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워졌다 / 기묘한 밤의 이야기

효율의 세상에서 '느린 존재'로 살아가는 법

by 누워 사는 개발자

사라지는 권한, 포기할 수 없는 책임


리드라는 직함은 조만간 내려놓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책임까지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주 나를 돌보느라 잠시 주춤했던 성과를 이번 주 빌드로 만회하고 싶었다. 이번 주는 그래도 밤에 잠을 잘 자서 체력이 좀 있다. 마침 이번 빌드는 경영진 보고용이었다. 수영 강습까지 빠져가며 새벽부터 몰입했고, 꼼꼼한 피드백을 거쳐 배포 준비를 마쳤다. '보여주자'는 의욕은 규칙을 되찾은 나의 수면 패턴만큼이나 단단하고 견고했다.


소모되는 감정의 비용, 무너진 전문성


개발 회의. 또 '그놈'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일단 날부터 세우고 보는, 타인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동료다.

그놈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바로 의견을 제시한다.

일은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침 회의에 늦거나 불참을 종종 한다. 사유는 ‘늦잠’.

자유로운 소통은 좋다. 리더의 결정을 그냥 따르면 안 되는 걸까. 리더십 입문서인 《에너지 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놈은 '에너지 뱀파이어'였다.

‘그놈’과 일을 잘해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글이 길어지니 여기서 마친다.

어차피 나는 이제 이 팀의 리더가 아니니까. (아직 팀원들은 모른다)


나는 임원진과 사내 사용자 모두를 고려해 테스트용 중간 UX를 제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돌아온 화살은 날카로웠다.

"그게 ㅇㅇ 님 보기엔 마음이 편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사용자를 향한 나의 치열한 고민이 고작 개인의 편의로 격하되는 순간, 허탈함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논쟁은 30분 넘게 소요하고 있었다. 팀의 소중한 시간과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 나는 결국 "당신 말이 맞다"며 논쟁의 덮개를 덮어버렸다.


지워진 존재감, 회복은 결함인가


저녁 무렵, 이번 경영진 보고에서는 우리 팀이 한 개발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주의 빈틈이 리스크로 판단된 모양이다. 회사에서 나의 존재가 다시 한번 깨끗이 지워졌다. "이 사회에서, 이 조직에서 회복이란 그저 느리고 뒤처진 상태일 뿐인가." 억눌렀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회사에서 또 내 존재가 지워졌다. 내 회복이 방해가 됐다.

리드에서 제외된다고 했을 때 이미 회사생활에 대한 건 포기했을 터. 어차피 회사란 이윤을 좇는 집단일 터.

하지만 서럽고. 역시나 허망했다. 술이 마시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잊고 싶다.

그날은 어떻게든 잠에 들었다.




기묘한 밤의 이야기


새벽에 글을 쓰고 수영을 다녀오고 약 대신 술을 들이켠다.

눈물이 뚝뚝 흐른다.

나의 회복은, 사회에 있어서 이 회사에 있어서 그냥 느린 존재이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쩔 수 없지. 그게 회사니까. 이윤추구를 위한 게 회사니까.


죽고자 생각하며 붕어빵을 구울 때(?), 오빠가 생각났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미안해.

유서에도 썼듯이 오빠는 밝은 사람이야. 부디 살아줘.


지나고 보니 웃겼다. 왜 죽고자 생각하며 붕어빵을 굽나. 아마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 맛있는 걸 입에 넣어 두고 죽고 싶다, 그게 죽기 직전의 고통을 완화시켜주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친구와 했었다. 그 음식이 뭘까 고민하다가, 집에서 구워 먹는 냉동 붕어빵이었다. 집에서도 간단하게 이렇게 겉바속촉 추억의 붕어빵을 만들 수 있다니, 감탄하며 병가 중에도 거의 매일 붕어빵을 구워 먹었었다.


술을 마시고 자고 일어나니 저녁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작정 신사동으로 향했다. 신사동에 내가 자주 가는 사우나에 일단 가자고 생각했다.

가다가 노량진 수산시장이 보였다.

회가 먹고 싶다.

신사동에 도착하자마자 이자카야를 알아봤다.

이자카야로 향하던 중, 프랜차이즈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4인석이 많았으나, 모두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것 같은 그 거리감과 국수의 따뜻함에 홀린 듯 들어갔다.


주문부터 서빙까지 모든 것이 기계로 이루어지는 차가운 시스템.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무심한 시스템 안에서 받아 든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어떤 감정 섞인 대면도 필요 없는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다친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그렇게 신사동에서 얌전히 국수만 먹고 다시 집에 왔다.


그날 밤은 뭔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내가, 무심한 시스템 안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다시, 고양이의 온기 곁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고양이들이 나를 반겼다. 차가운 세상에서 상처 입고 돌아온 나를 조건 없이 품어주는 존재들. 나는 다시 침대로 기어 들어가 고양이들의 뭉클한 온기를 느끼며 잠을 청한다. "회사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던 교수님의 말씀을 주문처럼 되뇌면서. 비록 사회의 속도에는 조금 뒤처질지 몰라도, 나는 지금 나만의 속도로 가장 소중한 시스템인 '나'를 재건하는 중이다.


효율만을 따지는 세상에서 키오스크의 무표정함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건, 그만큼 관계에 지쳐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타인의 피드백이나 회사의 일정 대신, 나와 고양이들만의 '완전한 고립'을 테마로 온전한 휴식을 취해보려 한다.

이전 15화리드가 아니게 되었다