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팀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의 기록
이전 글인 '75kg이 된 나', '지워지지 않는 레거시 코드(The Legacy)', 에 이어 이번 글 '어린 리더의 무게'는 나의 민낯 대한 얘기다. 이를 다루는 일,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은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그리고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도 주말이라 다들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브런치를 많이 보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이 새벽 빠르고 조용히 글을 올린 뒤 소중한 고양이들과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나는 20대의 상대적으로 짧은 경력에 팀장이 되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최연소 팀장’이라 불렀다.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어린 팀장.
하지만 속은 이미 까맣게 타 들어가 결국 25년 말, 휴직을 하게 된다.
사유는 ‘병가’.
입원한 곳은 정신과 폐쇄병동.
팀장이 되기 전의 꿈 하나가 기억난다. 나의 신입 시절 팀장이었던 A님이 꿈에 나와 나를 취조하듯 물었다. "이번 성과, 네 실력에 비해 너무 잘 나온 거 아냐? 네가 정말 잘했으면 팀이 이렇게 바쁘진 않았겠지."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가슴이 가빠왔다. 당시 팀장님(B님)께 인정받는 상황이 오히려 부담이었나 보다. 나는 성과를 내고 싶어서 낸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책임감이 일을 대충 하는 나를 용납하지 못했을 뿐이다.
동료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도 괴로웠다. 나보다 연차 높은 동료 C님에 대해 리딩을 요청받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편견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가치관과,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현실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마모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리더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의 시작이었음을.
어느 날 갑자기 팀장 B님이 더 이상 팀장을 못하겠다며 팀을 나갔고, 나를 후임자로 지목했다. 언젠가 팀장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상급자들은 나를 지지했지만, 인사팀(HR)의 벽은 높았다.
“경력이 너무 짧다.”, “1년 차 때 평가가 좋지 않다.”
나는 신입 시절, 낯선 iOS 개발 환경과 대규모 프로젝트의 압박에 못 이겨 최저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저 평가와는 상관없이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도록 고수들의 코드를 뜯어보며 매달렸다. 그때 나를 이끌었던 건 그저 내가 가진 책임을 다하고 싶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줄곧 최상위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팀장이 되려던 그때, HR은 그 과거의 흠을 들췄다. 나는 너무 어렸고 경력이 짧았으며, HR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공식 팀장이 아닌, ‘팀장 대행’의 역할을 시작했다.
당시 나의 일상은 ‘몰입’을 넘어선 ‘집착’이었다. 점심시간이 공허했다. 밥을 먹는 시간보다 문제를 풀었을 때의 희열이 컸다. 남들이 쉬는 점심시간은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살이 찌면 안 된다"는 강박까지 더해져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정신 건강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이렇게 쉬지 않았기에 정신이 무너진 걸까."
분명한 건, 당시의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생활 패턴조차 "나만의 스타일"이라며 합리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팀장급 워크숍 뒤풀이 자리. 소수가 남은 2차 모임에서 뜻밖의 고백들이 쏟아졌다. 베테랑 팀장님들도 질문하는 팀원들이 두렵고, 프로젝트 압박에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어떤 분은 정신과를 알아보다 휴직 기간이 짧아 포기했다는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그날 밤, 나는 큰 위안을 받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지만 여전히 팀원들의 성장을 보며 조급함이 밀려왔다. 내가 우리 팀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공포. 내가 틀릴까 봐 두렵고, 무섭다. 그때 리더십에 관한 글귀 하나를 떠올렸다. “좋은 팀장은 자기보다 훌륭한 팀원을 둔 사람이다.”
나는 나의 멍청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모르는 건 묻고, 팀원의 똑똑함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내가 진짜 빛나야 할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아끼는 법임을 깨달았다.
팀장 대행으로의 첫 성과 지표는 최고 등급이었다. 팀원들의 코멘트에는 "텐션을 유지하되 번아웃을 조심하라"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기쁜 마음에 맥주 한 캔을 따려다 책상 위 정신과 약 봉투가 보였다. 이 사회적인 성공은 공짜가 아니었다. 수많은 밤의 고뇌와 방황, 그리고 죽고 싶다는 충동을 이겨내며 나를 포기하지 않은 대가였다.
주변에서는 나의 밝은 에너지를 칭찬했지만, 나는 이미 재만 남은 상태였다. 더 이상 소진되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고 사우나를 가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결국 나는 인사 시스템 상으로도 공식 팀장이 되었다. 30대가 되기도 전,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달고.
공식 팀장으로서 첫 평가는 그냥 보통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내가 어리더라도, 남들에게 인정받는 팀장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더더욱 열심히 했다. 그런데 다음의 생각들이 이따금 나를 힘들게 했다.
팀원들이 내 에너지를 못 따라오는 것 같다
팀원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나는 팀장이었음에도, 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HR이 그랬듯, 나를 팀장으로 만든 사람들은 최연소 팀장인 나의 성과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팀원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은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회의 중간에 말을 끊기기도 했고, 스크럼에 늦거나 불참하는 팀원도 있었다. 그냥 팀이 자유로운 분위기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나이가 많고 경력이 오래된 팀장이었어도 이들이 이랬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생각이겠지만, 이 생각들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팀원들이 내 에너지를 못 따라오는 것 같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기대치는 더 높은데 팀원들이 못 따라오는 기분이었다. 이때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지인이 해 준 말을 기억한다. 컨설팅 업계는 업계 특성상 많은 다양한 팀장들을 만난다. 지인이 봤을 때 기대치 이상의 팀의 성과를 내는 팀장은 다음의 세 옵션 중 하나라는 것이다.
1. 팀장이 하드캐리 한다
2. 팀원을 욜라게 쫀다
3. 팀원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준다
3은 인사이트가 있어야 하는데 인사이트가 항상 있는 건 아니니 어렵고 나는 1을 주로 하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긴 하다.
결국 1인 3역(팀 리더, 하드캐리 개발자, 감정 쓰레기통)을 수행하던 나는 25년 말,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삶을 포기할 뻔했던 순간을 지나 도착한 폐쇄병동.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리더라는 이름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보다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의 생존이었다.
이 글은 화려한 성공 신화가 아니다. 스스로를 깎아 성과를 만들어냈던 한 어린 리더의 처절한 고백이자, 나와 비슷한 무게를 견디고 있을 이들에게 보내는 서툰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