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기술 속에서 나의 '숨'을 찾는 법
지난 세 편은 나의 민낯에 대한 얘기 었다.
오늘부터 이어지는 세 편은 개발자로서, 그리고 우울증 환자로서 AI로 인해 달라진 내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AI는 나의 우울증 회복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병원 폐쇄병동에 발을 들여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던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던져준 거대한 불안이 있었다.
운 좋게도 사내에서 발 빠르게 AI 조직으로 전배 되었지만, 매일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의 파도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성취감이 아닌 공포였다. ‘결국 개발자는 AI로 대체되겠구나’, ‘회사는 언제까지 나라는 리소스를 써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2019년부터 쌓아온 숙련도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될 것 같다는 시스템 경고등이 매일같이 울려댔다.
불안의 끝에서 내린 결론은 ‘회사라는 시스템에만 나를 가두지 말자’는 것이었다. 관점을 바꾸니 AI 시대는 오히려 내가 진짜 만들고 싶었던 앱을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반복적인 코딩은 AI에게 맡기고, 나는 '좋은 시스템의 아키텍처',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본질적인 탐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개인 프로젝트로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누군가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프로젝트이다.(언젠가 브런치에도 소개하고 싶다). 이제 AI는 나를 대체할 존재가 아니라, 내가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잡무를 처리해 주는 유능한 비서가 되었다.
작년에 시작한 프리다이빙은 좋은 취미가 되었다. 처음엔 그냥 원래도 물을 좋아하는 데다가 강의가 할인하길래 시작한 취미였다. 나중엔 진심이 돼서 집에서도 숨을 참는 연습을 했고, 잘 안 되는 이퀄라이징 연습을 매일 했다. 그 결과 수심 29미터라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수심 29미터에서 올라왔을 때 그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해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이 아무리 디지털화되어도, 인간의 근원적인 ‘호흡’에 집중해야 하는 영역만큼은 디지털 바깥의 영역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호흡으로 깊은 바닷속까지 내려가며 느끼는 감각은 로봇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함이다.
어느 날, 내 계획을 들은 한 MBTI ‘T’ 성향의 동료가 농담처럼 말했다. “ㅇㅇ님, 나중엔 프리다이빙 강사도 로봇으로 대체될걸요?”
그 말에 웃음이 났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상관없다. 강사를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회에 참여해 한계에 도전하고 바다를 여행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풍요로울 테니까. AI가 나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는 있어도, 내가 바다에서 느끼는 자유와 도전의 기쁨까지 앗아갈 수는 없다.
AI 조직의 리드 개발자로 일하며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더 집착해야 하는 것은 ‘최신 스택’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고유함’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AI 덕분에 확보한 여유 시간에 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더 많이 고민하며 나만의 앱을 만들어간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나의 숨을 통제할 수 있는 한, 어떤 기술의 파도가 몰아쳐도 나는 나만의 바다에서 유영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