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가 아니게 되었다

권한 삭제, 그리고 비로소 시작된 나의 리딩

by 누워 사는 개발자

‘마음의 버그를 고치는 iOS 리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더 좋은 리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리드가 아니게 되었다.

새 닉네임을 할까는 고민 중이다.

아래는 내가 리드가 아니게 된 날의 기록이다.




예고된 통보와 껍데기뿐인 질문


3월 X일 리드 회의. 조직 개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개편 소식이 들려왔다. 회의 직후 따로 불려 나갔을 때 이미 직감했다. 다른 팀과 통합되면서 리드 자리를 내려놓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이미 정해진 결론을 손에 쥐고 의례적으로 내 의견을 물었다.

이미 자기들끼리 다 정해놓고 묻는다. 나는 별 상관없다고 했다. 다만 나는 커리어 패스를 리딩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앞으로 리딩을 할 기회는 언제든 있을 것이라 한다.

나의 회복을 바란다고 한다.

더 이상의 반응을 하기에 내가 너무 소진되었다. 겨우 있는 에너지로 알겠다고 하고 끝냈다.




앙상해진 나무와 바닥난 에너지


오전엔 반차를 내고 병원에서 인지심리검사를 하고 온 참이었다.

내가 그린 나무를 보고 선생님이 놀라셨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가엾다고 했나 힘드셨군요라고 했나, 했던 말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내 안의 에너지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그날 리드 회의에서는 고군분투하는 리드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어, 예전 글인 ‘어린 리더의 무게’를 쓰며 일기장에서 발견했던 리드들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는 나의 진심에 돌아온 건 “그거 참 힘이 되네요 ㅎㅎ” 같은 시니컬한 농담 섞인 반응뿐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예고되었던 통보가 날아들었다. 또 회사와 사람들에게 실망을 한다.




듣고 싶었던 말, "ㅇㅇ님, 정말 고생 많았어요"


돌아보니 참 치열한 시간이었다. 리드로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나누며, 나만의 비전을 실현하려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과정 끝에 남은 것은 사람에 대한 실망과 피폐해진 몸과 마음뿐이었다. 평소 존경하던 조직장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는 단 한 마디를 간절히 듣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타인의 공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회사는 내 자아실현을 책임져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기 파괴 대신 선택한 온전한 회복


퇴근길.


퇴근하자마자 사우나를 갔다. 사람들에게 느낀 이 더러운 감정을 씻어내고 싶었다.

때를 밀고, 마사지를 받았다.


고층 아파트를 보며 저기 옥상에서 떨어진다면 스카이다이빙 하는 느낌의 해방감과 함께 깔끔하게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며 위스키를 샀다. 흥청망청 마시다 정신이 끊어져서 잘 테다. 그동안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던 행동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위스키를 마시려는데 내가 왜 자기 파괴를 해야 하나 싶었다.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뭐, 각자 나름의 존중은 해 줬을 것이다. 사회 통념상의 존중은 받은 것 같다. 그저 나의 기준이 높을(=감정적 공감) 뿐.)


그냥 내가 가여웠고, 피곤했다.

집 안의 불을 다 껐다. 그리고 그냥 잘 준비를 했다. 온열 수면 안대를 끼고, 평소 잘 때 듣는 유튜브를 틀었다.

자기 파괴보다 나의 온전한 회복과 내일 있을 새벽의 시간이 더 소중했다. 조용한 새벽에 나와 마주 앉아 나의 감정을 돌아보는 일이 더 소중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ㅇㅇ(나 자신의 이름)에게.


지금까지 고생했다. 애썼다. 버텨줘서 고맙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자.

이 말을 내게 하게 될 줄 몰랐는데 끝맺는 말을 생각하니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한다 ㅇㅇ아.

언제나 나는 네 편이야.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즐기다가 자연사하자.




(+) 위 글을 쓰고 AirPods Max를 12개월 할부해서 샀다고 한다.

free_young이라는 각인과 함께.

그동안 다른 사람들 소리 들어주느라 애썼다.

이제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자.

내 안의 소리에만 집중하자.


할부는 갚아야 하니 회사는 꼭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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