 양심이다.'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선을 그어버리면 모든 일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벽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 절망처럼 다가오는 벽이라도 결국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게 벽을 허물어야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정면승부를 해야 할 곳에서 우회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요리조리 피하면 영리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그 벽은 평생 나에게 우회 포인트로 남을 것이고, 결국 나는 평생 우회만 하다가 제자리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품질에 대해 말했지만, 납기일을 지키는 것 또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손이 빠르다고 자부했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예상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납기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나의 납기일은 곧 다른 사람의 시작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시간을 무턱대고 충분히 다 쓰는 것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이다.
먼저 프레임을 짜고,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넘겨라. 동료가 시작할 수 있게 길을 터준 뒤,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의 양심을 걸고 품질에 힘써라.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 당신은 반드시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