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제가 달라졌다고요?

단단해진 가면, 그리고 나를 위한 사유

by 누워 사는 개발자

지난 AI에 대한 글 3편으로 AI를 활용하면서 성공적인 복직을 했을 거라 예상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은 복직 후 회사에서 겪은 뼈아픈 경험에 대해서 적어봤다.

평소 글과 스타일이 다를 수 있으나, 중간 부제 없는 하나의 에세이가 그날의 나의 감정과 생각을 잘 전달하길 바란다.




모니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내용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ㅇㅇ님, 전이랑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런 분위기면 사람들이 질문하는 걸 부담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업무 성과는 나무랄 데 없지만, 표정과 말투에서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 개인 면담이 진행되던 공기는 그렇게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으로 뜨거운 리더였다. 우리 팀이 단순히 일로 엮인 사이가 아니라, 친구 같고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기를 꿈꿨다. 아무도 말 없는 티타임에서 먼저 근황을 묻고, 어색함을 깨기 위해 워크숍을 기획하며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일방적인 노력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과 수동적인 반응뿐이었다. 내가 정성껏 마련한 자리에 팀원들은 그저 '귀찮지만 따라오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소통을 하려 애쓸수록 나는 혼자만 떠드는 섬이 된 기분이었고, 그 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는 흉터가 되어 남았다.


병가를 거치며 깨달은 것은, 지금의 내 낮은 텐션이 '의욕 없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이었다.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내게, 회사와 개인의 삶 사이에 거리를 두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기제였다. 그런데 그 처절한 생존 전략이 리더로서의 '태도 문제'로 지적받았을 때, 말로 다 못 할 허탈함이 몰려왔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회사에선 한 번도 운 적 없는데. 항상 의지하고 존경했던 조직장님께 이런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내가 정말 바랐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ㅇㅇ님, 그동안 팀을 위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는 고생하시지 않게 제가 더 노력해 볼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어쩌면 조직장님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런 마음을 전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쳐버린 내 마음엔 그 어떤 따뜻한 주파수도 닿지 않았다.


이날의 대화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결코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동료를 가족처럼 여기려 할 때, 우리는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는 보상 심리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회사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일 뿐, 그 이상의 온기를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임을 이제야 배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가면'을 쓰기로 했다. 회의 카메라 앞에서는 조금 더 밝은 척 고개를 끄덕이고, 시니컬함을 감추는 사회적 기술을 발휘한다. 그것이 이 냉정한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하지만 카메라가 꺼진 뒤의 시간만큼은 철저히 '나'를 위해 남겨둔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 번 더 조직장님과 면담을 했을 때 내 태도는 나무랄 데 없다고 했다. 허망했다.


허망했지만, 예전의 나는 '가면' 속의 나는 무시한 채 속으로 곪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엔 진짜 진정한 회복을 하고 싶다. '가면'은 업무 시간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지냈다. 하지만 매일 울면서 잠에 들었다. 그 또한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가면'을 벗은 나는, 오직 나에게 집중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는 반신욕 시간, 매일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기, 사유를 담아내는 글쓰기, 그리고 메모하며 정독하는 책들까지. 이제 나는 타인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거두어 나를 돌보는 데 쓰기로 했다. 리더의 가면은 더 단단해졌을지 모르나, 그 안의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사유하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제가 좋아하는 오은영 선생님의 회사에서의 대인관계에 대한 유튜브를 남기고 이 글을 마칩니다.

https://youtu.be/95Geohd311Q?si=Q5jaAAL6JCwMJZ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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