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들
지난 글에 언급했듯이, 내 꿈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만화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시각화해 보여주었고,
나는 항상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게임은 각자의 세계를 창조해 냈고,
그 세계 속을 직접 움직여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멋져 보였다.
물론 재미없고 지루한 만화도 있었고,
형편없는 게임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만화를 보고, 게임을 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만화를 먼저 보고 게임을 하든,
게임을 먼저 하고 만화를 보든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늘 즐거웠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누구도 그것에 대해 지적하거나
우려 섞인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방임에 가깝게 나를 키우셨고,
친구들은 나와 같은 취향을 공유했거나,
혹은 그 취향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어느 방학이었다.
만화방에서 수십 권의 만화책을 높이 쌓아두고
킬킬거리며 만화를 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이 밀려왔다.
만화는 분명 재미있었고, 웃기고, 가볍고, 즐거웠다.
그런데도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 느낌이었다.
그 공허가 너무도 지독해서 그대로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그런 공허함은 이전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만화를 읽었다.
웃고 있었지만 속은 계속 비어 있었다.
속으로 계속 외쳤다.
‘누가 지금 나에게 전화 한 통만 해주면, 나는 이 만화를 덮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갈 텐데.’
‘누가 나를 한 번만 불러주면, 나는 이 만화를 덮고 바로 밖으로 나갈 텐데.’
결국 그날 전화는 없었고,
나는 만화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다 읽지 못한 수십 권의 만화책을 그대로 두고 만화방을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만화를 봤고, 게임을 했다.
그런 공허함 속에서 계속 살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와이프는 게임을 못 하게 했다.
나는 반발했다.
‘아니, 나는 앞으로 위대한 게임을 만들 사람인데 이게 말이 되나?’
와이프는 게임을 할 거면 하루 30분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켜고, 게임 사이트에 접속하고,
상대가 매칭되기까지 이미 20~25분이 걸렸다.
게임은 5~10분 만에 끝나지 않았다.
와이프는 컴퓨터 전원을 껐고,
우리는 싸웠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나는 낮에는 게임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와이프가 자는 사이 게임을 하다가
와이프가 깼고,
우리는 크게 싸웠고,
나는 집에서 쫓겨났다.
그날, 또 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게임을 꼭 해야 하나?’
그날 이후 나는 게임을 하지 않았다.
와이프는 말했다.
그동안 게임을 해온 것만으로도 경험은 충분하다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게임 개발자가 되었고, 게임을 만들었다.
지루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정말 만화와 게임으로부터 세상을 배웠다.
만화에서 지혜를 얻었고,
게임에서 인생의 진리를 배웠다.
슈팅 게임을 하다가,
액션 게임을 하다가,
대전 게임을 하다가
나는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는 바둑에 인생이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게임에 인생이 있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만화와 게임을 통해서만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까?
수준 높은 만화와 게임 말고,
다른 수준 높은 무언가를 통해서도
같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더 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지혜로워질 수는 없었을까, 더 날카로운 통찰을 가질 수는 없었을까?
예전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시지만,
나중에는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만화와 게임이 그랬다.
물론 내 자제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것이야말로 중독이 아니었을까 싶다.
술 중독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잔이라도 매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라고 했다.
지금도 문득문득 웹툰을 보려 하고,
웹소설을 보려 한다.
그리고 실제로 본다.
그러면 어느새 한참을 거기에 빠져 버린다.
짬이 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택지가 그것인 것이다.
나는 그 선택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노력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안 했지,
웹툰이나 웹소설은 보지 않겠다고.
아마 이건 평생 이어질 싸움이고, 전쟁일 것이다.
사실, 재미있긴 하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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