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자세에 대해

0과 1 사이에 스며드는 것

by 데브 마인드

옛날 장인들은

일생일대의 작품을 만들 때면

한두 달 동안 부부관계도 가지지 않고,

산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씻었다고 한다.


새벽 첫물로 몸을 씻고,

잡된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두고

그제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그냥 만들어도 됐을 텐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갑자기 실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만들다 보면 언젠가 좋은 작품 하나쯤은

우연히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장인들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만든 도자기나 그림에는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고.

신검(神劍) 같은 전설도 결국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말

무언가가 담기는 걸까.


나는 어느 날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분명 웃기긴 한데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곱씹어 보니

그 공허함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비쳐온 것 같았다.


무대 위에서 웃기는 얼굴과

그 사람 안에 있는 무언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이후로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고,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의 평소 생각과 마음은

태도와 얼굴을 통해 드러난다.

마음이 마음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림을 잘 볼 줄 모른다.

그런데도 어떤 그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주 편해진다.


잘 그렸다, 못 그렸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 풍경이 좋다, 색감이 좋다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계속 곁에 두고 보고 싶어진다.


반대로

이유 없이 불편한 그림도 있다.


예전에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라는 노래가

유럽을 휩쓴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도,

그 노래를 듣던 수많은 젊은이들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게 단지

노래가 우울했기 때문이었을까.


만약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에

정말로 어떤 마음이 담긴다면,

나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 걸까.


술과 담배를 끊고,

수도승처럼 살아야 할까.

정수된 물로 몸을 씻고

속세와 거리를 두어야 할까.


나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이 시대에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태도다.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0은 0이고 1은 1일 뿐이다.


하지만 그 차가운 논리의 배열을 결정하는

손가락 끝에는,

그날의 기분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묻어난다.


좋은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쏟아

간절하게 개발하고,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면

그 안에도 분명

무언가가 담기지 않을까.


부부싸움을 하고,

새벽까지 술을 마신 채 출근해

억지로 만든 코드가

정말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나는 술을 마셔도, 일에는 지장이 없다.’

라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


설령 버그가 하나도 없더라도,

그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오래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마음을 쏟아 서비스를 만들고,

남들이 보기엔 지루하고 고된 반복 작업일지라도

이걸 쓰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조금이라도 덜 헤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것에 대한 결과는

사실 모른다.

누가 연구했는지도 모르고,

증명할 수도 없다.


이것은 통계의 영역이 아니다.

효율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정성 들여 지은 밥맛이 왜 다른지,

결을 살려 깎은 나무가

왜 손에 감기는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발자라고 예외일 리 없다.


나는 믿는다.

내가 품은 이 마음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 번은 더 웃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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