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답게 말하고 싶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리 오라고 하면 오고, 저리 가라고 하면 간다.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고, 못났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다. 무심코 툭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놀라운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하루를, 아니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한다.
미국에서 넘어온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십 명과 함께 수행하던 때였다. 당시 뉴스에서는 한 아이가 망치로 부모를 살해했다는 비극적인 사건이 보도되었고, 세상은 그 원인을 '게임 중독'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많은 동료가 억울함에 분개하던 그때, 한 개발자가 내게 잊지 못할 말을 던졌다.
“내가 만든 게임을 하고 그런 사고가 나서,
그런 식으로 이슈가 좀 됐으면 좋겠다.”
그 말이 당장 내 삶을 바꾼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게임을 만드는 일이 점점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그때 깨달았다. 그 말이 내 안의 뭔가를 건드렸다는 걸.
그때 이후로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쿨하다고 믿는 이들의 당당함 속에 언제나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깔려 있음을 눈치챘다. 나는 그 ‘옳음’이 사람을 설득하는 힘보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힘이 더 크다는 걸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대개 옳은 말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들은 "지금이 적기다", "직설적이어야 알아듣는다"라고 변명하지만, 그 서슬 퍼런 옳음은 결국 팀과 동료, 친구와 가족을 파괴한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고통스러워지는 순간은 그 사람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이 사람을 부수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라는 걸.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볼 때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람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으로 무너진다.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건드리면 폭발하는 '트리거'가 있다. 모두가 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잘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5~10% 정도의 약한 부분은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는 그 고작 5~10%밖에 안 되는 약점을 마치 그 사람의 90~95%인 것처럼 확대해서 보지 말아야 한다. 약한 부분을 들추는 건 너무 쉽지만, 그래서는 팀이 돌아가지 않는다.
지혜는 더 큰 부분에 포커스를 고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약한 부분보다 강한 부분을 먼저 보려고 애쓰게 됐다. 잘 안 될 때도 많지만, 적어도 말로 사람을 더 무너뜨리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붙잡는다. 나 역시 지금도 누군가에게 옳은 말을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항상 더 노력하며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려 한다.
나는... 어른답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