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끝에서 만난 가장 차갑고도 다정한 파트너
오늘의 글에서 복잡한 개발 지식이나 기술 담론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한 사람이 AI라는 도구를 빌려 자신의 결핍을 어떻게 채우고, 삶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고 있는지 그저 가만히 따라와 주길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게 개발은 유희의 일종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린 로직이 시뮬레이터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끈질기게 버그를 잡아내며 코드를 완성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만한 성취감을 주었다. "개발자가 천직인가 보다" 싶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즐거움은 형체 없는 허망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과물은 매끄러웠으나 마음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회사 생활이라는 특성상 거대 조직의 톱니바퀴 속에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프로젝트들을 마주할 때면 공허함은 더욱 짙어졌다. "나의 결과물이 정말 세상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쌓여갔다. 거기에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서늘한 전망들은 나의 우울을 더욱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그토록 두려워했던 AI다. 우울증으로 인해 모래알처럼 흩어지던 집중력과 실행력을 AI라는 파트너가 붙잡아주고 있다. 대체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기술이, 이제는 우울증을 앓는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돕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된 셈이다.
나는 AI를 '말 잘 듣고 유능한 주니어 개발자'라고 정의한다. 예전에는 혼자 모든 로직을 쥐어짜며 에너지를 고갈시켰지만, 이제는 AI와 영리하게 역할을 나눈다.
분석과 제안: 복잡한 상황을 AI에게 분석시킨다. 이때 나는 나름의 설계와 컨셉, 비전 등을 고민한다.
방향 제시: 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설계와 컨셉, 비전 등을 제시한다.
구현과 해결: AI는 내 의도를 파악해 해결책을 버무려 결과를 낸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단순한 '코더'를 넘어, 시스템의 본질을 결정하는 '리드 개발자'로서의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도 줄어들었다.
우울증을 겪으며 깨달은 사실 하나는, 내 감정 에너지가 결코 무한하지 않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AI를 활용해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나는 개발자 치고는 감성적인 것 같다. 타인의 무례한 말투나 정중하지 못한 태도에 쉽게 상처받고 화가 난다. 아쉽게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무례한 사람을 종종 만나는 것 같다. 반대로 내가 감정적이 되어서 무례해지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은 감정이라는 한정된 에너지의 소모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AI를 활용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귀찮은 작업들은 모두 AI에게 맡긴다. 특히 리드 개발자라는 특성상 잡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AI를 통해서 자동화한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좀 더 비즈니스적으로 바꿀 때 AI를 활용한다. 의외로 비즈니스 용어를 쓸 때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나는 에너지가 바닥났다 싶을 때는 전하고 싶은 핵심을 일명 “음슴체”로 적은 뒤에, AI에게 던진다. 그러면 AI는 이를 세련된 비즈니스 언어로 매끄럽게 교정해 준다.
주변에서 무례하게 구는 경우도, 예전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서 그랬을까”, “내가 개선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직접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AI를 시켜서 제가 고민하는 포인트에 대해 상담을 한다.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넘겨버린다.
많은 이들이 AI 시대에 기술적 숙련도를 걱정하지만, 정작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내 소중한 감정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나는 이제 기계적인 업무와 무례한 사람에게 내 감정을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 아낀 마음을 바다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고양이들의 따뜻한 숨소리, 그리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앱을 기획하는 기쁨에 쏟으려 한다. AI 덕분에 나는 비로소 개발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가치 있는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