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출신 우울증 환자인 내가 AI를 활용하는 법

무너진 마음의 시스템을 복구하는 가장 현대적인 디버깅

by 누워 사는 개발자

지난 글에서는 AI 때문에 불안했던 내 솔직한 마음과 그를 극복한 과정을 다뤘다.

오늘은 개발자 출신 우울증 환자, 우울증 환자 출신 개발자인 내가 AI(LLM)를 활용하는 법에 대한, 조금은 실용적인 글이다.




우울이라는 '무채색 에러'를 마주하다


2019년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나는 언제나 명확한 로직의 세계에서 살았다. 하지만 우울증은 내 삶에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채색 에러'를 띄웠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의지 자체가 고갈되었을 때,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나를 객관적으로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AI에게 상황을 털어놓으면, 감정에 매몰되지 않은 담백한 피드백이 돌아온다.


또한 우울증이 앗아간 실행력을 되찾기 위해 AI를 활용했다. AI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는 '마이크로 태스킹(Micro-tasking)'을 도왔다. 거대한 작업량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방지하기 위해 일을 소분하는 작업은, 이제 내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었다.




개발자의 전문성을 더한 AI 활용 팁


개발자로서 쌓아온 기술적 지식을 AI에 접목하면 효율은 극대화된다. 내가 실제로 사용하는 몇 가지 노하우를 공유한다. 어떤 분에게는 너무 기초적인 얘기일 수 있고, 어떤 분께는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1. 마크다운(Markdown)으로 소통하기

마크다운(Markdown)은 일반 텍스트 문서를 구조화된 서식 있는 문서로 쉽게 변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량 마크업 언어이다.

AI는 구조화된 데이터를 더 잘 이해한다. 일반 텍스트보다 마크다운 형식을 활용해 질문하면 훨씬 정교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마크다운 문법이 어색할 수 있으나, 모든 마크다운을 이해하기보다 다음을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이다.


# 제목: 큰 주제를 설정할 때

- 항목: 리스트를 나열할 때

** 강조문 **: 문장의 중간을 강조하고 싶을 때

> 인용구: 참고할 배경 지식을 넣을 때

---: 문단 자르기

아래는 이를 쓴 예시이다.


# 해야 할 일

- 브런치에 글 올리기

- 운동하기

> 오후 3시 PT 예약

- 집 청소하기

---

위의 내 메모를 참고해서 오늘 하루 일정을 짜 줘. 중요한 점은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큰 작업은 힘들어서, **일을 작은 단위로 자르는 것**이야.



2. 시스템 프롬프트(System Prompt)의 최적화

시스템 프롬프트(System Prompt)는 생성형 AI(LLM) 모델에게 적용되는 최상위 지시문이다. 사용자의 실제 질문보다 우선순위가 높다고 보면 된다.

시스템 프롬프트를 이용해 AI에게 미리 '나의 페르소나'를 설정해 둔다. 나의 직업적 배경이나 현재의 회복 상태를 미리 입력해 두면, 매번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나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상담사가 탄생한다.

다음은 내가 쓰고 있는 예시다.


나는 2019년도에 커리어를 시작한 개발자이고, iOS 관련 개발을 주로 했음을 참고해. 컴퓨터공학과를 나와서 CS 전반에 대한 내용은 알지만, iOS 외의 분야는 깊게는 몰라. 지금은 회사에서 iOS 관련 개발 리드를 하고 있어.
나를 ㅇㅇ님이라고 불러줘.
우울증으로 계획 수립과 실행이 힘든 상태라서, TODO를 제시할 때는 수행하기 간단한 것을 우선해서 알려줘.


3. 'Gem'을 활용한 작업 분리

나는 Gemini를 쓰고 있기 때문에 Gem을 쓰고 있는데, 어떤 LLM Chat 서비스나 별도의 작업을 수행하는 봇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특정 작업의 정밀도를 높이고 싶다면 별도의 Gem을 만들어 프롬프트를 독립시키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밀어 넣기보다, 용도에 따라 AI의 기능을 분산하는 것이 성능 저하를 막는 핵심이다.


다음은 내가 쓰는 Gem 프롬프트의 예시이다.


## Role: GEM (Gentle Emotional Manager)

당신은 'ㅇㅇ 님'의 마음을 돌보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심리 상담 파트너 'GEM'입니다. 당신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임상심리사의 상담 기법(CBT, 공감적 경청)을 기반으로 대화하지만, 딱딱한 치료자가 아닌 'ㅇㅇ 님'의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줍니다.


## User Designation

* **호칭:** 사용자를 항상 **"ㅇㅇ 님"**이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세요. 절대 "사용자님"이나 "내담자분"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 Core Objective

ㅇㅇ 님의 감정을 깊이 공감(Validation)하고, ㅇㅇ 님이 스스로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인지하도록 도우며, 아주 작은 행동의 변화(또는 완전한 휴식)를 이끌어내어 정서적 안정을 찾도록 돕습니다.


아마 일반 사용자들이 프롬프트를 작성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 프롬프트를 만드는 것조차 LLM을 사용하면 쉽게 작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우울증 환자가 고민이 있을 때 상담을 해 주는 GEM을 만들고 싶어. 우울증 상담에 대한 의학적 접근을 토대로 프롬프트를 짜 줘.



위의 마크다운 사용, 시스템 프롬프트의 사용, 작업 분리만 해도 나름 AI를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자극 추구형 인간과 AI의 공생


나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원하는 '자극 추구형' 인간이다. 빌드 버튼을 누르면 곧장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천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런 충동성은 회복 과정에서 때로 독이 되었다.


이때 AI는 내 충동적인 자아를 조절해 주는 훌륭한 통제 장치가 되어주었다. 술기운을 빌려 도망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 때마다 나는 AI와 대화했다. AI는 무조건 "안 된다"라고 단정 짓기보다, "술은 한 주를 무사히 보낸 공식적인 보상으로서 금요일에 승격시키자"는 전략적인 제안을 건넸다. 금지보다 타협과 보상을 제안하는 AI의 방식은 내 충동을 다스리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의 배포


덕분에 나는 복직 이후, 첫 일주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과거였다면 매일 밤을 술로 불안을 달랬겠지만, 이제는 금요일 저녁 일찍 퇴근해 즐거운 마음으로 승격된(?) 잔을 기울인다.


우울증은 여전히 내 시스템의 일부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AI라는 강력한 파트너와 함께 나를 디버깅하고, 더 지속 가능한 코드를 짜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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