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최적화보다 중요한 '생존'의 기록
내 인생에서 몸무게는 언제나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루트 에러(Root Error)'였다. 당뇨와 고지혈증이라는 가족력은 늘 나를 압박했고, 병원에 갈 때마다 돌아오는 "일단 살부터 빼라"는 말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살이 찐 내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 몰릴 때면 "차라리 죽어도 좋으니 딱 한 번만이라도 날씬하게 살아보고 싶다"며 지방흡입을 꿈꾸기도 했다.
2019년 8월, 난생처음 헬스장에 등록하며 몸을 고치기 위한 치열한 '디버깅'이 시작되었다. 한약, 자연 식물식, 키토제닉 등 세상의 온갖 다이어트를 내 몸에 적용해 보았다. 체지방은 늘고 근육만 줄어들었던 실패도 겪은 때가 있었지만, 결국 '말랐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탄탄한 보통 체중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몸이라는 시스템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2023년 2월, 내 몸무게는 53kg이었다. 군살 없이 탄탄한 몸으로 필드를 누비던 시니어 개발자였다. 하지만 몸무게 강박에서 시작된 바디프로필 도전 이후 찾아온 폭식증과 우울증은 내 시스템을 서서히 망가뜨렸다. 66kg, 68kg. 숫자가 커질 때마다 다시 '강제 삭제' 버튼을 누르고 싶어 병원을 전전했다.
그 길을 다시 가기엔 너무 먼 길처럼 느껴졌고, 당장이라도 몸을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할 것 같으니 몸만 보면 죽고 싶었다.
2025년 12월, 우울의 파고는 결국 내 삶을 덮쳤다. 식탁용 칼을 손목에 대보며 죽음을 연구하던 그날 밤, 109 자살 예방 센터에 전화를 걸어 간신히 생명줄을 잡았다.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입원 당시 65kg이었던 몸무게는 일주일 만에 68kg으로 불어났다.
먹은 것도 없는데 늘어나는 체중을 보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두운 힘에 잠식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2026년 1월 2일 퇴원 당시, 체중은 어느새 72kg을 찍었다. 금방 찐 살이니 금방 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회사도 안 가는 김에 매일 3시간 넘게 수영과 PT, 유산소를 병행하고 식단을 조절했다. 하지만 보상은커녕 1월 19일, 인생 최대 몸무게인 75kg에 도달했다.
다음 날 외래 진료실에서 마주한 진실은 허탈했다. 내가 먹던 항우울제 중에 체중 증가 부작용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살을 빼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이 약 한 알에 의해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에, 진료실을 나와 엄마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살 찌는 약이 맞았대, 엄마."
그 말 한마디에 그간의 억울함과 허망함이 모두 담겨 있었다.
처방을 바꾸고 다시 체중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노력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불쑥 찾아온다. 복귀일은 다가오는데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으며 누워있는 나를 보면 다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젬미니(Gemini)가 해준 말과 담당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멤버들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리더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리더를 원할 거예요."
"일단 살아야 다이어트도 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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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kg의 나는 분명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내가 가장 죽고 싶었던 순간에 '살기 위해' 선택했던 치료의 훈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완벽한 배포를 준비하기보다, 망가진 소스코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나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